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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묘목, 과수 선진국 일본에서 견학 오다!
100년 역사 경산묘목 브랜드 스토리
기사입력 2024-05-13 오전 11: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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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묘목은 1905년경 조선 이주 일본인들에 의해 태동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10년 경 고바야시 도쿠지로(小林德次郞)가 하양읍 대조리(버티미)에 정착하여 최초로 뽕나무 육묘를 시작했다. 접목 및 재배기술을 한국인들에게 전수하고 새로운 농사법으로 뽕나무와 과수를 재배했다. 경산묘목 산업이 시작됐다.
100년 전 일본인의 전수로 시작된 경산묘목 산업이 이제는 기술을 전수해 준 과수 선진국 일본에서 도로 견학을 올 정도로 발전했다. 경산묘목의 기술 수준을 만방에 알리고 한국 사과 과원의 판을 바꾼 것은 ‘키 낮은 사과’라고 할 수 있다.
경산키낮은사과영농조합법인 배준우 대표(사진)로부터 키 낮은 사과 묘목 개발과 과수 선진국 일본에서 견학 온 이야기를 들었다.
키 낮은 사과 개발과 일본에서 견학 온 이야기
"키 낮은 사과 묘목을 도입한 시기는 1996년입니다. 당시에 경북 특히 경산에서 사과를 참 많이 했었습니다. 포도, 복숭아 등도 많지만 사실은 사과가 제일 보편적이고 비중도 컸습니다. 당시에 사과나무가 엄청 크고, 농사짓기에 효율이 떨어졌습니다. 왜성 나무가 있긴 했지만 이중 접목을 이용한 방법이었지 진정한 의미의 키 작은 나무는 아니었습니다.
키 큰 나무는 효율도 떨어지고, 안정성도 낮고, 나무 자체가 웃자람이 심했지요. 윤태명 교수님이 당시 오스트리아로 유학 가셨을 때 이탈리아 남쪽 지방에서 과수원을 방문하셨습니다. 거기에서 M9 작은 대목에 사과 품종을 접목해서 밀식 재배하는 방식을 직접 보셨습니다. 국내에 계신 은사님들께 문의드려서 경상북도 기관과 함께 ‘신경북형과원조성’ 시스템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사과에 관심이 있는 몇몇 조합원들과 의견을 모아 직접 살펴보기로 하고 다녀왔습니다.
당시 우리에게도 품종은 충분했고, 농사에 새롭게 필요한 건 ‘대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직접 도입하는 건 법적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병충해 피해 같은 게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된다고 쉽게 손놓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죠... 이른바 문익점 정신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희가 열심히 하니까 물심양면으로 관에서도 많이 도와줬습니다. 모든 절차가 다 마무리되었다고 하셔서 우리는 그 말만 믿고, 그 자리에서 나무를 직접 사버렸습니다. 유례에 없을 만큼 빠른 속도전이었죠. 뿌리는 끊어내고, 위쪽 접수 부분만 사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행정처리가 잘 된 건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일부를 들여 올 수 있었고, 들여온 일부만 가지고 와서 번식을 시작했습니다. 자근묘 생산 방식을 활용했는데, 기존에 따르던 일본식과 다른 길로 접어들었지요. 이제는 일본식보다 이쪽이 더 인정받고 있습니다. 일본은 아직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농사짓습니다. 키도 크게 키우고, 교목처럼요. 밀식재배도 안 합니다.
경산에서 이 방식을 도입한 건 5명이었습니다. 힘들여 도입했는데, 또 문제가 있었습니다. 유럽쪽과 우리의 기후가 달랐던 것이죠. M9가 추위에 좀 약했던 겁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유럽쪽보다 춥고, 가뭄이 잦기 때문에 동해 피해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꽃 잘 피고, 열매 잘 맺히고, 키도 적당하고 참 좋은데 이게 큰 문제였습니다. 하필 열매가 너무 잘 맺히면, 뿌리 쪽이 부실해져 추위에 더 약해집니다. 장점이었던 열매 잘 맺히는 게, 추위 때문에 더 큰 피해를 불러오기도 했지요. 급한 마음에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바로 도입을 시작했는데 정말 곤란했습니다. 2003~2005년에 도입 초기라 피해가 컸죠. 처음 도입했기 때문에 경산을 비롯해 경북 지역의 피해가 더욱 집중되었습니다.
FTA 대응으로 ‘키 낮은 사과 과원’ 사업을 하자는 이야기가 과수농가 방면으로 나왔습니다. 이 때 맞물려 우리 시도가 정책적으로 확정되었습니다. 동해 피해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게 정부 시책으로 밀어붙이니 어렵게 되었지요. 정식으로는 ‘우량 묘목 지원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여기저기 보급되는데, 동해 피해가 계속되니 대응책이 시급하게 되었습니다. 고육지책으로 M26이든 M9이든 자근묘로 해서 밀식 지배하도록 하자고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상주쪽이 주목받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키 낮은 사과묘목 영농조합 법인’ 출범으로 대응했습니다.
처음에는 묘목이 안 팔리고, 욕도 많이 먹어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한참 동안 우리 법인 외에는 잘 안하려고 했습니다. 동해 피해가 크다는 인식이 잘 안 바뀌었죠. 그런데 점차 관수하는 방법, 동해 피하는 방법 등이 연구 개발되면서 서서히 나아졌습니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견학하러 옵니다. 2008년 무렵부터 교수님들이 우리 묘포장을 보시고 놀라고는 합니다. 윤태명 교수님과 인연이 있는 일본 쪽에서 우리나라를 방문합니다. 처음에는 사과시험장, 두 번째는 묘포장, 세 번째 선도 농가를 견학하였죠. 우리 농장을 보고는 깜짝 놀랍니다. 한국이 이렇게까지 묘목을 키워내냐는 겁니다. 1시간 약속했는데, 2~3시간을 보고도 갈 생각을 안합니다. 나가노 쪽 지역인데, JA라고 하는 조직의 사람들인데, 그 이후 1년에 너댓개 팀씩 견학오기도 했습니다. 4~5년 줄기차게 견학왔는데, 관광버스 2대씩 타고 우르르 몰려왔지요. 이제는 어지간히 다 봤는지 온다는 소식이 없습니다. 허허.
요즘은 이중묘 보다 자근묘 쪽이 대다수로 바뀌었습니다. 2020년 무렵부터는 이중묘 수요가 아주 희소하게 되었습니다. 찾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세상이 바뀌었지요. 이중묘는 토질이 안좋거나 배수가 나쁜 곳, 동해가 심한 동네, 쪽...제천이나 충주처럼 주로 추운 지역이 이중묘를 찾는 쪽입니다. 전국으로 치면 약 10% 안팎이나 될까요."
최상룡(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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