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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의 중심이 된 중방동(中方洞)
[경산곡곡 마을이야기] 동지역 편(2)

기사입력 2023-06-14 오전 8:36:10

▲ 중방동 행정지도 
 

 

경산시의 서쪽에 위치한 중방동은 행정동 명칭이자 법정동의 명칭으로, 경산현의 중심이자 들판 가운데 마을을 형성했다는 뜻에서 붙여진 지명이다.

 

여러 고문헌을 살펴보면 1469년에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중방리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나타나며, 조선 후기 여러 관찬 읍지류에도 마을의 이름을 중방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1914년 금포동을 병합해 경산면에 소속했으며, 해방 이후에는 중방 1~3동으로 분동되어 유지해 왔다. 1995년에는 시·군 통합으로 중방 1·2동은 중방동, 중방 3동은 중앙동에 편입되었다.
 

 

▲ 경산중앙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금포관 
 

 

전통시대 중방동이 경산의 중심지로 부상한 동력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중방동을 관통해 북쪽 금호강에 합류하는 남천이다. 선의산(仙義山)에서 발원한 남천은 이 일대 농업 생산력 향상의 기반이 되었다. 중방동 남천 인근에는 중보(中洑), 임보(任洑), 득산보(得山洑) 9개의 보가 만들어졌다. 수리시설이 확충되면서 중방의 넓은 들녘은 서서히 옥토로 변했고, 이는 농경 생활의 원천이 되기에 충분했다. 후에는 멀리 임당들에까지 물을 공급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1989년에 간행된 경산지에서 이러한 사정을 엿볼 수 있다.

 

지금의 경산 시장 일대와 중방동은 원래 농경지였고 대부분이 수답이었다. 이 지역에 요긴한 관개시설로 임보가 큰 역할을 하였다. 중방동의 농사를 위해 남천 강물을 끌어들여서 서상동 동네 가운데를 흘러서 경산시청 앞, 그리고 경찰서 앞을 지나서 중방동을 동북쪽으로 흘러 중방 1동 마을까지 닿았다. 시내 농사에 있어서 소중한 몫을 한 것으로 보였지만, 지금은 건물이 들어서고 논밭이 사라지므로 과히 폐지돼 보이기도 하다. 원래 읍보(邑洑)라고도 하였는데, 이 보를 개설한 사람의 공적을 기리어 그 성을 따서 임보(任洑)라 하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160여년 전 순조 때 경산현감이었던 임태로(任泰魯)가 주관하여 읍내의 흥농을 위해 창설하였다.”

 

 현령 임태로 선정비[縣令任侯諱泰魯去思碑] - 경산시 남천면 구일리 산4

 

 

중방동의 또 하나의 동력으로는 16세기 후반 달성서씨의 이주를 들 수 있다. 본래 중방동에는 1500년경부터 기계유씨가 터를 잡고 있었으나, 본격적인 마을 개척은 달성서씨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달성서씨의 경산 입향조는 널리 알려진 동고 서사선(1579~1651)이다. 그는 진문효(陳文孝)의 외동딸 진산진씨와 혼인한 뒤 처가인 성() 밖 상방에 동고정사를 지어 터전으로 삼았다. 임란 때 의병활동을 펼친 진섬, 진엽, 진현 등이 바로 처가 쪽 사람들이다. 그러다가 175712월 동고정사가 소실되자 후손들이 중방동으로 종가를 옮겨 오면서 중방서씨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서사선의 두 번째 양자가 4명의 아들을 두면서 족세가 크게 번창했고, 중방서씨의 거주지는 중방동을 중심으로 점점 확산되어 갔다. 그래서 많을 때는 중방동 내에 달성서씨가 100가구가 넘을 정도까지 이르렀다. 지금도 경산 토박이들에게 중방동이 여전히 달성서씨의 집성촌으로 기억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옥천서원 
 

 

옥천서원은 중방동이 바로 중방서씨의 공간이었음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옥천서원은 조선시대 경산현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문중서원이다. 중방서씨는 향현(鄕賢)으로 추앙받는 서사선이라는 존재와 사우로 전환이 가능한 건물을 갖추고 있었기에 쉽게 문중서원을 설립할 수 있었다. 옥천서원은 1604년 동고정사에서 출발해 1786년 옥천사로, 1854년 옥천서원으로, 1947년 현재의 중방동으로 이건했다. 또한 옥천서원에 관련 고문헌이 다수 소장되어 있어 조선시대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는 경산에서는 특별한 위상을 가진다.

