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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야(雪夜) / 김광균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3-12-23 오전 9:40:42






설야(雪夜)

                            김광균

 

 

어느 먼-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나려 나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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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균 시인의 설야雪夜1938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오늘날 읽고 또 읽어도 늘 신선함과 풍부한 감성에 젖어들게 하는 명시입니다. 그것은 이 시에 사용된 문학적 장치들의 유기적 상승 작용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시에 사용된 대표적 문학적 장치들은 시적 상황의 사실적 묘사, 상상적 심상의 공감각화, 사물과 감성의 교감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 시의 시적 상황은 간명합니다. 눈 오는 밤, 홀로 있는 시의 화자는 외로움과 그리움에 견디다 못해 뜰에 내립니다. 뜰에는 흰 눈이 내려 쌓입니다. 그 내리는 눈을 시의 화자는 어느 먼-곳의 그리운 소식’, ‘서글픈 옛 자취’,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 등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사물인 흰 눈이 아니라, 시인의 정서(외로움, 그리움)와 교감하면서 이렇듯 흰 눈은 새롭게 탄생되고 있습니다. 특히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에서는 눈 내리는 모습의 시각적 심상에서 머물지 않고 청각적 심상으로 전이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더욱 상상적 이미지를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관능적이지만 저속하거나 비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과 만나고 싶은 마음을 내리는 눈과 결합하여 더욱 감각적이며 신비스럽고 아름답게 미화시킵니다.

 

이렇듯 이 시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는 4연인데, 이 구절은 마지막 연의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과 잘 연결시킬 때 더욱 절창임을 이해합니다. ‘차단한차단하다의 관형형인데, ‘차단하다의 뜻은 다른 것과의 관계나 접촉을 막거나 끊다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내리는 눈이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홀로 다른 존재와 관계를 끊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내 곁에 즉 나의 뜰에 하염없이 내려 쌓이는 눈은 나(시의 화자)와 관계없이 존재하는 눈입니다. 그래서 더욱 외로움과 슬픔만이 그 눈 위에 내려 쌓이는 것이지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내리는 눈홀로 관계를 끊은 의상衣裳 즉 옷이지만, 시의 화자는 4연에서 내리는 눈의 옷을 한 겹씩 벗깁니다. 실제적으로는 사랑하는 이와 어쩔 수 없이 먼 곳에 맺을 수 없는 존재로 있을 수밖에 없지만, 시인은 상상적(내면적)으로 그 옷을 벗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게 되는 것이죠. 마치 한용운 시인이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와 같은 시의 역설적 방식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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