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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6-22 오후 2:20:00

감수성아! 깨어나렴~
[은빛수녀의 사색노트]

기사입력 2020-01-17 오전 9:20:40





몇 년 전부터 그동안 꺼려했던 화초 가꾸기를 다시 시작했다. 사실 전에는 누가 화초를 선물하면 부담스러웠다. 예쁘다는 생각보다 어떻게 키우지?’ 하는 걱정이 앞선 탓이다. 한 두개 키워봤지만 내 손에 무슨 저주라도 걸린 건지 키우는 화초마다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린 후부터는 아예 사무실에 화초를 두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화초에게 안부도 묻고 이야기도 한다. 물주는 날을 특별히 기억하지 않아도 화초를 보면 내가 물이 필요해요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멈춰 서서 바라보니 여유가 생기고 마음이 넉넉해지는 기분이다. 잠자던 감성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는 것 같다.

 

화초를 키우면서 감수성이 커가는 느낌을 받는 것은 단지 화초를 잘 키우게 돼서만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화초를 돌보기 위해 멈춘 시간 덕분이 아닌가 싶다.

 

멈추니 범람하던 생각과 감정이 가라앉으면서 컴퓨터와 스마트폰 속 가상세계를 떠돌던 감각이 현실 세계로 차분히 돌아오는 것 같다. 그러면 분주함으로 지나쳤던 내 마음이 보인다. 그리고 내 마음이 보이니 꽃들도 보인다.

 

이전에는 두렵기만 하던 꽃들인데, 지금은 꽃을 보면 마음이 환해진다. 멈춰 서서 바라보고 머무는 이 순간, 묶였던 감성이 숨을 쉬면서 딱딱한 마음이 촉촉해지고 말랑해지는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더 젊어졌다” “좋아 보인다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결코 젊어져서가 아니라 전보다 부드럽고 유연해 보인다는 말일 게다. 이렇게 감수성을 키워가다 보면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고 네가 즐거우면 나도 즐거운 공감의 힘도 점점 커지겠지 하는 기대도 해본다.

 

감수성은 상대의 희로애락이 내 마음으로 흘러들어와 상상하고 공감하도록 해준다. 이런 의미에서 감수성은 마음의 능력이자 다른 세상과의 연결고리다. 그런데 감수성을 키우려면 감각이 예민해야 한다. 감각이 예민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가? 살아 있는 진짜 외부 세상과 아날로그적으로 접촉하면서 소통할 때 우리의 감각은 열리고 발달한다.

 

그런데 우리는 인터넷, 스마트폰, 텔레비전 같은 장소가 없는 공간’, 메이로비츠가 명명한 감각을 잃은 공간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의 우리는 리얼리티 쇼, 서바이벌 게임, 오디션 프로그램 속의 진짜 같지만 편집된 현실, SNS와 온라인 게임 속 가상공간을 넘나들며 세상을 체험한다. 옛 어른들은 살다 보면 알게 된다라고 했지만,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삶의 공간은 더 이상 살다 보면 알 수 있는 옛날의 그 장소와는 다르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상현실은 드라마틱한 기승전결과 반전이 있다. SNS 속의 연출되고 편집된 가상현실은 환상과 낭만을 꿈꾸게 한다. 그래서 더 ㅉㆍ릿하고 흥분되고 자꾸 끌린다. 그런데 이렇게 가상공간에 감각이 길들여지면 진짜인 현실은 심심하고 밋밋하게 느껴진다. 마치 조미료에 길들여진 입맛으로 인해 재료 봄연의 맛을 음미하지 못하듯,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오는 미세한 떨림과 신비한 존재감을 알아채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속삭이는 새소리, 꽃의 흔들림, 미세한 표정의 변화, 평범한 이웃의 이야기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본디 섬세하게 반응하도록 태어났다. 아이를 보라. 아이는 작고 사소한 것에 깔깔거리며 신기해하고 감탄한다. 기어가는 개미 한 마리, 길가에 피어 있는 들꽃 한 송이, 날아가는 나비 한 마리에 발길을 멈추고 눈길을 준다. 우리 또한 이러했다. 우리는 세상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에 이토록 섬세하게 반응하는 존재로 태어났다. 잠자던 감성을 살리는 것은 우리 본연의 존재를 회복하는 것이다.

 

지천으로 꽃이 널려 있어도 내가 멈춰 서서 보지 않으면 꽃은 볼 수 없다. 세상은 내가 관심을 기울인 만큼만 반응한다. 아날로그 세상 속에서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부딪치면서 내 몸의 오감을 통과하며 자라는 상상력은 삶을 책임지고 사랑할 에너지를 준다. 그렇기에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시간을 보내는 그만큼 사람과 접촉하고 자연 앞에 멈추려 한다.

 

작고 소리 없는 미세한 것 앞에 멈춰 말을 걸고 싶다. 매일 마주하는 사람과 자연에 몸을 멈추고 마음을 멈춰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 그렇게 날마다 잠들어 있는 감수성을 깨우고 싶다.
















 

 

 




 

편집/최상룡 (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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