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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6-23 오전 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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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나희덕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17-09-25 오전 11:26:10

            ▲ 그림 김수영

누에

                     나희덕

 

세 자매가 손을 잡고 걸어온다

 

이제 보니 자매가 아니다

꼽추인 어미를 가운데 두고

두 딸은 키가 훌쩍 크다

어미는 얼마나 작은지 누에 같다

제 몸의 이천 배나 되는 실을

뽑아낸다는 누에,

저 등에 짊어진 혹에서

비단실 두 가닥 풀려 나온 걸까

비단실 두 가닥이

이제 빈 누에고치를 감싸고 있다

 

그 비단실에

내 몸도 휘감겨 따라가면서

나는 만삭의 배를 가만히 쓸어안는다



 


원시인님, 누에를 길러보셨나요. 뽕잎 위를 꼬물꼬물 기어 다니며 초록색 이파리를 갉아먹던 그 정겨운 빗소리를 들어보셨나요. 누에는 무려 네 번이나 잠을 자고 난 뒤에야 번데기 속으로 자신의 몸을 숨긴다지요.

 

한 잠 한 잠을 잘 때마다 누에의 몸은 얼마나 부쩍부쩍 크는지 눈에 확연히 드러납니다. 몸집이 자라면서 뽕잎을 갉아먹는 소리가 다르게 들리지요. 갓 태어나 얼마 되지 않을 땐 먼지잼 정도의 빗소리를, 새끼손가락만큼 되면 봄날의 이슬비 소리를, 제법 손가락 크기만큼 되면 가랑비 소리를 내다가 완전히 성충이 되면 소나기 소리를 내지요.

 

누에 잠박에서 들리는 이 빗소리의 화음은 그 어느 악기보다 더 조화로운 자연의 빗소리를 닮아 듣는 이로 하여금 깊은 내면의 바다로 빠지게 하지요. 네 잠을 자고 5령이 된 누에는 드디어 성장을 멈추고 자신의 몸속에 든 노르스름한 진한 액을 토해 내기 시작합니다. 빙어의 몸처럼 투명한 몸을 지닌 오령(五齡)의 누에는 신령스럽기까지 합니다.

 

원시인님, 시인의 눈은 얼마만한 상상력을 지녀야 하는 것일까요? 나희덕 시인은 길을 걸어가는 꼽추어미를 보고 작은 누에를 떠올렸습니다. 꼽추어미의 등에 붙은 둥근 혹에서 누에고치를 연상하고 그 고치에서 다시 누에를 떠올린 상상력. 그리고 그 등에 짊어진 혹에서 비단실의 발견은, 연민의 대상이었던 꼽추어미의 혹이 생명 탄생의 알로 부활시켜 줍니다.

 

만삭의 배를 가만히 쓸어안는 시인의 눈은 따뜻하면서도 희망적이기까지 합니다. 자신도 언젠가 누에처럼 비단실을 토해낼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아니,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사랑을 토해내야 할 것입니다. 어찌 여인만이 아이를 낳고 비단실을 토해 놓겠습니까? 머지않아 우리 모두 언젠가는 다 비단실을 토해내는 빈 누에고치가 되지 않아야 할까요?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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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길
    2020-06-13 삭제

    우리 모두는 언젠가 자신의 사랑을 토해내야 할 빈 누에고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라고 하는 원시인님의 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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