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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비전과 본질을 생각한다
[편집위원 칼럼] 영화로 풀어보는 교육이야기(1)

기사입력 2018-04-06 오후 5:27:50

  전종대

  무학중 교사, 시인

  경산인터넷뉴스 편집위원

 


 

아득한 교육의 숲

 

교육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존재하는 숲속 같다.

 

지나간 나무들의 이야기는 현재의 나무들의 밑거름이 되며 오늘의 나무들은 더 높은 하늘로 뻗어야할 미래의 하늘을 꿈꿔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현재의 숲길을 걷고 있지만 그 숲엔 어제의 낙엽이 쌓여 있으며 내일의 새싹들이 꿈꾸고 있다. 그렇지만 교육의 숲은 어제와 오늘의 이야기보다 오히려 내일의 이야기를 전제로 하는 것이 더 본질적일 것이다. 교육 내용의 대부분이 과거나 현재의 내용이지만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답습에 불과한 벽 앞에 선 쳇바퀴 교육에 머무를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현재를 살아있게 하고 현재를 풍성하게 한다. 하지만 미래는 투명하지 않으므로 교육의 숲은 늘 안개 낀 숲과 같다. 이런 점에서 교육자의 발걸음은 더욱 조심스럽고 더딜 수밖에 없다. 한번 잘못 걸어간 길을 되돌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이 국가적인 틀 속에서 제도화된 지 70여 년이 흘러왔지만 여전히 교육의 숲은 아득하고 때로는 갈팡질팡 우왕좌왕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우리의 교육은 조금씩 발전해 왔고, 해결해야할 난제가 많지만 미래를 위한 발걸음은 움직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교육의 몸부림은 커지만 너무나 이질적인 두 짐승이 한 우리에 든 것처럼 우리의 교육은 혼란스럽다. 더 좋은 학교 진학을 위한 입시 욕망과 학생 개개인의 잠재된 자질과 개성의 계발이라는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이는 사회의 욕망과 개인의 욕망이라는 두 측면의 대립이기도 하며 타자의 욕망과 자아의 욕망이라는 두 문제이기도 하다. 어느 길로 걸어갈 것인가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교육이 나아갈 길은 엄연히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을 다른 것에서 찾지 말고 교육의 본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조금이라도 후회를 덜 할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교육이라는 속성이 미래의 비전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명확하지 않으며 아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래는 언제나 유동적이다. 그 미래에 살 아이들 역시 바람처럼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들이 만든 욕망은 틀 속의 욕망이다. 그 틀 속의 욕망 추구는 낡은 교육관에서 비롯된다.

 

아이들을 숲 속에 풀어놓아야 하며 모든 것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은 현재를 살아야 하며 현재를 즐기면서 또한 스스로 미래를 찾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스스로 욕망의 주체가 될 때 아이들은 역동적이며 적극적인 삶을 추구할 것이다. 교육의 숲에서 교육자와 학부모와 교육 당국은 무엇보다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필자는 자라나는 아이들을 좀 더 잘 이끌어 갈 수 있게 하는 교육의 본질과 비전을 다음 세 편의 영화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와 카르페디엠

 

그 첫 번째 영화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1989년에 나온 피터 위어 감독의 성장 교육 영화이다. 현대 교육의 맹점을 비판한 사회 비판 영화로 1950년대 미국의 보수적인 남자사립학교 웰튼을 배경으로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로 인해 겪는 학생들의 자유와 상상력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다루는 내용이다.

 

1959년 뉴잉글랜드에 자리한 웰튼전통, 명예, 규율, 최고를 가치로 내건 전통의 명문 고등학교이다. 이 학교는 아이비리그 진학률 70% 이상을 자랑하며 입시 사관학교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자신의 꿈을 스스로 설정하지 못한 채, 성공한 아버지의 전철을 밟아 의료계, 법률계, 금융계로 진출할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신임 영어 교사 키팅 선생님이 부임한다. 키팅 선생은 이 학교 졸업생이기도 한데 첫 수업부터 학생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할 것을 주장한다.

 

이 학교 학생들 대부분은 성공한 부모들의 가치관에 따라 자신의 꿈마저 재단당하는 현실에 있었는데, 키팅 선생의 가르침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삶은 남이 정해준 가치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 아님을 역설하며 진정 자신이 어떠한 삶을 원하며 무엇을 원하며 사는지를 되묻게 하였다.

 

하루하루를 정해진 룰에 따라 학교생활을 하던 학생들은 키팅 선생의 가르침을 얻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현재를 되돌아보게 되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 중 닐, 녹스를 비롯한 7명의 학생들은 키팅 선생이 창립 멤버였던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비밀 서클 조직을 이어나가기 시작한다. 학생들은 한밤중 기숙사를 몰래 빠져나와 숲속에서 위대한 작가들의 시를 읽으며 입시에 대한 부담감으로 일그러진 자신들의 청춘을 발산하기에 이른다.

