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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어도 꽃으로 피어나는 세상
[은빛수녀의 사색노트]
기사입력 2018-01-30 오전 9:42:02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거래의 광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300만 거래자 중 20대와 30대의 비중이 60%를 넘는다는 기사를 보고 “도대체 돈이 뭐길래 꽃다운 청년들이 ‘비트코인 좀비’가 되어 갈까”라는 생각을 한다.
이윤추구를 근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하에 살면서 그 누구도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그렇다고 돈 만으로 행복해 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행복을 준비해야할 청춘들이 비트코인 시세변동을 쫒느라, 충혈된 눈동자가 애처롭다.
은빛수녀는 말한다. “욕망은 채워도 채워질 수 없는 허구이며 환상이다. 부모들은 돈 외에 다른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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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어도 꽃으로 피어나는 세상
“돈을 벌어야 사람이 꽃으로 피어나는 시대를 나는 너무나 오래 살아왔다.”(정호승)
돈을 벌어야하고 돈이 있어야 하는 이 세상을 우리는 당연히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 경제단위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 자신이 상품이 되어 누군가와 흥정하고 거래하고 있다. 돈을 향한 몸부림이 너무 처절해진 자신을 바라보며 화들짝 놀라고 좌절하기도 한다.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믿고 희망했지만, 돈 없으면 그 가치와 희망도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밀려든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하다. 살아 있는 한 돈을 더 벌어야 하고, 있는 돈은 지켜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아이들은 어떠한가? 우리의 희망인 10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돈 많이 버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라고 말하는 것은 놀라울 일도 아니다. 필자가 만나는 아이들과 교사들이 들려준 슬픈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 하나, 한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소외당하고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그러자 다른 아이가 다가가 하는 말, “야, 내가 너랑 놀아주면, 얼마 줄래?”
이야기 둘, 한 아이가 숙제를 못해 쩔쩔 매고 있었다. 그러자 다른 아이가 속삭이며 하는 말, “야, 내가 그 문제 풀어주면 얼마 줄 수 있어?"
이야기 셋, 어떤 아이가 “선생님은 왜 힘들게 가르치세요?”하고 묻자 “너희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지.”라고 했다. 그때 옆에 있던 아이가 입을 삐죽대며 하는 말, “선생님도 돈 받고 하는 일이잖아요?”
이야기 넷, 한 학원 강사가 없는 시간을 내어 아이에게 개인지도를 해주었다. 강사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라고 말했다. 아이가 짜증을 내며 하는 말, “한 시간 더해주세요. 돈 더 주면 되잖아요!”
학교의 교사나 가정의 부모들이 돈 외에 다른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 준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겠다. 교사는 학생에게 무엇을 기대하며 부모는 자녀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한 아이가 학교점수가 기대치만큼 나오지 않자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엄마, 그럼 내 꿈은 끝난 거야?”
그런가 하면 낮은 점수가 나온 자녀에게 부모는 이렇게 질책한다.
“이렇게 공부 못해서 앞으로 뭐해서 먹고 살래?”
학교교육은 아이들을 ‘누구’(존재)로 키울 것인가 보다는 ‘무엇’(기능)으로 만들 것 인지가 목표가 되어버렸다. 가정에서는 이 ‘무엇’을 더욱 강화하기 위하여 아이들을 수많은 학원으로 내 몬다. 마치 아이들은 진열장에 놓여있는 인형처럼 가격이 매겨져 있다. 주가지수처럼 등수나 점수에 따라서 희비와 가치가 오르락내리락 한다.
학교 교사나 부모들에게는 미래의 환상으로 ‘현재의 아이’는 사라져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환상은 늘 우리를 불안케 한다. 많은 부모들이 한 결 같이 자녀에 대한 불안을 지니고 있다. 전국에서 1등을 하든 꼴찌를 하든 불안한 것은 매한가지다. 마치 돈을 갖지 못해 불안해 하지만 있는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욕망은 채워도 채워질 수 없는 허구이며 환상이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인물들은 영원히 만날 수 없고 채워질 수 없는 ‘욕망’으로 인하여 그 욕망 안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영원히 기다려야 하고 그 목적을 향한 ‘기다림’은 이들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환상’은 무섭다. 특히 자녀에 대한 환상은 더욱 그러하다. 이 환상은 현재 아이의 상태를 거부하는 것이다. 지금의 ‘너’로서 충분하지 않고 ‘무엇’을 해내야 하는 도구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부모나 교사들에 의하여 학교점수의 굴레에서 경제적 효용가치의 대상이 된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지닌 이 환상을 업게 된다. 그럼으로 아이들은 스스로를 돈을 생산해야 하는 경제단위로 규정을 짓는다. 그래서 아이나 부모는 평생을 ‘고도를 기다리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꽃에 묻은 돈의 때를 정성 들여 비누칠해서 벗기자”는 정호승 시인의 말을 기억하자. 그리하여 돈이 없어도 꽃으로 피어나는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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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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