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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 / 하린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4-04-27 오전 10:2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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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
하린
겨울잠 자기에 가장 좋은 곳은 통조림 속이다
이렇게 완벽한 밀봉은 처음
모든 수식어가 바깥에 머문다
이곳에서 1인극은 생리적 현상
숨이 막혀도 웃을 수 있고 들키지 않게 울 수도 있다
그대로 멈춰서 극한의 목소리를 삼키면 그뿐
믿어야 할 것은 오직 잠이고
유통기한은 무한대니 적을 필요가 없다
용도는 단순하게, 목적은 비릿하게
미발견종으로 1000년쯤 살다가
우연히 발견되는 고고학적 취향을 즐기자
미라가 돼서 타인의 꿈속을 유령처럼 걸어 다니자
누구든 통조림 안이 궁금해서 서성이게 만들면 된다
한참 후에 발견된 유언 몇 줄을 바코드로 새긴 상태면 족하다
어떤 천사가 뚜껑을 딱하고 딸 때까지
처음 그대로 변질도 없이 참다가
젓가락을 가져가는 순간, 꿈틀대면 되는 거다
계절은 딱 하나다, 궁핍도 가난도 비굴도 없다
머릿속 황사가 걷히고 심장 속 늪지대가 마르고
내가 나에게 들려주던 거짓말도 삭제된다
누군가를 저주하던 버릇은 버린 지 오래다
그런데 왜 증오는 토막 난 후에도 싱싱해지고 있는 걸까, 점점 더
- 『1초 동안의 긴 고백』 (문학수첩,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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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삶은 시간이 갈수록 단편적이고 고립화되어가고 있다. 지난 시대가 공동체 속에서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였다면 이 시대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독단적인 삶에서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린 시인의 「통조림」은 유폐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한다. ‘겨울잠 자기에 가장 좋은 곳’이 ‘통조림 속’이란다. 가장 ‘완벽한 밀봉’의 공간이며, 그 공간은 누구를 위해 그 어떤 것 앞에서 포장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노래한다. ‘모든 수식어가 바깥에 머문다’라고, ‘궁핍도 가난도 비굴도 없다’라고. 이런 점에서 보면 ‘통조림 안’은 치장할 필요도 없는 자기만의 세계이다. 어쩌면 가장 완벽한 알맹이의 세계이고 자유의 세계이다. 그래서 ‘유통기한은 무한대’이고, ‘믿어야 할 것은 오직’ 온전한 자신으로 돌아가는 ‘잠’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시의 화자는 외롭다. ‘숨이 막혀도 웃을 수 있고 들키지 않게 울 수도 있’는 공간이지만, ‘극한의 목소리를’ 홀로 삼켜야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통조림의 세계’란 바로 이런 것이다. 누군가 통조림을 열 때까지 ‘통조림’은 ‘미라’의 삶을 산다. ‘어떤 천사가 뚜껑을 딱하고 딸 때’, 그 순간 미라는 부활하여 ‘꿈틀대는’ 비릿한 생선이 된다. ‘궁핍도 가난도 비굴도 없’는 ‘통조림의 세계’이지만, ‘통조림’은 열려질 때 삶의 완성이 되는 아이러니의 세계다. 마치 모든 것을 가두고 자기의 세계로 침잠하면 ‘증오’는 끝날 줄 알았는데 여전히 그 증오는 살아있다는 걸 시인은 발견한다.
누군가를 저주하던 버릇은 버린 지 오래다
그런데 왜 증오는 토막 난 후에도 싱싱해지고 있는 걸까, 점점 더
-하, 모를 일이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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