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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고 싱싱한 병病에 들어 / 서숙희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5-04-19 오전 10:44:30






푸르고 싱싱한 병에 들어

                           서숙희

 

 

, 푸르고 싱싱한 병 하나에 들겠네

여름 내내 아무도 미워하지 않아서

쓸쓸한 어스름처럼 순해진 육신으로

 

푸르고 싱싱한 그 병 안에서 나는

울울창창 깊은 울화를 단숨에 들이키고

칼을 문 욕망의 피로 입술을 닦으려네

 

푸르고 싱싱한 그 병 안에서 나는,

되새김질 하듯이 고통을 복기한 후

깨끗한 항복의 자세로 투병기를 쓰겠네

 

푸르고 싱싱한 병, 그 병 밖에서 아, 나는

마침내 새로 얻은 말끔한 죄 하나를

한 사발 눈 먼 사유에 튼튼히 꽂아두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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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숙희 시인의 4수의 연시조 푸르고 싱싱한 병에 들어는 언어의 반전을 통한 역설의 미학을 지니고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깊이 사유할 수 있게 한다.

 

식물에게 있어서 여름만큼 삶의 절정을 느끼게 하는 계절이 있을까? 녹음은 치달아 하늘을 덮고 머지않아 올 결실을 준비하는 계절. 시의 화자는 그 여름의 싱싱함에 기대 푸르고 싱싱한 병에 들겠다고 고백한다. 이 무슨 괴이한 소리인가? ‘싱싱함과 거리가 상반된 곳에 존재하는 언어가 아니던가? ‘푸르고 싱싱한 병이라니? 독자들로 하여금 적의 당황스럽게 한다.

 

그러나 찬찬히 읽어보면 푸르고 싱싱한 병은 더할 수 없는 좋은 병이다. 뒤이어 나오는 중장의 구절 여름 내내 아무도 미워하지 않아서에 이르렀으니 얼마나 좋은 병인가? 어쩌면 인간이란 존재는 몸이 병들고 힘들어질 때 세상 모든 존재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비록 몸은 쓸쓸한 어스름처럼 순해진 육신이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싱싱한 참나의 모습으로 환원되는 경지이다. ‘울울창창 깊은 울화칼을 문 욕망의 피도 내려놓고 푸르고 싱싱한 병에 들었을 때, 지난날의 고통을 복기하여 온전한 투병기를 쓸 수 있는 것이 인간 삶이 아닐까?

 

어쩌면 저 여름을 나부끼는 싱싱한 나뭇잎들은 지난날의 고통을 복기하여 투병기를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시인이 갈망하는 것은 넷째 수 중장에 나오는 말끔한 죄 하나일 것이다. ‘말끔한 죄라니? 이 또한 역설의 발상이다. ‘죄는 더럽다라는 우리의 인식을 전복하여 말끔하다 하였으니, 그 죄야말로 가장 순수한 영혼의 모습을 지니는 게 아닐까?(*)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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