 

현재 옥천서원은 서사선과 부인 진산진씨의 위패를 모신 제사(齋祠)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매년 음력 317일에는 진산진씨, 음력 717일에는 서사선의 불천위 제사를 거행한다. ‘달성서씨 동고공 종친회의 거점으로 매년 5월 첫째 주일에 정기총회를 하고 있으며, 청년 모임인 달성서씨 동고공 동운회(東雲會)’가 각종 행사 시에 활동하고 있다. 이밖에 설과 추석에는 옥천사에서 차례를 지내고, 중복에는 별도로 모여 복달음을 하고 있다.

 

 
 

▲ 경산향교 


 

한편 경산시청 남쪽 맞은편 낮은 구릉 위[꿀밤산]에는 전통시대 공립 교육기관 경산향교가 서 있다. 고려 말기 옥곡동에 세워진 경산향교는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숙종 대 삼남동[현 경산초등학교]에 복원되었다가 1997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건했다.

 

전통건축물을 현대적으로 활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경산향교는 전국 향교 중 가장 모범적인 활용 사업을 펼치는 곳이다. 경산향교는 석전대제와 같은 기본적인 향사 외에도 인문학 강좌와 전통문화를 공유하는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한문강좌, 청소년 인성 교실, 다도 강좌, 기로연, 전통혼례 등을 진행하여, 시민들과 함께 유교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 필자도 경산향교에서 다년간 한문강좌를 수강하며 학문적 소양을 쌓은 경험이 있다. 또한 향교 주변에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에게 자연 휴식처가 되고 있다.

 

향교 반대편 동산인 경산 자연마당 자락에는 상엿집 터가 남아있다. 상여와 상장례 물품을 보관한 상엿집은 달성서씨 소유의 건물이었다. 중방동에는 ‘33인 상포계라는 달성서씨가 중심이 된 상포계 조직이 존재했다. 계원은 마을의 남성들이며, 아버지가 사망할 경우에 아들이 그 자격을 이어받았다. 별도의 회비 없이 운용되었는데, 계원들은 마을에서 초상이 생기면 상여를 매고 괭이와 삽을 지참해 직접 상례를 치러주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 후반 무렵 산업화에 따라 마을 중앙에 상엿집이 있으면 좋지 않다는 인식 때문에 상엿집은 동산으로 옮겨졌고 어느 시점에 철거되었다. 상여는 마을회관 창고에 보관했으나, 불행을 가져온다고 여겨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당산나무와 동제(洞祭)

 

▲ 중방동 동제 
 

 

과거 중방동에서 행해진 동제, 즉 당산제는 정월대보름 무렵 3개 동에서 각각 개최되었다. 1동은 현재 도지정 보호수가 있는 당산나무에서, 2동은 경산중앙초등학교 강당 자리에 있던 나무에서, 그리고 3동은 삼남동 회나무에서 지냈다.

 

한국의 동제는 도시화·산업화 과정에서 자연스레 사라져 갔다. 도심에 위치한 중방동의 동제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다. 중방 2동의 동제는 1970년대 무렵에, 중방 3동 동제는 도로 확장 때 회나무를 벌목하면서 소멸했다고 한다. 중방 1동에서는 간헐적으로 동제를 지내다가 2004년 중방농악보존회가 결성되면서 정기 행사로 복원되었다.

 

중방동의 동제 절차는 다음과 같았다. 우선 1주일 전에 제주가 선정되면, 대나무를 든 사람을 앞세우고 농악대가 뒤를 따랐다. 농악대가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신대를 든 사람이 신이 내린 집으로 들어가서 그 집 처마에 대나무 신대를 걸쳐 세웠다. 그러면 그 집 사람이 신을 받아 제주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제주를 지내면 그 자손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하여 마을민들은 제주가 되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제주는 찬물에 목욕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집에 금줄을 쳤다. 제관은 음식을 장만할 때도 부정을 타지 않기 위해 삿갓을 쓰고, 시장에 가서 제물로 크고 좋은 것만을 샀다. 이때 가격을 깎아서는 안 되었다. 동제는 정월 14일 밤 11~1시에 지냈으며, 다음날 귀밝이술을 음복했다.

 

 

▲ 중방동 당산나무 
 

 

현재 중방동 주택가 안에는 안녕과 화합을 기원했던 수령 300년 이상의 당산나무가 서 있다. 두 그루 노거수 나란히 서있는 당산나무는 본래 중방동을 둘러쌌던 사라진 방풍림의 흔적이다. 세 그루 중 도로가를 기준으로 첫째 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고, 매년 정월대보름에 동제가 행해지는 당산나무이다. 이 당산나무는 마을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산증인이자 중방동 사람들의 추억이고, 고마운 휴식처이다.

