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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꽃 / 최두석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1-09-26 오전 9: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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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꽃
최두석
새벽 시내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다니며 보고
다시 꽃 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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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아마 겨울 새벽에 버스를 타 본 사람이라면 이 시가 가슴에 절절이 와 닿을 겁니다. 특히 1980년대를 20대로 보낸 이라면...
버스 차창에 맺힌 성에를 보고 시인은 먼저 그것이 아름다운 ‘성에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꽃을 피운 이들을 떠올립니다. ‘처녀 총각 아이 어른/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 등 모두 우리 주변의 서민들입니다. 그들의 입김과 숨결이 밤새 찬 공기를 만나 이렇게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을 피워낸 것으로 봅니다. 그렇습니다. 사물은 사물인 채로 있습니다. 그 사물을, 사건을, 상황을, 누가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 세상살이인 것이죠. 시인은 그 ‘성에꽃’에서 ‘차가운 아름다움’을 보고 있습니다. 꽃은 아름다워야 하는데 시인은 그 꽃에 ‘차가운’이라는 역설적 수식을 함으로써 우리의 이웃들의 삶의 애환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는 더 나아가 ‘성에꽃 한 잎 지우고’ 그 차창 너머를 통해 ‘함께 길을 걸었’던 친구를 떠올립니다.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라고 끝맺음으로 독자들의 가슴을 멍하게 합니다. 그 차가운 겨울 새벽, 친구는 아마 감방에서 외롭게 성에꽃을 피우겠지요.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을(*)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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