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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과나무’를 만들어 과원의 판도를 바꿨다!
100년 역사 경산묘목 브랜드 스토리
기사입력 2024-05-09 오전 10: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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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 우량묘에 대한 열망이 컸던 경산 묘목인들은 연구단체를 결성하고 과수재배 최고 선진국인 이탈리아로 선진지 견학을 떠난다. 이탈리아에서 ‘키낮은 사과’를 만드는 대목을 구해왔다. 그 후 5년여 각고의 노력과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작물의 생리적 특성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마침내 자근묘 ‘키낮은 사과나무’ 묘목 생산에 성공하여 우리나라 사과 과원의 판도를 바꾸었다. 20여 년 전만하더라도 우리나라 사과 과원은 키가 크고 우람한 사과나무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요즈음은 모두가 키 작은 사과나무로 밀식재배 한다. 경산 묘목인의 축적된 경험과 도전정신으로 우리나라 사과 과원의 판도를 바꾼 경산묘목 성공사례다.
‘키 작은 사과나무’ 접목 생리 장애 극복방법을 찾아낸 이말식 회장(사진)으로부터 당시의 이야기를 들었다.
키 작은 사과나무를 만드느라 5년여 심하게 고생했습니다.

“나는 18살 즈음부터 묘목 관련된 일을 다니는 게 돈을 잘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경산 외에는 묘목 장사가 잘 없고, 접목하는 사람도 보기 힘들었거든요. 마침 국가 정책으로 뽕나무 농사를 장려하기도 했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강원도 원주 문막으로 가서 뽕나무 등을 접목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습니다. 사실 크고 나서 보니까 이 일대에서는 젊은 사람이 할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하고 살았는데, 기껏해야 하루 30~35원 정도를 받았죠. 어떤 때는 일 시켜주고, 밥값만 제대로 쳐줘도 고맙다고 했을 정도로... 제대로 살 수가 없는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강원도에 가니까 하루에 200원을 주는데, 더 고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한창때는 만여 평에 이를 만큼 농지 규모를 키웠고, 묘목 농사 품종은 그때나 지금이나 주로 사과 묘목을 취급했습니다. 생산이며, 유통을 다 하니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억으로는 1978년인가 그 무렵부터 사업 규모가 커졌고, 접목하는 것만 해도 1년에 30만 주 정도씩 해낼 때가 있었습니다.
1996년 당시에 안동대 교수로 재직하시던 윤태명 교수님과 인연이 닿으면서 묘목 사업은 전기를 맞이했습니다. 윤 교수님은 해외 유학 시절에 보고 배우셨던 사과 접목 및 과수원 운영 등을 우리나라에 적용하고 싶어 하셨는데, 저를 비롯해서 이 일대의 5군데 업체가 이에 부응했죠. 운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일단 우리 5군데 업체가 의기투합해 ‘경북 대묘회’를 결성했고, 윤 교수님과 함께 이탈리아에 산재한 사과 과수원들을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과수 최고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 과수원에서 우리가 가장 욕심냈던 건 새로운 대목에 접목해서 살려내는 일이었어요. 기본적인 육묘에서부터 농사짓는 방법, 과수원 운영, 새로운 접목이나 유통까지 모든 걸 다 배웠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가장 심혈을 기울인 건 역시 새로운 접목 기술이었죠. 이탈리아에서는 만났던 분들도 우리에게 많은 걸 전수해 주려고 애쓰셨고, 우리가 욕심냈던 묘목이나 대목도 흔쾌히 매매했습니다. 그런데 나무는 비행기 타고 입국할 때 통관하는 게 여간 까다롭지 않았어요. 당시만 해도 암암리에 몰래몰래 조금씩 들여오기도 하고, 입국 심사에서 들통나서 압수당하기도 하고 시끄러웠죠. 이탈리아에서 들어올 때 큰 가방 세 군데에 각각 1,000주씩 담고 스리슬쩍 들여오다가 앞선 2개는 압수당하고, 끝에 들여오던 가방 하나만 가까스로 살렸어요.
그때 들여온 1,000주는 대부분 경북대에 들어가 연구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여기저기로 옮겨서 더 많은 연구진이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막상 들여와서 접목을 해보면 성공률이 높지 않았어요. 금세 잘 되는 것 같다가도 물 차오르고, 고사해서 죽기 일쑤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이말식이 저러다가 빌어먹는다’고 뒤에서 쑤군거리는 소리가 제 귀에도 많이 들렸습니다. 그래도 이미 시작한 거니까 고집대로 소신대로 끝까지 밀어붙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대목 자체의 생리적 특성이 달라서 우리가 전통적으로 해오던 접목법이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의욕있게 시작했던 배준우 사장 등이 먼저 번번이 실패했고, 내가 가만히 보니까 나무가 적응할 시간을 좀 주었다가 접목을 하면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무를 잘라내고 물이 마른 후에 새 잎이 났을 때 접목을 하니까 성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시간 접목하면서 생긴 일종의 감이랄까 그게 맞아떨어진 셈입니다. 덕분에 새로운 접목은 제가 가장 먼저 성공해서 주변에 알리기 시작했고, 이제는 모두가 그 방식으로 하게 됐습니다. 심지어는 일본에서도 우리한테 한 수 배우러 오는 실정이죠. 돌이켜보면 그때 5년 정도는 심하게 고생했습니다.”
최상룡(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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