 

 

중방농악보존회

 

▲ 중방농악보존회 공연 모습 




2004년 조직 된 중방농악보존회는 중방동 전통문화의 수호자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는 문화단체이다. 이 단체는 1962년 달성서씨 문중 서상종씨 제안으로 창단된 중뱅이 농악단(상쇠 오좌섭)에서 출발하였다. 이후 2(한병길)·3(서진돌) 상쇠를 거치며 경연대회 출전, 정기적 농악 연습, 제일합섬 농악단 결성 등의 활동을 펼쳤다. 80년대 들어서는 단원의 감소로 한때 존폐 위기를 겪기도 했다.

 

4대 상쇠로 취임한 이승호씨는 전언과 몸짓을 통해 도제식으로 전승되던 중방농악을 구술 채록과 문헌 고증을 통해 복원했다. 2014년에 발간한 경산중방농악단행본이 그 노력의 결과물이다. 2018년 중방농악보존회는 김제 지평선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각종 대회에서 수상하며 전국적인 실력과 명성을 자랑하는 농악단으로 거듭났다.

 

중방동을 중심으로 인근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는 보존회는 중방동 주민센터 지하 1층에 사무실과 연습실을 갖추고 있다. 관내 각종 행사와 축제에 참여하여 흥을 돋구는 공연을 선보이는 소중한 문화단체이다.

 

 

경산시장

 

조선후기 경산지역의 장시를 살펴보면 경산현에는 읍내장[邑內場, 5·10]과 반야촌장[磻野村場, 1·6], 하양현에는 읍내장[4·9], 자인현에는 읍내장[3·8]과 송림장[松林場, 1·6]이 각각 개시되고 있었다. 이들 장시들은 개별적이고 고립 분산적으로 기능한 것이 아니라 장시끼리 연계되어 하나의 장시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한편 1927915일 자 동아일보는 경산의 모습을 상업이 비교적 발전된 모양이라고 묘사했다. 당시 경산시장은 자인·하양·안심·용성시장과 함께 지역 상업의 중심지로 기능했고, 물화 집중이 편리해 1년 매매고가 60만 원에 이르렀다. 또한 1933108일 경산음식점조합이 경산시장에서 개최한 각희(脚?)대회에 모인 관람자가 수천명에 달했다는 기사도 확인이 될 만큼 번성했다.

 

 
 

▲ 경산시장 풍경들


 

경산시장은 주변 마을의 변화를 이끌었다. 경산의 원도심인 서상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경산시장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유동 인구의 증가와 맞물려 그 규모가 더 확대되었다. 시장의 번성은 기존 서상동, 삼남동, 삼북동 일대의 인구 포화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길 건너편으로 이동하게 된다. 여기에 돼지 골목 입구에 있던 시외버스터미널이 길 건너편 중방동으로 옮겨왔고, 시장 맞은편 도로변에 상가들이 형성되는 등 눈에 띄는 변화를 가져왔다. 시장과 마주한 중방동은 그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는 비단 중방동만의 변화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경산시장의 변화는 경산의 중심지가 이동하는 과정과 지역 상권의 변화, 인근 주민들의 생활상 변화 등 복합적으로 조망하게 한다.

 

1956년 이전 경산시장은 서상동 회나무에서 시청 방향 길에 5일과 10, 달이 크면 31일에 한 번 더 열렸다. 이때는 골목골목마다 난장이 형성되었다. 당시 이 터에는 곡물류 거래가 주를 이루었고, 이외 어물·나무·우시장 등이 있었다. 그러나 경산면이 경산읍으로 승격될 때 이곳이 협소하다는 이유에서 서상동으로 시장을 이전했다. 지금의 중앙초등학교에 있던 청과시장도 이때 같이한 것이다. 청과시장은 당초 1950년대 초반 경산교 아래 자갈밭에서 시작되었다.

 

1960년대 접어들어 전국적인 정기 시장의 상설화 추세에 따라 경산시장 역시 상설화가 이루어진다. 1970년부터 대형 일반 소매점 개설과 각종 물품을 판매하는 난전이 활발하게 열렸다. 1970년대에는 우시장과 나무전, 토끼전, 닭전, 백화점 골목, 포목전, 청과 골목 등이 있었으며, 이 골목들이 각각 호황을 누리면서 경산시장은 1980년대 후반까지 황금기를 누렸다.

 

2023년 현재 경산시장의 점포 수는 200개이며, 상인수는 309명이다. 다양한 품목이 거래되는 A, B, C, 동편지구와 어물, 청과지구까지 총 6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품목별로 구분하면 농산물 81, 축산물 8, 수산물 16, 가공식품 8, 의류·신발 23, 음식점 44, 기타소매업 20개로 이루어져 있다.

 

: 채광수 영남대학교 교수

사진 : 정명환 작가

 

<사진 자료>

 

▲ 중방동 당산목 
 
▲ 임태로 선정비 
 
▲ 경산향교 대성전 
 
▲ 경산향교 명륜당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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