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종편집일 2026-06-22 오후 2:20:00

  • i 전시관

철 따라 꽃들이 성을 이루니 ‘꽃재’라 하였다.
[경산곡곡 마을이야기] 물과 볕의 고을, 하양

기사입력 2023-12-07 오후 6:16:45

구글어스로 보는 하양 시가지


 


하양은 물과 볕의 고을입니다.

남쪽으로는 생명의 젖줄인 금호강과 너른 들판의 풍요가 있고 북쪽으로는 병풍처럼 찬 바람을 막아 주는 무학산 산마루가 우뚝 솟아 볕이 따뜻합니다. 이처럼 은혜로운 환경으로 지명조차 꽃들이 성을 이루는 화성현(花城縣)으로 불릴 정도로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입니다.

 

삼국시대부터 역관이 2개나 있는 등 교통과 통신의 요충지이고, 국난을 맞아서는 분연히 떨쳐 일어나 호국 충정을 보인 충절의 고장입니다.

 

대구 사과의 주산지로 유명했고, 오늘날에는 전국 과수 묘목의 60%를 생산하는 대한민국 과수묘목의 메카입니다. 그리고 대학이 4개나 자리 잡은 교육도시로, 최근에는 첨단산업도시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1966년도 무학농장


 


특히, 가난한 이웃을 위한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다간 분들의 삶의 현장인 무학농장, 수십억 년 전의 생명체의 신비를 보여주는 스트로마톨라이트, 돌아감을 생각하게 하는 경산상엿집과 상례문화가 한 자락에 모여 생명문화의 교육장으로 새로운 삶의 문화를 싹틔우는 산실이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랑스런 하양의 마을 이야기를 찾아 떠나기에 앞서 이번 편에서는 하양 전체를 조망해 봅니다.

 

 

하양의 지명유래

 

하양(河陽)이라는 지명은 고려의 성군으로 칭송되는 현종(8대 대왕) 9(1018)에 하양현(河陽縣)이 됨으로써 이름 지어졌습니다.

 

하양은 원래 고구려 하주(河州) 땅이었는데 신라가 이 땅을 취하면서 하양으로 하였다가 화성(花城)으로 불렀다는 화성지(1934년에 발간된 것으로 추정되는 하양현지)의 기록이 있으나 역사적으로 인증된 바는 아닙니다.

 

고려 이후에도 하향현으로 불렸으나, 조선 영조 때(1742) 한사리에 있던 관아를 금락리로 옮기며 화성현(花城縣)으로 개칭했고, 고종 32(1895)에 햐양군(河陽郡)으로 승격되었습니다.

1914년 행정구역통합 때 경산군으로 편입되어 하양면이 되었다가 1973년 읍으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양은 꽃재로 불리기도 합니다. 꽃이 만발한 언덕이라는 꽃재와 철 따라 꽃들로 성을 이룬다는 화성얼마나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이름입니까.


 

하양초 교정에 있는 김성도 '어린 음악대' 노래비


 


김성도 동시작가는 하양초등학교 교가에서 철 따라 꽃들이 성을 이루니 옛날에 이곳을 꽃재라 하였네.”라고 노래했습니다.

 

바라보아 무학산 가까이 정답고

꿈을 실은 금호강 감돌아 흐른다

철 따라 꽃들이 성을 이루니

옛날에 이곳을 꽃재라 하였네

무학의 슬기는 백두로 달리고

금호의 줄기는 바다로 이른다

높이 가지자 우리의 슬기

만세 만세 만만세 우리의 하양

 

하양(河陽)과 화성(花城)의 물 하()자와 꽃 화()자는 팔공산 줄기에서 시작한 조산천, 청통천 물길이 금호강물과 만나며 기름진 들녘을 만들어 온갖 꽃들이 피어나고 풍성한 결실을 맺는다라는 풍요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땅이름 끝에 붙는 볕 양() 자는 언덕에 햇빛이 비취는 모습을 나타내는 글자이고 주로 강의 북쪽 배산임수 지역을 나타냅니다. 한강 이북의 한양, 밀양강 북쪽의 밀양처럼 금호강 북쪽 무학산 아래 볕이 따뜻한 고을을 말합니다.

