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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1> 경산의 정신적 지주
원효 그는 누구인가
기사입력 2006-11-11 오후 1: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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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국 경산시립박물관장 |
그는 신라 제26대 진평왕(眞平王) 39년(617년)에 태어나 신문왕(神文王) 6년(686년)에 세상을 떠난 신라말기의 고승이다. 그의 성은 설(薛)씨이고, 이름은 서당(誓幢)이며, 시호는 화정(和靜), 원효(元曉)는 그의 호다.
내마(乃摩,乃末)담날(談捺)의 아들로 지금의 경북 경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출가하여 자신의 집을 고쳐 초개사(初開寺)를 세우고, 그가 태어났다는 곳에 사라사(娑羅寺)를 세운 후 황룡사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그는 오어사(吾魚寺)에서 혜공(惠空)스님과 만났고, 혜공과 같은 무애도인인 대안(大安)스님, 낭지(浪智)스님 등 학식과 덕망이 높은 스님을 찾아다니며 불도(佛道)를 닦았는데 그의 뛰어난 총명에는 따를 자가 없었다고 한다.
45세 때 같이 공부하던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로 구법(求法)의 길을 떠나던 중 당항성(黨項城) 근방 허물어진 무덤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마음이 나야 모든 사물과 법이 나는 것이지 마음이 죽으면 곧 해골이나 다름없다>란 진리를 터득하였고, <삼계(三界)는 오직 마음뿐이란 것을 어찌 잊었더냐>한 후 당나라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환국한 후 분황사(芬皇寺)에서 주석하며 독자적으로 통불교를 제창, 민중 속의 불교 보급에 노력하였다.
하루는 원효가 「唯許沒何斧 我斫支天柱(유허몰하부 아작지천주)」란 노래를 지어 거리를 나돌고 있을 때, 당시 무열왕이 문득 그 뜻을 헤아리고 <대사가 귀부인을 얻어 나라의 기둥이 될 슬기로운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하고 그의 딸 요석공주와 가까이 하게 하여 아들을 보았는데 그가 바로 신라10현 중 한 사람인 설총(薛聰)이다.
설총은 어려서부터 유달리 총명하여 널리 경사에 통달했으며, 이두를 집대성 했고 벼슬은 한림(翰林)에 올랐으며 경덕왕 5년에는 박사로서 강수(强首)와 함께 구경(九經)을 처음으로 구결(口訣)로서 강론하였고, 최치원(催致遠)과 더불어 신라 삼문장(三文章)이 되었다.
설총을 얻은 후로 원효는 속복(俗服)으로 바꾸어 입고 일정한 주거없이 걸림없는 교화행(敎化行)을 하였다.
원효는 우연히 광대가 박을 가지고 춤을 추며 만담을 하는 것을 보고 그와 같은 물건을 만들어 <화엄경>의 「일체무애인(一切無碍人) 일도출생사(一道出生死)」에서 ‘무애(無碍)’를 따다가 박의 이름을 짓고 무애가(無碍歌)란 노래를 지어 부르며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녔는데, 세상 사람들 중에는 원효대사의 교화로 염불 할 줄 모르는 자 없었다고 한다.
원효대사는 이와 같이 속세의 중생 속에 뛰어들어 그들에게 불법(佛法)을 설파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폈다.
원효대사의 이러한 모습들을 본 승려나 세상 사람들 중에는 비웃고 헐뜯는 자 많았는데, 원효는 세상의 비판 따위에 조금도 꺼리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 믿는 길은 끝까지 걸어 나갔다.
이렇게 불법을 설파하다가 70세 때 3월 30일 혈사(穴寺)에서 조용히 생을 마쳤다.
원효대사는 신라불교사상의 종합과 실천에 노력한 정토교의 선구자며 또한 으뜸가는 저술로서 「법화경종요」, 「열반경종요」, 「무량수경종요」외에 많은 저서를 남겼다.
뒷날 고려 숙종이 대성화정국사(大聖和靜國寺)라는 시호를 내렸다.
<경산시립박물관 김종국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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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기자(pm09p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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