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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와 ‘넹~’ 사이에서
[은빛수녀의 사색노트]
기사입력 2019-12-13 오전 8:16:20

언젠가 어떤 사람에게 톡을 보냈는데 돌아온 답이 ‘네, 알았습니다“였다. 평소 친한 사이인데 그 순간은 왠지 생소한 느낌을 받았다. 어느새 나도 톡에 감정을 담고 소통하고 있었던 거다.
문자 한 줄에 차가움과 따뜻함이 확연히 구분된다. 그래서 친한 사이에는 “알았습니다” 대신에 “넹~” 하는 단 한 글자가 더 친밀하게 느껴진다. ‘알겠어요~’ 하거나 ‘○○야~’라고 물결무늬 꼬리표를 붙이면 훨씬 부드러운 톤으로 느껴진다.
SNS 메시지는 글로 적지만 말이다. 느낌과 감정을 전하는 ‘말’이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문자, 카톡, SNS 메시지는 감정이 실린 살아 있는 목소리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실제 말도 목소리와 톤, 표정이 함께 어우러져야 그 나마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에 가깝게 상대에게 표현되는데, SNS는 글인데도 말로 받아들여지니 감정을 더 과장되게 표현해야 한다. 우리가 다양한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나는 평소에는 다정하고 따뜻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편이다. 대체로 이성적이고 직설적인 편이다. 그런데 이런 나도 카톡에서는 과장되게 표현하게 된다.
그냥 ‘○○씨’ 하면 상대방이 딱딱하게 느낄 것 같아 물결무늬를 붙인다. ‘알았습니다’ 하면 왠지 건조하고 ‘알았습니당~’ 하면 친밀감 있게 느껴져 기분이 더 좋다는 걸 알고 나니 나도 다른 사람에게 ‘알았습니당~’한다. 스마일 이모티콘이나 재미있는 캐릭터를 사용하면서 의식적으로 친절하려고 꽤나 신경 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직접 얼굴을 마주할 때는 절대 “알았습니당~”하고 말하지 않는데 말이다.
일상에서의 나는 SNS에서의 소통만큼 감정을 상냥하게 잘 표현하지도, 친근하게 먼저 다가가지도 못한다. 생각해보면 SNS가 진짜 나보다 더 친절하도록 나를 교육하는 것 같다.
언젠가 강의 청탁을 해온 S 씨와 카톡으로 소통하는데 자꾸 주제를 바꾸고 요구사항도 이랬다저랬다 하는 거였다. 그러다 보니 강의 바로 직전에 내용을 바꾸어야 할 정도였다.
만약 전화로 소통했다면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나는 기분 나쁜 목소리가 그대로 노출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강의할 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분 좋게 강의하고 싶었고, 이왕 하기로 했다면 이것저것 따져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카톡 상에 내 기분 나쁜 감정이 그대로 자국을 남긴다면 강의를 하고 나서도 찜찜할 것 같았다. 그래서 최대한 감정을 감추며 톡을 찍어나갔다. “제가 그렇게 이해하지 않았는데, 부탁하신대로 하도록 노력할게요.”
그리고 강연장에 갔다. S 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맑게 웃으며 나를 맞으러 나왔다. 솔직히 나는 내심 그와 거리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러나 카톡 상에서 나는 무척 친절했었다. 그런데 굳이 현실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웃는 게 진짜 웃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대한 밝은 모습으로 다가갔다. 순간, 내면의 나와 다른 태도를 보이는 내가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그때 마음속에서 S 시에 대한 감정을 털어버리라는 소리가 들렸다. ‘주님, 제가 그에 대한 감정을 좋게 바꾸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의를 듣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제 껄끄러운 감정을 씻어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기도 덕분이었을가. 강의는 즐겁게 진행되었고 반응도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그는 강의가 끝나고서야 안심이 되었는지 활짝 웃는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고개 숙여 사과를 건네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불안해서 이 사람 저 사람 의견을 듣다 보니 수녀님께 실례를 범했습니다.”
나는 밝은 미소로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괜찮았다.
카카오 메시지가 나를 인내하도록 만들어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전송한 글은 각자 자기 생각대로 해석하게 되고 계속해서 남게 된다. 그러면 오해도 쉽고 상처도 깊고 길게 남는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불편한 상황을 표현할 때에는 지우고 쓰고 도 지우고 쓰면서 고민하게 된다. 직접 말할 때보다 적어도 호흡 한 번 가다듬을 여유가 있으니 한번 보낸 글은 다시 번복할 수 없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더 신중해지고 더 친절해지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늘 이모티콘과 톡으로 나의 솔직한 감정을 숨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때로 싫다는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서 내가 사용하는 방법은 두가지다.
하나는 용기를 내어 만나서 소통하는 것이다. 온화하게 다가가서, ‘싫어요’가 너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향한 나의 진심임을 용기 내서 표현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좋아요’라고 했으면 그 말에 책임을 지고 진심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물론 둘 다 쉽지는 않다.
나는 S 씨와 메신저를 통해 소통하면서 ‘싫어요’라고 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나의 기분을 감추었다. 분명 가식이고 위선이다. 그러나 다행히 덕분에 기도할 수 있었다. 서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친절하게 소통했던 것처럼 현실에서도 친절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나름 애를 썼다. 그러자 감사하게도 S 씨는 나에게 사과했고, 나 역시 그에 대한 껄끄러운 감정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졌다.
가식적인 가상공간에서의 나의 친절함을 진짜로 바꿀 수 있었던 이번 경험이 더없이 특별하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내가 현실에서도 매 순간 이모티콘처럼 그렇게 밝게 웃으며 ‘좋아요’라는 긍정의 감정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 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온라인에서의 말과 오프라인에서의 삶이 점점 더 하나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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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최상룡(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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