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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6-22 오후 2: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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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의 중심 - 동지역
[경산곡곡 마을이야기] 동지역 편(1)

기사입력 2023-06-05 오전 8:24:04

경산의 유래

 

▲ 경산시 전경(사진=김진택)

 

 

삼한(三韓) 시대 경산은 압량(押梁·押督) 또는 압량소국(押梁小國)이라 했다. 102년 신라에 합병된 후 선덕여왕 때 신라의 한 주()가 되었는데, 첫 군주(軍主)로는 그 유명한 김유신 장군이 부임했다. 신라가 경산을 지리적으로 얼마나 중요시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757년 장산군(獐山郡)으로 개칭된 것을 고려 건국 직후 ()’()’으로 고쳐 경주에 소속시켰다. 1310년에 경산현으로, 1391년에는 군으로 승격시켰다.


 

경산시 동지역도

 




조선 개창 4년에는 다시 경산현으로 강등되었으며, 임진왜란 시기에는 일시적으로 대구부에 이속되었다가 복현되었다. 1895년 갑오개혁으로 지방관제가 개정되면서 군으로 승격되었고,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때 경산면으로, 1956년에 읍으로, 1989년 시로 승격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살펴본 것처럼 경산의 땅 이름은 크게 압량 - 장산 - 경산으로 바뀌어 왔다. 압량의 량()과 압독의 독()은 같은 뜻으로 보인다. 우리말을 한자로 적은 이두식 글자로 량() 자와 독() 자를 풀어보면 모두 언덕 같은 성()이란 말이다. ()’()’은 뜻의 음이 유사하다. ‘()’누를 압()’이고 ()’노루 장()’이다. 이 두 한자는 넓은의 음을 차자(借字)한 것으로 보인다. 압량()’장산넓은 들정도의 뜻으로 볼 수 있다.

 

▲ 임당동 고분군 
 

▲ 조영동 고분군 

 

 

경산 동지역 마을 현황(2023.2. 기준)

 

연번

마을

면적()

가구수

인구수

1

중앙동

0.92

3,530

6,285

2

동부동

18.10

17,750

40,122

3

서부1

5.28

15,276

34,834

4

서부2

1.87

14,021

35,947

5

남부동

3.70

8,512

19,710

6

북부동

9.53

10,406

20,520

7

중방동

1.16

4,712

9,466

 

 

현재 경산시는 3개 읍, 5개 면, 7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고 행정 구역상 나눠진 7개 동에는 총 28개의 법정동이 속하여 있다.

 

중앙동에는 삼북동, 중방동의 법정동이 있고, 동부동 관할 하에는 계양동, 남방동, 내동, 사동, 삼풍동, 신천동, 여천동, 유곡동, 점촌동, 평산동이 있다. 서부 1동은 옥곡동, 사정동, 옥산동이며, 서부 2동은 중산동, 정평동, 옥산동이다. 남부동에는 삼남동, 서상동, 신교동, 상방동, 백천동이 속하고, 북부동 관할 하에는 대평동, 대정동, 임당동, 대동, 조영동, 갑제동이 있다.

 

동부동과 북부동의 관할 지역 중 많은 지역은 원래 자인면과 압량읍 소속의 구역으로, 1987년 경산읍에 편입된 것이다. 중방동의 관할 지역은 중방동이고, 일부 법정동은 2개의 행정동에 걸쳐 있기도 하다.

 

 

사회문화

 

▲ 대정동 2호선돌(竹亭老人晩茶)

 

▲ 대정동 당산나무 선돌 
 

 

이 지역은 경산시에서 가장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된 지역임에도 비교적 여러 유형의 문화유산들이 산재해 있다. 선사시대에 제작된 선돌과 고인돌은 매우 이른 시기부터 경산에 사람이 살았음을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임당·조영동 일대에 분포한 압독국 사적은 한국 고대사 심층적 연구와 생활사를 조명할 수 있는 보고(寶庫)가 되고 있다.

 

유교 유적으로는 고려 말 세워진 공립 교육 기관인 경산향교를 비롯해 경산의 향현(鄕賢) 서사선을 제향 한 옥천서원(玉川書院), 재사(齋舍)인 율수재(聿修齋)[유곡동산천재(山泉齋)[사동우경재(寓敬齋)[옥곡동] 등이 있다. 특히 서원과 재사 중에는 경산 입향조와 관련이 있는 건축물이 많다. 아울러 조선시대가 지향한 이념인 효 의식 계승의 산물인 정려각과 효자비도 산견된다. 불교유적으로는 초개사, 경산포교당과 혜광사(慧光寺) 등의 사찰이 있으며, 경산시립박물관과 영남대학교 박물관은 시민들의 문화 공간 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사람과 삶

 

전통시대 인물은 1909년 편찬한 경산군의 사찬읍지장산지(章山誌)인물부의 유행(儒行문원(文苑상상(上庠효자·효부·유혜(遺惠) 조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조선시대 인물인데 특히 초계정씨, 아산장씨, 달성서씨, 청주한씨 등이 많다. 이들은 조선 후기 경산현을 대표하던 성씨들이기도 하다.

 

한편 근대 이후에는 한국 고전문학 분야의 개척자 김삼불(金三不 1920~?), 고시가 연구자 서재극(徐在克 1931~1996), 소설가이자 교육자 서석달(徐錫達 1928~1992), 일제강점기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 당원으로서 독립운동에 매진한 김정룡(金正龍 1906~1965) 등이 이 지역 출신이다.

 

 

현 상황

 

▲ 경산시장 

 

▲ 경산역 


 

현재 관내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 이곳이다. 이곳은 조선시대부터 관아가 소재해 군현 행정의 중심으로서 기능했고, 18세기 이래 경산시장은 정기 장시로 더욱 발전하였다. 일제강점기 경산역이 이 근처에 부설되며, 1968년 제일합섬과 영남대학교 캠퍼스가 조성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이곳으로 많이 유입되었다. 이에 따라 관공서, 금융기관, 병원, 운송 시설 등 다양한 편의시설도 들어섰다. 이곳에 아파트가 집중되어 있는 점도 이 같은 편의성에 힘입은 면이 크다. 경산 시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 채광수 영남대학교 교수

사진 : 정명환 작가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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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08 삭제

    잘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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