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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2-01 오전 9:59:00

경산의 옛 지명 장산, 장산성의 위치는 어디?
2022년 경산학술대회, ‘경산의 기원과 행정구역의 정비’를 주제로 열려

기사입력 2022-11-07 오후 6:12:19

- 경산, 호국의 성지

- 장산성의 위치, 용산성이 아니다

- 신라의 중악 팔공산의 위치, 압독군(장산군)

- 시가 지원하는 학술대회 리뷰적 성격 탈피, 실질적 학술제로 발전했으면...


 

최정환 경북대 명예교수가 경산의 기원을 찾아 정체성을 밝히자라는 기조발표를 하고 있다.

 



경산이란 지명은 고려말에 탄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산으로 불리기 이전에는 장산’(獐山, 章山)이다. 장산군의 명칭은 장산성(獐山城)에서 나왔다. 장산성의 위치는 용산성(龍山城)이라는 학설이 있으나 용산성은 장산성과 전혀 관계가 없는 곳이다.”

 

그럼 장산성의 위치는 어디인가?

 

경산의 기원과 행정구역의 정비를 주제로 2022년 경산학술대회가 2일 삼성현역사문화관에서 열렸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경산의 기원과 행정구역의 정비에 관한 리뷰중심의 주제발표와 토론이 있었다. 압독(押督)-장산(獐山,章山)-경산(慶山)으로의 변천과정과 행정구역에 대한 소상한 리뷰와 장산의 치소(治所)인 장산성의 위치에 대한 새로운 견해가 제기됐다.

 

경산의 기원을 찾아 정체성을 밝히자라는 주제로 기조발표를 한 최정환 경북대 명예교수(최치원 문화연구원 원장)기록상 장산성을 용산성으로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으므로 용산성(용성면 곡란리)을 장산성으로 볼 수 없고, 장산성의 위치는 세종실록지리지 등에서의 경산현 경계기록, 고려에서부터 경산의 별호가 옥산(玉山)이라는 점, 옥산동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 등에서 성터로 추정될 여지가 있는 점 등을 볼 때 옥산동 유적이 장산성 옛터이고 장산군이 위치한 곳이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시대별 장산군·경산군의 변화와 치소를 다룬 주제발표와 토론에서는 장산성의 위치를 길목이 좁아지는 노루목을 나타내는 장(노루)자를 쓴 점에 비추어 연호산이라는 설, 장산은 경산지역의 상징적인 산세를 말하고 임당 일대가 중심지라는 주장, 장산성은 읍성일 수도 산성일 수도 있다며 경산읍성일 가능성이 크고, 산성일 경우 옥산과 마암산(馬巖山) 등지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 등이 제기됐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장산성의 위치 비정에 대한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경산이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는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 전초기지로서 호국의 성지라는 데는 인식을 같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김유신이 압독주 군주로 파견되었고, 태종무열왕의 둘째 아들이자 문무대왕의 친동생인 김인문이 군주로 임명되어 장산성을 축조했다.(삼국사기 신라본기) 또한 신라가 국태민안의 제사를 올리는 오악 중 으뜸인 중악이 팔공산인데 제사지에 팔공산의 위치를 압독군이라 명기(삼국사기 잡지) 했다고 밝혔다.

 

우리 경산은 역사연구의 중심지가 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고대 압독국의 찬란한 유산 위에 최고의 불교사상가인 원효대사를 비롯한 삼성현을 배출한 호국성지로서 강력한 정체성이 있는 도시이다.

 

앞으로 경산시가 지원하는 학술대회는 리뷰적 학술제가 아니라 경산의 정체성을 보다 명확하게 규명하고 시민의 교양을 높이는 등, 소중한 예산을 투입하는 만큼 실질적인 측면이 보강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초등학교 교사이자 동화작가인 이초아 선생님이 지은 압독국 유물탐험대’(2019 학이사어린이)라는 동화책 한 권이 우리나라 전체 청소년들에게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압독국을 각인시켰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최상룡(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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