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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인다 / 박노해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4-09-28 오후 2:40:38






서성인다

                      박노해

 

 

?가을이 오면 창밖에

누군가 서성이는 것만 같다

문을 열고 나가보면 아무도 없어

그만 방으로 들어와 나 홀로 서성인다

 

?가을이 오면 누군가

나를 따라 서성이는 것만 같다

책상에 앉아도 무언가 자꾸만 서성이는 것만 같아

슬며시 돌아보면 아무도 없어

그만 나도 너를 따라 서성인다

 

선듯한 가을바람이 서성이고

맑아진 가을볕이 서성이고

흔들리는 들국화가 서성이고

남몰래 부풀어 오른 씨앗들이 서성이고

가을편지와 떠나간 사랑과 상처 난 꿈들이

자꾸만 서성이는 것만 같다

 

?가을이 오면 지나쳐 온 이름들이

잊히지 않는 그리운 얼굴들이

자꾸만 내 안에서 서성이는 것만 같다

 

-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2023, 느린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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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란 계절은 참 묘한 계절이다. 기온이 다르고 바람이 다르고 만물의 색깔이 달라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화내던 사람도 낭만에 젖고 시인이 되고 한참씩이나 가을 구름을 올려다본다.

 

서성이다라는 말의 뜻은 한곳에 서 있지 않고 주위를 왔다 갔다 하다라는 뜻인데, 시에서 서성인다라는 의미는 물리적 움직임을 넘어선 정신적 동요나 그리움 기다림 사랑 등의 유의어로 확장해 나간다.

 

가을이 오면 창밖에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다고 한다. ‘문 열고 나가 보면 아무도 없고, 책상에 앉아도 등 뒤에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돌아보면 아무도 없단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 하는데 충만과 풍요의 계절이 아니라, 허전함과 기다림의 계절로 다가오는 것은 왜 일까?

 

시의 화자가 서성이니, 따라서 가을바람도 서성이고, 가을볕도 서성이고, 들국화도 서성이고, 가을 편지가 서성이고, 떠나간 사랑과 상처 난 꿈들이 서성인다고 노래한다. 세상 만물은 다 나로부터 다시 태어난다. 자신을 잘 갈무리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가장 충실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 가장 잘 사는 것이 아닐까?(*)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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