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종편집일 2026-06-23 오전 9:10:00

우리는 왜 스마트폰 속으로 숨는 걸까
[은빛수녀의 사색노트]

기사입력 2017-10-06 오전 11:30:20




추석명절 긴 연휴 기간 내내 고개 숙여 스마트폰에만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닌가요?

 

모처럼 온가족이 둘러앉아서도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누기보다 SNS에 더 신경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요?

 

은빛수녀는 “마음이 허기질 때 당신은 무엇을 하나요? 오늘도 하루분의 외로움을 스마트폰과 SNS에 의지하지 않았나요?”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외로워도 슬퍼도 스마트폰 속으로 숨는다. 하지만 톡톡 눌러도 외로움과 슬픔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고 그럴수록 더 많은 시간과 더 큰 즐거움으로 대체하려 애쓰면서 외로움을 감추고 심심함을 없애는 일이 습관이 되고 일상이 되어버렸다.”라고 말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상황이 힘들어서 회피하고 싶고, 나 홀로 감당해야하는 이 외로움이 버겁게 느껴진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 이걸 알아주기만 해도 나는 지금 여기 현실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현실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라고 하시며 각자의 스마트폰 습관 속에 감춰진 내면의 진실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진짜 내 마음을 보고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왜 우리는 스마트폰 속으로 숨는 걸까.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확인한다고 한다. 밥을 먹으면서도 출근하면서도 심지어 운전하면서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근무 중에도 또 누군가와 차를 마시면서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도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 때까지 ‘톡’을 한다. 그리고 중간에 잠을 깨면 또 열어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10분 간격으로 스마트폰을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있다하니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뇌를 혹사시키고 있는 것일까? 틈만 나면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서핑하고 검색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다. 절제와 의지라는 것이 도무지 기능을 하지 못하고 고장 난 브레이크처럼 앉으나 서나 그저 손가락을 움직이는데 분주하다.

 

가끔 나도 강의준비를 하려고 앉았다가 무심코 인터넷뉴스를 보게 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마치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난후 후회하는 그런 기분이다. 게다가 그렇게 서핑을 하고 나서 일을 하려고 하면 바로 몰입이 되지 않아 일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왜 나는 강의준비나 원고를 써야 하는데 인터넷뉴스부터 보려고 할까? 현실에 온전히 마음을 주지 못해서일까. 현실 앞에 서면 이런 저런 신경을 써야 하고 밀려오는 책임감을 버텨내지 못해기 때문 아닐까. 어떤 일을 해내야 하는데 딱히 아이디어도 없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힘들고 귀찮고 하기 싫어질 때 인터넷 검색이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그 현실을 마주하기 싫어서 숨는 것이다.

 

사람들하고 이야기 하다보면 꼭 누군가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이 있다.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지루하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현실에서 잠깐 도피하고 싶은 것이다. 둘이 이야기하다가도 한사람이 전화를 받게 되면 마주 앉던 사람도 자동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그 순간의 짧은 심심함도 견디지 못하고 주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감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느 곳에서나 무엇이든 그것도 즉각적으로 재미를 즐기는 시대. 그래서 불편한 감정을 다른 재미있는 감정으로 맞바꾸며 거래하고 살아가는데 익숙하다. 결국 우리는 현실에서 오는 책임을 회피하면서 힐링을 얻으려한다. 그러니까 귀찮은 문제는 늘 내일에 있고 오늘은 그저 ‘기분’이 좋아야 한다. 지금은 일단 즐거워야 하고 고달픈 일은 또 내일로 미룬다. 그리고 우리는 즐거움과 재미는 일단 좋은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불편하고 거북한 것은 나쁜 감정이니 일단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둔다. 마치 기상캐스터가 비가 오는 날은 좋지 않은 날이고 해가 뜨는 날을 좋은날이라고 하듯이. 외롭고 불편한 감정은 나쁜 것이니 일단 재미 속으로 숨는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태도가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것에 서로가 쉽게 동의하는 것 같다. 그냥 불편한 것은 나쁜 거니까. 그래서 좋은 기분을 주는 디지털기기에 의존하는데 익숙해져만 간다.

