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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 고영민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1-06-26 오전 7:43:40

이사
고영민
고속도로 밀리는 찻길
옆 차선에 커다란 소나무 두 그루가 트럭에 실려간다
짐칸에 웅크리고 있는 가난한 내외 같다
잔뿌리들은 잘리고
먼저 살던 곳의 흙을 동그랗게 함께 떼어
얼기설기 새끼줄로 묶여 있다
흙이 말라 있다
저 흙도, 잘린 뿌리도 저 나무의 낡은 살림도구다
어디로 옮겨 심어질까
근근 어느 곳에 뿌리를 내릴까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어디에서 늦은 저녁밥을 지어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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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오늘은 고영민 시인의 「이사」라는 시를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트럭에 실려 가는 소나무 두 그루를 통해 우리네 삶의 한 단면을 그리고 있는 시입니다. 이사란 바람의 이동처럼 우리 인간에게 어쩔 수 없이 다가오는 삶의 한 양식입니다. 한평생을 살면서 한두 번 이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몇 년이 멀다 하고 터전을 옮겨 다녀야 하는 삶도 있습니다. 새로운 터전이 더 좋은 곳 더 희망적인 곳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짐칸에 웅크리고 있는 가난한 내외 같’은 나무의 삶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잔뿌리들은 잘리고/먼저 살던 곳의 흙을 동그랗게 함께 떼어’가는 것이 이사입니다. 두고 가야 할 것들이 있는가 하면 가지고 가야 할 것들도 있지요. 유전하던 것들을 떼어낸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또 한편 모든 것을 절연하고 떠나지 못하는 것이 이사이기도 합니다. 만약 모든 것을 절연한다면 새로운 삶은 뿌리 없는 삶이 되겠지요. 새로운 삶이 싹트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시인은 ‘저 흙도, 잘린 뿌리도 저 나무의 낡은 살림도구다’라고 노래합니다.
실려 간 나무가 어느 곳에 심겨 새로운 삶을 영위해가듯이, 이사 가는 내외도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그곳에 정착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늦은 저녁밥이지만 지어 먹어야 할 것입니다. - 어디에서 늦은 저녁밥을 지어 먹을까 - 우리는 모두 정착과 이사 속에 갈등하는 운명적인 존재들입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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