 

한편 학생공연에 참석하게 된 닐은 평생 연극을 하겠다는 각오로 무대에 오르지만, 그의 부모는 닐에게 의사가 될 것을 강요한다. 부모의 강압에 못 이긴 닐은 결국 아버지의 권총으로 자살을 하고, 그를 부추겼다는 책임을 키팅 선생에게 전가시켜 결국 키팅 선생은 학교를 떠나게 된다. 학교를 떠나던 날 학생들은 모두 책상 위에 올라가 캡틴, 오 마이 캡틴(Captain, Oh my Captain!)’이라고 외치며 진정한 가르침을 준 선생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키팅 선생은 떠나지만 그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려 했던 가르침은 온전히 뿌리내렸음을 알려주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교육의 본질과 교육이 나아갈 길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키팅 선생님의 독특한 수업 방식이다. 외우고 쓰고 풀이하는 전통적인 수업 방식에서 벗어나, 첫 시간부터 스스로 책상 위에 올라가 수업을 진행한다. “내가 이 위에 선 이유는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려는 거야. 이 위에서 보면 세상이 무척 다르게 보이지. 믿기지 않는다면 너희들도 한번 해봐, 어서.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다른 시각에서도 봐야 해. 바보 같고 틀린 일처럼 보여도 시도를 해봐야 해.”라고 하는 키팅 선생의 말은 학생들의 고정된 사고의 틀을 흔들어 깨웠다. 책상 위에 올라간다는 것은 틀에 박힌 수업에서 탈출이며 변화를 의미한다. 이는 학생들의 사고를 틀 속에 매여 두지 않으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사물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고정된 틀 속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있는가? 오직 하나의 기준을 설정해 두고 그 기준에 따라 사물을 재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짚어 볼 일이다.

 

시 수업 시간에는 또 어떠한가? 키팅 선생이 학생들의 시 수업 교재를 찢게 만드는 장면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교재를 찢다니. 시를 알기 위해 운율, 음조를 따져봐야 한다는 원론이 쓰인 페이지에 대해 키팅 선생은 쓰레기라고 일갈한다. 시를 분석하고 측정하는 대신 그는 시 본연의 가르침을 들으라고 한다. 학생들이 키팅 선생의 권유에 따라 교재를 찢는 장면은 권위에 물든 학교의 제도화된 교육에의 반발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시의 본질은 그런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학교 진학을 위해 라는 것을 틀 속에 넣고 재단하여 시를 공부하는 것은 의 본질에서 벗어난 일이며 이러한 수업은 모든 사물이나 사건을 바르게 보지 못한다는 상징의 표시이다. 키팅 선생의 이러한 수업 방식은 사물을 고정된 시각으로 보지 말기를 바라며,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서 틀 속에 매여 있지 않기를 바라며, 무엇보다 자신의 시각으로 새롭게 사물을 바라볼 것을 강조하는 수업 방식이었다.

 

둘째, 이 영화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교육의 길은 명대사 카르페 디엠(Carpe Diem)’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를 즐겨라. 저 사진 속 100년 전 학교 선배들이 지금 너희들에게 무언가를 말하지 않니? 저 침묵의 목소리를 들어보아라. ‘카르페디엠이란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우리 모두는 결국 죽는다. 시간이 있을 때 장미 꽃봉오리를 즐겨라. 너만의 인생을 살아라. 자신의 삶을 잊히지 않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 대사는 키팅 선생이 학생들을 100여 년 전 이 학교를 다녔던 학생들의 사진과 트로피가 진열된 공간으로 데리고 가서 한 말이다. 아이들에게 단 한순간이라도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하고, 또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지를 전달하고자 한 말이다. 자신의 의지로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만이 더 발전된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얼마나 우리의 기준과 잣대로 아이들을 키우는지 우리 자신들이 스스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진정한 교육은 아이들에게 우리 기성세대들의 틀을 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틀을 만들도록 배려해 주는 일이다. 더욱이 우리의 교육이 학생들의 소중한 현재를 미래에 저당 잡힌 상태로 매이게 하는 현상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지금 이 순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충실할 때 진정 값진 미래는 보장되는 것이다. 엄밀히 따져 본다면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는 것이다. 오직 현재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현재를 잘 사는 것, 잘 살게 도와주는 것, 그것이 또한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이 미래를 잘 살게 도와주는 일이 아닐까?

 

이 영화의 제목 죽은 시인의 사회역시 교육의 진정한 길을 모색해 볼 수 있게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미국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에서 따온 말로, 영화에서 학생들이 만든 비밀 서클을 뜻하기도 한다. 또한 웰튼 출신의 키팅 선생이 자신의 학창 시절 가담했던 시 낭독 비밀 서클의 이름이기도 하다. 키팅 선생은 자신의 학창 시절 학교 근처의 오래된 인디언 동굴에 친구들과 모여 휘트먼, 셸리와 같은 시인들이 쓴 고전 시를 낭독하며 낭만을 키운 경험담을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그는 입시 위주의 교육에 찌든 자신의 제자들도 자신이 경험한 낭만을 알게 되길 바란다. 학생들은 키팅 선생의 가르침을 통해 같은 이름으로 비밀 서클을 만들고 함께 잔디에 모여 명시를 읽으며 인생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명문대 입시를 위해서 자신의 현재를 모두 내맡긴 채 억압당하던 학생들을 위한 일종의 해방구로 작용하는 역설적인 단어가 죽은 시인의 사회였다. 시인이 죽은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시인은 권력도 명예도 부도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로 우리의 가슴 저 밑바닥에 존재하는 가장 순수한 별 같은 존재이다. 그 존재를 죽이는 것은 비록 화려할지 모르지만 낭만도 기쁨도 희망도 없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죽은 시인을 살리기 위해 그들은 동굴에 모였고 그들의 몸부림은 현재를 살리고 자신을 일깨우는 깨어있는 삶이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한 해답을 시사해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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