 

그 무언가에 의존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곧 나의 무능을 의미한다. 그러니 더 큰 것을 위해 만족감을 잠시 유보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내일 하지 뭐.’라고 쉽게 미루지 않아야겠다. 시도도 하지 않고 미리 집중이 안 된다고 판단하면서 이것저것 잡다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아야겠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은 어떤 일에 집중하는데 정말 걸림돌이 된다. 지금 이 순간을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스마트폰으로 인하여 ‘지금’을 잃어버린다면 나는 어디 있을까? 나를 잃는 다는 것은 다시 말하자면 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며 이는 곧 나의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하는가? 뉴스? 드라마? 카톡? 만화? 게임? 그 어떤 것에도 내 진짜 이야기가 없다. 내 영혼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물론 그냥 잠깐 즐길 수는 있다. 가끔은 우리도 내 자신을 놔주는 순간이 필요하니까. 그런데 잠깐이 아니니 않은가? 부산에서 서울까지 기차를 타면 거의 3시간 걸린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를 못한다. 마치 좀비들의 세상에 와있는 것 같다. 물론 정말 드물게 독서를 하거나 기도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간혹 성경을 읽는 사람도 만난다.

 

독서나 기도는 온전히 내 자신에게 집중하게 한다. 독서는 적극적인 창조의 시간이고 기도는 철저히 내 영혼에 머물게 해준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내 자신이나 혹은 어떤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한다. 스마트폰은 지금 이 시간을 있는 그대로 감각하지 못하게 한다. 지금 이 순간의 심심하고 지루하고 불편한 감정을 다른 그 어떤 재미와 기분으로 덮어버리려 한다. 그래서 스마트폰에 자꾸 마음이 가는 것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끊임없이 마음속 고통과 불편함과 심심함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불편함을 멀리하기 위해 그 어떤 대체물을 찾는다. 사실 대체물 중에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스마트폰 아닐까싶다. 그런데 그렇게 반복하다보면 주의를 기울이며 현존하는 힘을 키울 수 없다. 심심함에 잠기는 힘, 고통에 머무는 힘, 불편함을 버티는 힘, 인내하는 힘이 약화된다. 약화될수록 더 나의 현실을 피하고 싶을 것이고. 피할수록 나의 내면은 빈곤해지기 마련이다.

 

살레시오 성인은 말한다. “지금 이 순간만이 영혼이 성장할 수 있는 장소다.”라고. 그러기 위해 ‘지금’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감각해야 한다. 지금 이 시간을 버텨야 하는 것이다. 시간은 마음과 분리할 수 없는 파트너다. 마음속에서 숨을 쉬는 영혼은 바로 ‘지금’을 먹고 살아간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간을 멀리하고 디지털기기가 가져다주는 ‘재미’로 감각하기를 반복하게 되면 내 영혼은 시름시름 앓게 되고 방황한다.

 

결국 ‘지금’의 주인자리를 디지털기기에 내주고 나는 기계 속으로 숨어들게 된다.

 

하지만 기억 할 것이 있다. 오로지 ‘지금’만이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하느님은 바로 ‘지금’ ‘여기’에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편집/최상룡(ksinews@hanmail.net)

댓글2

스팸방지코드
 [새로고침]
※ 상자 안에 있는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0/200
  • 문은주
    2017-10-10 삭제

    스마트폰은 정말 끊기가 힘든것 같아요..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반성되네요

  • 권인재
    2017-10-06 삭제

    지금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읽는중이었는데 많이 반성하게됐습니다.스스로에게 주어진 불쾌와 지루함을 스마트폰으로 대체하고 도피하는 시도에서 저도 벗어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근 많이 본 기사

<a href="/black.html">배너클릭체크 노프레임</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