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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둥이 /서정주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18-03-19 오전 8:22:38

▲ 그림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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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시인님, 세상은 참 고르지 않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잘 사는 사람, 못 사는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그래서 노자는 그의 도덕경에서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는 말을 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천지가 어질지 않음은 인간의 숙명과 연결되고 인간의 숙명은 다시 인간의 운명과 연결됩니다. 특히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혹독한 운명이라면 그 고통과 설움은 짐을 져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서정주의 문둥이를 읽으면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가 떠오릅니다. 극한 상황에서 몸부림치는 인간 존재의 뒤에 일렁이며 휘몰아가는 핏빛 노을이 떠오릅니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 존재가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천지불인(天地不仁)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둥이는 문둥병 환자를 일컫는 말로서 나균(癩菌)에 의해 감염되는 전염병입니다. 요사이는 약이 좋아 어느 정도 치유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몇 천 년 전부터 있어온 인간이 고칠 수 없는 불치병으로 인간에게 고통을 안겨준 하늘이 내린 병이라 하여 천형(天刑)’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요즘에는 학술적인 명칭인 한센병(Hansen Disease) 환자로 부르지만 문둥이에서 나환자로 다시 나환우로 그리고 한센인으로 그 이름이 바뀌기까지는, ‘그 이름이 가지는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하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한센인들은 수용되어 생활하고 정부의 지원으로 그런대로 살기가 괜찮아졌지만, 수십 년 전 우리나라의 문둥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보다 훨씬 못한 대접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때 우리들 주위에는 문둥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를 갈 때는 보리밭에 숨어 있다 아이들의 간을 빼 먹는다는 말 때문에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때의 아이들은 문둥이다!’라는 말만 떨어지면 모두들 돌을 주워 마구 집어던졌으니, 문둥이는 하늘로부터 벌을 받고 인간으로부터 버림받은 존재로서 그들의 극한 고통과 고독과 비애는 가히 짐작할 수 없으리만치 심했을 것입니다. 서정주의 문둥이는 바로 인간 존재의 비극과 그 욕망 때문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원시인님, 문둥이들에게는 밝고 맑은 세상인 해와 하늘빛은 서러움의 대상일 뿐입니다. 오직 그에게 유일한 욕망은 자신의 몸이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해 내려오는 속설을 한 가닥을 지푸라기마냥 잡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보리밭에 숨어 있다 아이를 잡아 간을 빼 먹고 한 밤중 달빛에 어렴풋이 비친 아이의 주검을 보며 그리고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보며 문둥이는 절규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잡아먹을 때까지는 그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짐승 같이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희미한 달빛에 비친 아이의 시신을 발견하고는 자신이 저지른 죄가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지 그때서야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인간존재로 돌아온 그는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우는 것입니다. 그때의 울음은 소리를 다 내지 못하는 목이 컥컥 막히는 절규였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뭉크의 절규가 외부의 환경에서 오는 고통 때문에 몸부림치는 절규라면, 서정주의 문둥이의 절규는 내적인 욕망과 존재의 깨달음에서 몸부림치는 내적인 절규라고 보입니다. 그때의 울음은 피눈물일 것이고 나아가 꽃처럼 절정에 우는 존재의 고통입니다.

 

원시인님, 당신도 들고 있습니까? 그저께의 뉴스에 돈 때문에 부모를 죽이고 도망갔다 붙잡힌 패륜 이야기를. 자신의 사업을 위해 온갖 불법을 저지르고도 참회하지 않는 사업가 이야기를. 그리고 주어진 권력을 자신의 집단이나 자신의 욕망 달래기에만 추구한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그들은 오히려 문둥이들보다 더 못한 문둥이들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모두 뻔뻔스럽게 자신을 감추고 하늘을 가리기만 합니다. 그래도 서정주의 문둥이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몸부림이 있었지요. 짐승의 존재에서 인간의 존재로 바뀔 수 있는 것은 그 처절한 절규의 몸부림 때문이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짐승보다 나을 게 뭐가 있을까요?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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