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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길 / 정호승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3-05-05 오전 11:35:19

봄길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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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참, 특이한 것이 시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만약에 일상의 대화에서나 산문에서 이렇게 똑 같은 말을 반복하였다면 잔소리 같거나 지루하여 더 듣고 싶지 않을 때가 많은 겁니다. 그런데 이 짧은 시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같은 말 또는 비슷한 말의 반복으로 더 깊은 의미를 함축하기 시작하거든요.
특히 정호승의 이 시에서는 비슷한 말의 변주로 의미를 더 확장 심화시켜나가고 있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길이 있다’라고 선언해 두고 뒤이어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라고 변주시켜 나갑니다. 그리고 또 한 번 더 변주시킵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라고 확장 변화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킵니다.
세상은 평탄하지 않고 달달하지 않습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지’는 곳이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이 세상입니다. 그런데도 이 막막한 세상,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라고 절망의 끝에 희망의 꽃을 불러옵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읽다보면 어느새 자기가 봄 길을 걸어가는 전도사가 된 듯합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댓글1
잘 배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