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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 한강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4-11-09 오전 11:00:23

서시
한강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도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문학과지성,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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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서시」를 읽으면 독자들은 제 각각 ‘자신’이 ‘자신의 삶’ 앞에 마주서게 됨을 안다. 자신의 삶 앞에 직면한 자신은 ‘현재의 나’이지만, ‘자신의 삶’은 지금까지 살아온 내면의 ‘진정한 자기 자신’이다.
시인은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나에게 말을 붙’인다고 하였다. 여기서 ‘운명’은 지금 이 순간까지 살아온 ‘진정한 자기 자신’이 아닐까. 늘 현재만을 살아온 시의 화자가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나는 순간이다. ‘내면의 나’가 ‘현재의 나’에게 ‘그동안/내가 마음에 들었니’라고 물었을 때, ‘현재의 나’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오래 있’겠다고 한다.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게 될지, 아니면 한없이 고요해져 평화를 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시의 화자는 그저 자신의 운명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서 운명運命이란, ‘초인간적인 힘에 의하여 이미 정해져 있는 숙명적인 삶’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초인간적인 존재에 의해 주어진 삶이지만 자신이 주인이 되어 운전해온 삶’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그 ‘운명’을 바라보는 이가 ‘나’이며, 지금까지 살아온 이도 ‘나’이기 때문이다. 이 ‘나’는 주어진 숙명적인 존재로서 피동적인 ‘나’가 아니라, ‘나’의 의지에 의해 삶을 살아온 주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운명運命의 ‘운運’이 ‘운전하다, 옮기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제자 원리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고 한다.
하여튼, 시의 화자는 자신의 운명을 ‘당신’이라고 칭하면서 다정히 그와 대화를 나눈다. 살면서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고,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그러나 정작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말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타자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라고 읊조린다. 단지 나의 고백과 나의 성찰만이 있을 뿐이다. ‘내가 사랑한 것들, 내가 후회한 것들, 내가 집착했던 것들...’을 향해 나는 그동안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삶을 구걸한 적도 있었고, ‘때로는/당신을 등지려고도 했’다라고 고백한다.
4연에서는 수많은 삶의 질곡을 헤매고 있을 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나는 그때서야 나를 진정으로 마주하게 된다. 이 말을 뒤집어 해석하면 당신이 나에게 찾아온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내가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내면의 자신을 만날 때를 말한다. 그때의 ‘나’는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을 가진 존재이고, ‘어리고/지워진 그늘과 빛을’을 지닌 존재이다. 그럴수록 시의 화자는 여린 두 손으로 야윈 얼굴에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오래 바라볼 거야’라고 노래한다. ‘거기,/당신의 뺨에,/얼룩진.’이라고 함으로써 얼마나 자신의 운명을 어루만지고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시에서 ‘당신’을 절대자인 ‘신’으로 해석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그러나 그때의 ‘신’은 객관적인 존재로서의 신이 아니라, 나를 어루만지고 사랑한 신이어야 한다. 두렵고 무섭고 재단하고 심판하는 신이 아니라, 따스하고 다정하며 때로 나의 삶이 될 수 있는 신이어야 한다.
2024년 노벨문학상위원회는 한강 작가를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역사적 트라우마(상처)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서정적 산문”이라고 선정 이유를 발표했다. 그녀는 소설을 쓰기 전 먼저 시로서 문학의 길을 걸었는데, 위의 「서시」는 그의 삶을 관통하는 자신의 ‘서시’이면서,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의 한 전신으로, 여리고 슬프고 아름답고 강인한 전형적인 주인공들의 모습을 지닌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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