 

이처럼 아름답고 정겨운 지명이 유래된 것은 예로부터 하양은 물산이 풍족하고 사람 살기가 좋은 곳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지리와 행정구역

 

하양의 북쪽으로는 주산인 무학산(586m) 그리고 초례봉(649m)과 환성산(807m)이 있고, 이 산 뒤로 팔공산(1193m)이 병풍처럼 하양을 감싸고 있습니다, 남으로는 너른 와촌들과 진량들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사이로 금호강이 유유히 흐릅니다.

금호강이 범람하며 쌓인 비옥한 사질양토는 금호강 유역 일대를 대구 사과의 주산지로, 최근에는 전국 시장점유율 1위의 경산묘목과 경산대추 주산지를 만드는 천혜의 환경이 되었습니다.

 

행정구역을 보면, 1895(고종 32) 이후의 하양군 시절에는 현재의 하양, 진량, 와촌 지역과 대구시 동구 안심 지역을 포괄하는 동서 50, 남북 50리로 읍내면, 북면, 마양면, 안심면, 낙산면, 중림면, 와촌면 7개의 면으로 이뤄져 군세가 아주 컸습니다.

 

하지만, 1914년 행정구역 통합시 경산군으로 편입되면서 읍내면, 북면, 마양면 3개 면만이 하양면 관할이 되었습니다.

 

읍내면은 금호, 동부, 서부, 서사, 대곡, 사기, 양지동의 7개 동이 있었고, 북면은 교동, 무학, 용천, 초곡동 4개 동이, 마양면은 부곡, 부상, 은주, 마흘, 사탄, 남하, 대조, 고암, 건흥, 환소동 10개 동으로 구성됐습니다.


 



현재 하양읍은 전체면적 48.65, 16개 법정리, 42개 행정리로 인구는 31,544(남자 15,548, 여자 15,596) 가구수는 15,604 가구입니다.(202311월말 기준)

 

 

호국 충절의 고장

 

하양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지킨 의인들이 많았던 충절의 고장입니다.

1592413(선조 25) 왜군이 부산포에 상륙, 파죽지세로 북진하자 선조는 보름 만에 한성을 버리고 의주로 파천합니다.

대혼란 속에서도 하양은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의병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하양현의 의병장 신해(申海)1592726일부터 28일까지 치르진 영천복성전투에 좌총으로 참전하여 영천성을 수복하고 조선인 포로 1,090명을 구했습니다. 이때 의병대장은 권응수(영천) 우총에는 최문병 장군(자인)이었습니다.

관군과 의병 약 4,000여명이 힘을 합쳐 거둔 이 승리는 조선군이 육전에서 거둔 최초의 승리로 영남의 요충지 경주읍성 탈환의 디딤돌이 되었고, 경주·영천·안동을 잇는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함으로써 전란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하양의 의병들은 전란이 한창이던 1593년에 하양현 성을 쌓고 지역 방어에 만전을 기하였고, 정유재란 때에는 곽재우 장군 등과 함께 화왕산성 수호 등 조직적인 항전을 하였습니다.


 

임진왜란 사적비(우측비)와 임진하양의군위령비(좌측비)

 

 

구 하양읍사무소 전정에는 허대윤, 허경윤, 허응길, 신해, 김거, 황경림, 박능정, 박붕 8명의 하양 의병들의 공로를 기록한 임진왜란 사적비와 임진하양의군위령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하양은 허병률 의사와 허동상 의사의 독립운동 자금 모금활동 등 다양한 독립항쟁을 펼쳤습니다.

