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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6-23 오후 1:31:00

[여행정보]- 천주산 북장사
파랑새가 홀연히 사라진 이유가 있다

기사입력 2009-10-11 오전 9:16:41

상주시 북장사 가는 들녘에는 누렇게 익어 고개 숙인 벼가 황금물결을 이루고 길옆 양편에는 감이 익어가고 있어 가을의 풍요로움이 내 눈 속으로 들어왔다.

 


상주에서 보은으로 가는 길 속리산 끝자락에 위치한 북장사는 속리산의 지맥이 백 여리를 달려 이곳 낙동강에 만나 멈추어 그 경치가 뛰어나 신선이 살 만큼 뛰어나다고 해서 삼악(三嶽)의 영산이라 으뜸 장자(長字)로 이름을 한 네 곳에 사찰을 세워 북장사, 남장사, 갑장사, 승장사이다.

 


노악산의 이름 보다 천주산 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것은 북장사에서 500m 쯤 떨어진 산 중턱에 수미굴이 있고 이 굴속이 밑이 좁고 위가 넓은 천연의 돌기둥이 하늘을 받치는 것처럼 서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실제로 북장사 앞에 있는 일주문에도 천주산이라고 쓰여 있다.

 


북장사 초입에는 한국에서 최초로 도로에 건축허가를 받고 지어진 일주문이 있고 일주문을 따라 오르면 주전각인 극락보전엔 숙종 때 조성된 2m 높이의 거대한 목조 삼존불 아미타여래,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이 편안하고 넉넉한 모습으로 앉아 계신다.

 


그리고 극락보전에는 후불탱화 대신 1천분의 원불이 각각의 원을 담고 삼존불을 호위하고 있으며, 특이한 점은 지붕 꼭대기, 치미(鴟尾)엔 황금색의 용두를 안치고 지붕 구석구석을 황금색의 귀면와로 장식하였고 참배하는 방석도 황금색으로 되어 있다.

 


극락보전 앞에는 통일신라시대 조성한 석탑이 자리 잡고 있다. 본래 인평동 사지에 있었으며 도굴꾼에 의해 무너진 것을 부재를 수습하여 용흥사에 보관하다 1998년 북장사로 옮겨 복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북장사에는 영산회 괘불이 가장 유명하다. 평시에는 두루마리로 말아 함 속에 보관하다 큰 불사가 있을 때 내다건다. 괘불에는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으로 길이 13.2m, 폭 8.07m이다.

 


이 괘불에는 재미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어느 날 당나라 승려가 찾아와 괘불을 그리겠다고 하면서 3일 동안 일 할 것이니 어떠한 사람이라도 출입을 금하라고 했으나 한 승려가 궁금해서 엿보니 파랑새가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이를 알게 된 파랑새는 홀연히 사라지고 결국 그림은 미완성인 상태로 지금도 한쪽 손이 없다.

 


결국 인간의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죄로 3백년이 지난 지금도 이 괘불은 한쪽 팔이 없는 상태로 남아 있어 믿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이 영산회상 대형괘불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 1278호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는 북장사 명부전을 둘려보고자 했으나 열쇠로 잠겨 있어 다른 쪽의 문을 열려고 했으나 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나중에 북장사 서담 주지스님께 인사를 하자 스님은 우리 일행이 문을 열려고 하는 것을 지켜보았는데 사실은 문이 잠겨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불 때 소리가 나고 해서 열쇠를 단지 고리에 끼워 놓은 것이라고 했다.

 

▲ 직지사 만덕전

그러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10여 년 전에 서담 주지스님께서 8교구 본사인 직지사에 계시면서 동양최대의 목재건물 400여 평의 만덕전 건축과 그 건축을 위해 중국 장백산에서의 목재구입에 대한 어려움 그리고 옛날 북암과 남암에 대한 이야기 등을 통해 북장사와 남장사의 역사도 다시 알게 됐다.

 


그리고 서담 주지스님의 안내로 다시 명부전에 둘려 스님으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북장사 명부전의 불상은 전부 통나무로 약 390년이 넘었으며 크기와 규모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클 것이다’고 직접 설명했다.

 


그리고 옛날에는 북장사의 일주문이 현재 보은으로 가는 국도 초입에 있었으며 북장사를 중심으로 사방 80리가 북장사 땅 이였고 600여 승려가 머물렸다고 한다.

 

 

< 법정 스님의 가을 이야기 >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볼 때, 푸른 하늘 아래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볼 때, 산다는 게 뭘까 하고 문득 혼자서 중얼거릴 때, 나는 새삼스레 착해지려고 한다.

 

나뭇잎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엷은 우수에 물들어간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의 대중가요에도,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그런 가사 하나에도 곧잘 귀를 모은다.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멀리 떠나 있는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깊은 밤 등하에서 주소록을 펼쳐 들 친구들의 눈매를, 그 음성을 기억해낸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한낮에는 아무리 의젓하고 뻣뻣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해가 기운 다음에는 가랑잎 구르는 소리 하나에, 귀뚜라미 우는 소리 하나에도 마음을 여는 연약한 존재임을 새삼스레 알아차린다.

 

 

이 시대 이 공기 속에서 보이지 않는 연줄로 맺어져 서로가 믿고 기대면서 살아가는 인간임을 알게 된다. 낮 동안은 바다 위의 섬처럼 저마다 따로따로 떨어져 있던 우리가 귀소의 시각에는 같은 대지에 뿌리박힌 존재임을 비로소 알아차린다.

 

상공에서 지상을 내려다볼 때 우리들의 현실은 지나간 과거처럼 보인다. 이삭이 여문 논밭은 황홀한 모자이크 젖줄 같은 강물이 유연한 가락처럼 굽이굽이 흐른다. 구름이 헐벗은 산자락을 안쓰러운 듯 쓰다듬고 있다. 시골마다 도시마다 크고 작은 길로 이어져 있다.

 


아득한 태고적 우리 조상들이 첫걸음을 내디디던 바로 그 길을 후손들이 휘적휘적 걸어간다. 그 길을 거쳐 낯선 고장의 소식을 알아오고, 그 길목에서 이웃 마을 처녀와 총각은 눈이 맞는다. 꽃을 한 아름 안고 정다운 벗을 찾아가는 것도 그 길이다.


길은 이렇듯 사람과 사람을 맺어준 탯줄이다. 그 길이 물고 뜯는 싸움의 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사람끼리 흘기고 미워하는 증오의 길이라고도 생각할 수 없다. 뜻이 나와 같지 않대서 짐승처럼 주리를 트는 그런 길이라고는 차마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미워하고 싸우기 위해 마주친 원수가 아니라, 서로 의지해 사랑하려고 아득한 옛적부터 찾아서 만난 이웃들인 것이다.


사람이 산다는 게 뭘까? 잡힐 듯 하면서도 막막한 물음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은, 태어난 것은 언젠가 한 번은 죽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 생자필멸, 회자정리, 그런 것인 줄은 뻔히 알면서도 노상 아쉽고 서운하게 들리는 말이다.

 

 

내 차례는 언제 어디서일까 하고 생각하면 순간순간을 아무렇게나 허투루 살고 싶지 않다.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얼굴을 익혀두고 싶다.

 

 

이다음 세상 어느 길목에선가 우연히 서로 마주칠 때, 오 아무개 아닌가 하고 정답게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도록 지금 이 자리에서 익혀두고 싶다.

 

이 가을에 나는 모든 이웃들을 사랑해주고 싶다. 단 한 사람이라도 서운하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가을은 정말 이상한 계절이다.  - 법정 스님 -

(김천/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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