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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수사학 1 / 손택수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2-01-08 오전 9:19:04

나무의 수사학1
손택수
꽃이 피었다,
도시가 나무에게
반어법을 가르친 것이다
이 도시의 이주민이 된 뒤부터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나도 곧 깨닫게 되었지만
살아 있자, 악착같이 들뜬 뿌리라도 내리자
속마음을 감추는 대신
비트는 법을 익히게 된 서른 몇 이후부터
나무는 나의 스승
그가 견딜 수 없는 건
꽃향기 따라 나비와 벌이
붕붕거린다는 것,
내성이 생긴 이파리를
벌레들이 변함없이 아삭아삭
뜯어 먹는다는 것
도로변 시끄러운 가로등 곁에서 허구한 날
신경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피어나는 꽃
참을 수 없다 나무는, 알고 보면
치욕으로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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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우리의 옛말에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지요. 아마 이 말은 풀밭이 많은 제주도는 말이 살기에 그지없이 좋은 곳이고, 사람이 많은 서울(도시)은 사람이 사람들에게 배울 것이 많은 곳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어서 이겠지요. 종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우주질서의 이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도시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다보니 이제 도시는 포화상태가 되고 배움의 원리 넘어 도시의 아우성이 분출하기 시작한 지도 꽤 오래 되었습니다.
손택수 시인의 「나무의 수사학1」을 읽고 있으면 이 도시적인 삶을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삶의 방식을 궁구하게 합니다. 시골 자연 속에 살던 나무가 이식되어 도시에 이주민이 된 나무는 다름 아닌 시의 화자이면서 도시의 삶을 가르치는 스승이기도 한 존재입니다. 허우적대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도시의 소시민이 된 나에게 어느 날 나무는 새롭게 다가옵니다. ‘도로변 시끄러운 가로등 곁에서 허구한 날/신경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나무는 말라죽어야 하거나 시들어가야만 함에도 오히려 꽃을 피운 겁니다. 이것을 시인은 ‘도시가 나무에게/반어법을 가르친 것이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시의 핵심은 이 도시적인 삶이 주는 현대인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서정적으로 읊은 점이기도 하지만 한편 나무가 가르친 반어법에 있습니다. 반어법은 나의 의중과는 반대로 표현하는 수사법이잖아요. 이 지옥 같은 도시에서 나무는 고통스럽다고 하거나 저항하거나 몸부림쳐야 함에도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드러내’지 않고 ‘속마음을 감추는 대신/비트는 법을 익히게 된’ 등을 통해 자칫 나무의 비굴한 모습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이 시의 참된 의미를 놓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도시의 나무는 ‘악착같이 들뜬 뿌리라도 내’려 꽃을 피워 올리고 있습니다. 이 점을 시인은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 그것은 반어적인 수사로 읽고 있는 점이지요. 비록 나무가 피워 올린 그 꽃에 ‘나비와 벌이 붕붕거리고, 내성이 생긴 이파리를 벌레들이 변함없이 아삭아삭 뜯어 먹고’ 있지만 이는 나무의 잘못이 아니라 이 도시의 생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나무는 나무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초록 이파리를 돋게 하고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지난한 몸짓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이 도시의 추악한 삶에 대한 가장 숭고하고 거룩한 저항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나무를 통해 삶을 읽어냅니다. 치욕으로 푸른 나무의 반어적 수사학을!!(*)
참을 수 없다 나무는, 알고 보면
치욕으로 푸르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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