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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의 기도 / 손택수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1-11-13 오전 8:18:54

탕자의 기도
손택수
나무는 종교가 없는데도 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여러 종교를 가져보았지만
단 한번 기도다운 기도를 드린 적이 없다
풀잎은 풀잎인 채로, 구름은 구름인 채로,
바람은 바람인 채로 이미 자신이 되어 있는데
기도도 없이 기도가 되어 있는데
사람인 나는 내가 까마득하다
가도 가도 닿을 수 없는 타향살이다
제자리걸음으로 천만리를 가는 별이여
떠난 적도 없이 끝없이 떠나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바위여
누가 세상 가장 먼 여행지를 자기 자신이라고 했던가
명소란 명소는 다 돌아다녀봤지만
흔들리는 꽃 한송이 앞에도 당도한 적 없는 여행자
하여, 나는 다시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이 부끄러움이나마 잊지 않고 살게 해달라고
이생에 철들긴 일찌감치 글러먹었으니
애써 철들지 않는 자의 아픔이나마 잊지 않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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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시인의 시를 읽으면 그 궁극에는 늘 삶의 진실과 만나는 것 같아 좋습니다. 가식 없고 소박하면서도 인간이 가 닿아야 할 강 밑바닥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번 시 「탕자의 기도」 역시 우리의 가슴을 잔잔하게 울려주고 우리를 반성케 합니다.
시인은 우리 주위에 있는 흔한 사물들 즉 나무, 풀잎, 구름, 바람 등등을 자세히 바라보고 자신의 삶을 반추해 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 같다’라면서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신을 향해 두 손 모으는 기도는 삶의 가장 진지한 자세이고 삶의 정수를 향한 소망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끊임없이 종교를 가지고 신 앞에 무릎을 꿇지마는 ‘단 한 번 기도다운 기도를 드린 적이 없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시인 손택수만이 그럴까요? 우리 모두는 다 엇비슷할 겁니다. 여기에 우리는 공감합니다. ‘나무는 종교가 없는데도’, ‘풀잎은 풀잎인 채로, 구름은 구름인 채로,/바람은 바람인 채로 이미 자신이 되어 있는데/기도도 없이 기도가 되어 있는데’ 우리 인간 존재만이 자신인 채로 살아가고 있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성찰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이 지구를, 이 우주를 그 답게 만드는 데 일조하기는커녕 손만 모으고 정작 훼손하는 탕자의 모습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죠. 그래서 ‘사람인 나는 내가 까마득하다/가도 가도 닿을 수 없는 타향살이다’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자리걸음으로 천만리를 가는 별’처럼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바위’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무가 나무에게로 돌아가는 팔 벌림처럼, 인간 역시 다른 곳을 향한 팔 벌림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팔 벌림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 같습니다. 기도할 때 눈을 감는 것은 신을 온전히 만나기 위함이며 또한 자신을 향한 여행임을 잊지 말아야 할 듯합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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