 

6.25 전쟁 때는 영천전투를 승리한 2군단(군단장 유재흥 중장)의 주둔지로 영천전투의 교두보 역할을 하였습니다. 주야를 가리지 않은 10일간의 혈투에서 국군이 영천을 점령한 괴뢰군을 격퇴하자, 김일성은 영천을 점령했을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었으며, 이를 빼앗기면서 우리는 패배했다.”고 패배를 자인했습니다.

 

유재흥 장군 제승기념비

 



6.25 전쟁의 판도를 바꾼 영천전투의 승전을 기념하고 전몰용사의 명복을 기리는 유재흥 장군 제승기념비가 하양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져있습니다.

6.25 전쟁에 하양 출신 참전자는 450명으로 이들은 참혹한 전상을 겪으며 나라와 우리 고장을 지켜냈습니다.

 

 

하양의 정체성과 인물


 

한사리 남산에 위치한 육영재

 



하양이 어떤 고을인가는 하양의 인재 양성을 위해 순조 23, 1823년에 민관이 힘을 모아 건립한 육영재(선비를 양성하는 지방교육기관으로 한사리 남산에 있다. 경상북도 기념물 179호)의 상량문(上樑文)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양이 작은 고을이지만 많은 선비가 배출되었으며 충효를 배우고 익혀 재상과 장군이 나는 으뜸 고을이 되었다. 특히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같은 외세의 침략을 당하여 지역과 나라가 신음할 때 분연히 일어나 의군(義軍)을 조직하여 호국애족에 앞장섰던 고장임을 자타가 공인한 바다.” 이하 생략.

 

많은 선비와 의인이 배출되었지만, 조선 초기 태종, 세종을 도와 예악제도를 정비한 명재상 허조許稠(호는 경암, 시호는 문경공)와 허조의 형인 한성판윤을 지낸 허주許周 형제가 유명합니다. 독립운동가 허병률 의사도 하양인입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제10대 서울대 총장을 지낸 최문환 경제학박사, 9대 천주교대구대교구 교구장을 지낸 최영수 대주교, 어린 음악대를 작시한 김성도 아동문학가가 떠오릅니다.

특히 하양 지역민들의 질병과 가난을 구제하는 일과 인재육성을 위한 육영사업에 일생을 바치신 무학중·고등학교 설립자인 이임춘 교장신부님의 희생과 헌신이 기억됩니다.

 

 

하양의 발전

 




 

꽃들이 성을 이룰 만큼 살기 좋은 하양이 지금까지와는 판이한 비약적인 발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2024년 연말에 개통 예정인 대구도시철도 1호선은 하양지역의 모든 것을 급격히 바꿀 것입니다.

 

대구카톨릭대학교, 대구대학교, 경일대학교 3개의 종합대학교를 비롯하여 호산대학교가 자리잡은 대학도시의 특성과 경산지식산업지구 중심의 첨단산업의 특장은 더욱 살리고, 도시철도가 유출이 아니라 유입의 통로가 되도록 지역민들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대구카톨릭대학교


 


산과 강과 들판이 잘 어우러진 풍광과 귀연정, 금포정, 삼괴정의 풍류로 아름다운 휴식이 있고, 무학산 자락에서 이타행의 사랑과 생명문화를 배우고 꽃피우며, 좋은 일자리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워라벨의 도시 하양을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사과꽃 향기 바람에 날리니

금호강 맑은 물줄기 은빛으로 반짝이고

돌아온 은어들 아침 햇살에 용약하네











 

 

 

최상룡(ksinews@hanmail.net)

댓글2

스팸방지코드
 [새로고침]
※ 상자 안에 있는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0/200
  • 경산인
    2024-01-17 삭제

    잘 배우고 있습니다.

  • 하양거사
    2023-12-08 삭제

    큰 일 이루셨소이다!우리 세대가 해 두어아 할 글모음.

<a href="/black.html">배너클릭체크 노프레임</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