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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가 남겨졌다 / 나희덕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0-10-31 오후 4:05:23

구두가 남겨졌다
나희덕
그는 가고
그가 남기고 간 또 하나의 육체,
삶은 어차피 낡은 가죽 냄새 같은 게 나지 않던가
씹을 수도 없이 질긴 것,
그러다가도 홀연 구두 한 켤레로 남는 것
그가 구두를 끌고 다닌 게 아니라
구두가 여기까지 그를 이끌고 온 게 아니었을까
구두가 멈춘 그 자리에서
그의 생도 문득 걸음을 멈추었으니
얼마나 많이 걸었던지
납작해진 뒷굽, 어느 한쪽은 유독 닳아
그의 몸 마지막엔 심하게 기우뚱거렸을 것이다
밑 모를 우물 속에 던져진 돌이
바닥에 가 닿는 소리
생이 끝나는 순간에야 듣고 소스라쳤을지도 모른다
노고는 길고 회오의 순간은 짧다
고래 뱃속에서 마악 토해져 나온 듯한
구두 한 켤레, 그 속에는
그의 발이 연주하던 생의 냄새 같은 게
그를 품고 있던 어둠 같은 게
온기처럼 한 웅큼 남겨져 있다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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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나희덕 시인의 ‘구두가 남겨졌다’를 읽으면 빈센트 반 고흐의 ‘낡은 구두’가 떠오릅니다.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는 ‘낡은 구두’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예술작품의 기원’이라는 글에서 반 고흐의 이 구두를 언급하면서 ‘닳아빠진 신발짝 내부의 어둠으로부터 일터를 향한 고단한 발걸음이 밖을 응시하고 있다. 구두의 거친 무게 속 느린 걸음의 강인함이 응축된다.’라고 해석했습니다. 농촌 아낙이 신었을 낡고 해진 구두 한 짝. 그것은 한 농부의 삶이자 농부 그 자체로 인식했습니다. 황량한 벌판을 수도 없이 밟고 지나갔을 농부의 발걸음이 그 구두 속에 배이고 녹아 이제 그 구두는 한 삶의 모습을 온전히 재현하고 있다는 것으로 본 것이죠.
나희덕 시인 역시 한 켤레 구두를 보고 ‘그가 남기고 간 또 하나의 육체’로 보았습니다. ‘삶은 어차피 낡은 가죽 냄새 같은 게 나지 않던가’라고 되물으면서, 질긴 인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누구나 평탄하고 순한 인생길은 없습니다. 그 나름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은 낡은 구두 한 켤레처럼 처음 모습은 간데없고 거칠고 해지고 투박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투박한 모습에서 그 사람의 진실한 내면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해지고 낡았지만 강인한 모습은 그의 삶의 흔적을 말해줍니다.
그가 구두를 끌고 다닌 게 아니라
구두가 여기까지 그를 이끌고 온 게 아니었을까
구두가 멈춘 그 자리에서
그의 생도 문득 걸음을 멈추었으니
구두 한 켤레를 통해 삶이 여정과 종착지를 떠올리게 하는 나희덕 시인의 ‘구두가 남겨졌다’는 시는 독자들로 하여금 숙연하게 만듭니다. 특히 그의 사물을 바라보는 예리한 관찰력과 사람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밑 모를 우물 속에 던져진 돌이/바닥에 가 닿는 소리’ 등의 시적 표현들은 이 시의 주제와 잘 어울리는 탁월한 표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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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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