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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6-22 오후 2:20:00

SNS 세상에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은빛수녀의 사색노트]

기사입력 2018-02-22 오후 1:03:38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대하여 생각해요. 한번 사용하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착에서 오는 슬픔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소유하고 싶고 소비하고 싶은 욕망의 덫에서 흘러나오는 슬픔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빛내주는 슬픔, 그런 슬픔은 곧 나를 희망으로 이끄는 소중한 감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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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안톤 슈낙Anton Schnack<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글이 생각나나요?

가끔 몇몇 글귀가 떠오를 때가 있어요.

울음 우는 아이들, 가을날 비, 아버지의 편지, 술 취한 여인,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종소리, 빛깔, 어릿광대…….” 이 슬픔의 언어들이 가끔은 낡은 흑백사진처럼 잔잔하고도 서글프게 나의 가슴에 헤집고 들어오곤 해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온갖 소리로 가득한 이 시대의 거리에서는 울음 우는 아이들에게 귀 기울이기가 쉽지 않아요. 오염된 비를 맞을 수도 없어 쓸쓸한 가을날의 비를 느끼기도 어렵고요. 카톡이나 문자메시지로 주고받아 편지 같은 것은 기대하기도 어려워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체취와 서글픔이 묻어나는 편지가 주는 기억도 아스라하답니다. 오늘의 현란하고도 화려한 거리에서 안톤 슈낙이 만났던 술 취한 여인에 대한 연민의 정과 노파의 눈물로 애틋한 분위기에 젖어들기도 어려워요. 문명의 갈고리로 다듬어진 기형적 자연과 빛의 속도로 쌓아 올린 화려한 디지털 환경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게 눈길조차 줄 여유가 없어 슬퍼요.

 

각자는 골방에서 세상을 만나고 세상은 골방으로 찾아오지요. 직접 만짐으로 얻어지는 접촉의 체험이 사라져가고 있어요. 만지고 부딪치고 아파하면서 기쁨과 환희로 확산되어가는 진귀한 여행길을 잃어가고 있으니 서글프지요.

안톤 슈낙이 바라보았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만날 수 없어 정말로 슬퍼요. 직접 만져지는 세상에서 넘어질 수 있고, 또 넘어짐으로써 머무를 수 있고, 머무름으로써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도 전할 수 있거든요. 그러나 디지털 세상을 사는 우리는 좌절을 모르고 끊임없는 욕망의 게임 속에 말려들어요. 그래서 아픔이 없는 가상공간에 갇히고야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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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만나고 접속하며 살아가지만, 더 만날 수 없어요. 그 어느 때보다 더 촘촘히, 더욱 가까이, 아래위로 모여 살지만 드문드문 흩어져 살았던 그 옛날보다 더 멀리 있는 오늘의 이웃이 슬퍼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게 체험하고 자극적인 감각 속으로 빠져들지만, 그 어느 시대보다 느끼지 못하는 우리의 무감각이 슬프고요. 순간에 끝나고 흥분하게 하는 가상의 접속으로 울음 우는 아이나, 가을날의 비, 낡은 편지, 그리고 어릿광대를 만날 수 있는 진짜 접촉의 공간을 잃어 슬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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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언제든지 누릴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은 더욱더 부풀려지고 있고요. 가상세계에서 모든 것을 채워주는 만큼 더욱더 공허해지는 우리의 진짜 현실의 공간을 누리지 못해 정말 슬픕니다.
어렵고 힘든 현실에서 판타지를 향한 욕망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지요.


꿈의 공장인 드라마에서 한없는 신분상승의 욕구를 채워나가고, 조금만 살이 오르면 뚱뚱하다는 콤플렉스에 갇혀 거울만 바라보는 여성들, 타고난 자신의 특별함을 발견하기도 전에 성형을 하고 또 이를 당연히 여기는 사회 분위기. 이 모든 것들이 정말로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가짜라도 명품이여야 자존감이 선다는 사람들의 농담이 슬프고 마네킹들의 행렬처럼 거리를 메우는 유행성 바이러스를 나르는 화려한 의상 또한 슬퍼요. 로또복권에 인생을 거는 사람들의 이야기, 또 복권에 당첨되면서 애틋한 사랑마저 깨지고 깊은 상처만을 안게 된 어느 예비부부의 사연이 슬퍼요. 몸을 숭배하면서 영혼은 소외시키는 잘 먹고 잘살아보자는 웰빙족들의 바동거리는 몸짓 또한 정말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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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은 방황합니다. 돈과 성공에 목숨 걸게 하는 물질주의와 외모도 실력이라는 외모지상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빠져 내면의 숭고함을 잊게 되면서 우리의 영혼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어요. 처음 만난 사람에게 어떤 가치관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나요? 어느 학교 나왔냐고 묻는 대신 학교생활에서 배운 철학이 지금의 당신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지요?”라고 물어본 적은 있는가요?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기보다 직업관에 대하여 물어본 적은 있나요? 취직할 때 이력서 대신, 본인의 가치서를 가져오라는 곳이 있나요? 소개팅이나 맞선을 볼 때 학력이나 재산목록 대신 일기장을 교환해서 보자고 한 사람은 있었는가요? 처음 누군가 만날 때 외모가 아닌 영혼에 끌려본 적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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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과 만나지도 못하고 그것들과 대화하는 법도 모르고 말이지요. 대리 체험이 가득한 디지털 세상에서 욕망의 노예가 되어,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위하여 시간과 기억을 잃고 그리고 영혼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는지요.

오늘도 우리의 슬픈 영혼은 이렇게 외쳐요.

, 명예, 외모, 학력이 모두 떠나더라도 끝까지 남아 당신을 지켜주는 것은, 당신이 그토록 외면했던 영혼이라고 …….”

편집/최상룡(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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