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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이 오는 저녁 / 이영식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2-10-15 오전 8: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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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이 오는 저녁
이영식
기린이 온다
노을 지는 거리
사람들 제 키보다 몇 배나 긴
그림자 기린 한 마리씩 몸으로 끌며
하루를 건너고 있다
도시의 기린은
시각과 청각, 후각을 잃었다
밀림의 신사가 입었던
적갈색 기하학적 무늬도 버리고
무채색이다
직각의 빌딩 숲에는
더 이상 초록 꿈이 없다
하루치 일당보다
사바나가 그리운 기린들
차가운 보드블록 위에서 몸 섞는다
낮게 울며 끙끙거린다
서쪽 하늘 어스름 한켠에
개밥바라기별이 익고 있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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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오늘은 이영식 시인의 「기린이 오는 저녁」이라는 서정적이면서도 아련한 삶의 아픔을 아우르는 한 편의 시를 살펴볼까 합니다. 이번 시는 끝에서부터 한번 살펴보죠.
‘개밥바라기별’은 ‘금성’의 다른 이름이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샛별’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 시에서 금성이니 샛별이라는 시어를 사용하지 않고 개밥바라기별이라는 기호를 쓴 까닭은 무엇일까요? 금성은 과학적인 용어이며 샛별은 서정적이고 희망적인 기호이며 개밥바라기별은 우리의 서민적 삶의 정서와 맞닿아 생긴 기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밥바라기별이라는 것은 개가 저녁 무렵에 개밥을 먹을 때쯤 서쪽하늘에 떠는 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잖아요.
눈치를 채셨겠지만 이 시의 시적 대상은 기린이고 그 기린은 도시노동자의 삶의 힘든 그림자를 아름답게 미화시킨 시어입니다. 고된 하루를 보내고 ‘노을 지는 거리/사람들 제 키보다 몇 배나 긴/그림자 기린 한 마리씩 몸으로 끌며/하루를 건너고 있다’라는 2연을 보면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린은 본디 상서로운 동물로 인식되어 있지만 한편 목이 길고 풀을 먹는 동물로 육식동물들로부터 쫓겨 다니는 약한 동물로도 인식되어 있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 해에 비친 자신의 긴 그림자는 목이 긴 기린 같지만 저 사바나에 사는 기린은 아닌 것이죠. ‘시각과 청각, 후각을 잃어버린 무채색의 초록 꿈이 없는 그림자 기린’일 뿐입니다. 빌딩 숲을 돌아가는 목이 긴 기린의 서늘한 모습, ‘낮게 울며 끙끙거리’는 한 마리 개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금성이 아니라 샛별이 아니라, 개밥바라기별로 다가올 수밖에 없음을 이해합니다.
이 시대를 사는 도시 노동자들의 지난한 가난의 그림자, 사바나에 살고 싶은 기린의 꿈은 그 어디에도 없고, 그저 하루치의 무게만큼 모가지를 길게 빼어 추적추적 걸어가 저녁밥을 마주해야하는 소시민의 한 모습이 감겨오는, 서늘한 미학적 아름다움을 전하는 시입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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