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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도 악이 된다
[은빛수녀의 사색노트]
기사입력 2019-03-23 오전 11:10:02

“걱정과 근심 그리고 초조함은 죄와는 다르지만 절망의 나락에 빠지게 하는 악이 된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신앙인들은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가치에 따른 집착과 규칙에 위배될까 저어하는 두려움으로 지나친 걱정을 하게 됩니다. 살레시오 성인은 너무 많은 것을 염려하고 걱정하면서 시간을 보내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이런 사람을 수벌과 비유합니다.
“수벌은 꿀벌보다 더 요란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나 그들이 만드는 것은 꿀이 아니라 밀랍일 뿐이다.”
수벌을 가만히 보십시오. 늘 벌집을 들락날락하면서 요란한 소리로 윙윙대며 날라 다닙니다. 그러나 가만히 지켜보면 바쁜 것처럼 보이지만 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수벌은 덩치만 컸지 일하지 않고 집을 짓지도 않으며 꿀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시끄럽기는 이루 말할 데 없으며 그저 여기저기 날아다니다가 시간을 다 보냅니다.
현대인은 매우 바쁩니다. 게다가 우리 한국인은 성급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디지털 조급증”에 걸렸다고 말합니다. 남들은 다 아는 것 같고 남들은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자신만 뒤처지는 듯한 걱정이 우리를 조급하게 합니다. 넘치는 정보는 우리의 욕심을 자극하여 근심에 빠트리고 성급함을 부추깁니다. 이러한데서 오는 조급증을 스트레스성 질환이라고 진단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좋은 일이 생겨도 안 되면 어쩌지 걱정하고 나쁜 일이 생기면 결과에 대한 온갖 비관적인 상상으로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살레시오는 선동이나 내분이 나라를 망치게 할 뿐 아니라 외세의 침략에 저항할 수 있는 힘도 앗아가듯이 걱정은 바로 자신을 선동하여 마음의 분열이 일어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저항력을 떨어지게 한다고 말합니다.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문제 해결에 대한 자신감 부족, 지나치게 잘해야겠다는 긴장감이 마음과 신체의 에너지를 앗아갑니다. 이로 인하여 성급함, 초조함, 불안, 좌절, 근심, 인내심 부족, 대화부족, 부정적인 사고, 강박이 자신을 지배하고 맙니다. 누구를 위한 근심입니까? 무엇을 위한 걱정입니까? 이웃과 세상을 위한 걱정일지라도 걱정 그 자체는 올가미가 되어 나를 구속합니다.
지나친 걱정을 자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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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최상룡(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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