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중 4개의 재실이 있는 밀양박씨 집성촌

[경산곡곡 마을 이야기] 진량읍 편(21) - 속초리

2026-07-09 오전 8:48:59

▲ 진량읍 속초리 전경 
 

 

프롤로그

 

진량읍 속초리는 도천산 북쪽 골짜기 아래 넓은 들과 물길을 품고 자리한 마을이다. 예로부터 물이 풍부하고 땅이 기름져 누워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풍요로운 터전이었다. 통일신라시대 초소촌에서 시작된 마을은 속사곡리와 속초동리를 거치며 오늘의 속초리가 되었고, 마을 곳곳에는 여전히 옛 지명과 골짜기, 저수지와 들판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속초리는 자인 고을의 수호신 한장군 전설이 살아 숨 쉬는 곳이기도 하다. 도천산의 장군바위와 살피고개, 당모대기에는 왜구를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며, 마을 사람들의 삶 속에 오래도록 기억되어 왔다. 여기에 16세기 이후 밀양박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오면서 경사재, 숭조당, 석천정, 경모재 등 네 곳의 재실이 세워져 오늘날까지 문중의 역사와 선조들의 정신을 전하고 있다. 이번에는 풍요로운 들판과 전설, 그리고 재실에 깃든 선비 정신이 함께 살아 있는 속초리의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 속초리 행정지도 

 

 

역사와 유래

 

속초리는 원래 압독국 마진량현 초소촌(草所村)이었다(경상도속찬지리지). 신라에 복속된 뒤 압독주 마진량현에 속했고, 고려 초 구사부곡으로 강등되어 1018년 경주부 관할 부곡이 되었다. 이후 초소촌 북서쪽에 속사곡리(束沙谷里)가 생겼다. 1653년 구사부곡이 자인현 하북면으로 편입될 때, 초소촌과 속사곡리는 통합되어 속초동리로 바뀌었다(호구총수). 18세기 행정구역 명칭 개편 때 하북면은 북칠동북종동까지 4개 동으로 나뉘고, 속초동리는 죽원곡리(대원리), 안촌, 신제내리 등과 함께 북팔동에 속하면서 속사곡리(束沙谷里)로 변경되었다. 1888년경 속사곡리는 다시 속초리로 바뀌었다. 1895년 자인현이 자인군으로 바뀌면서 하북면이 중북면과 하북면으로 분리되었는데, 이때 속초동이 되었고, 중북면에 소속되었다. 1914년 부군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진량면에 편입되어 진량면 속초동이 되었다. 해방 후에도 진량면 속초동이라 하다가 1988년 속초리, 1997년 진량읍 속초리가 되었다. 이 마을은 초소속사’ 2개의 각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 속초리 지적도(1912)

 

초소동

 

▲ 초소동 터 

 

초소동(草所洞)’은 속초리 동남쪽 400-6번지 일대에 있던 마을이었다. 마을 이름이 최초로 등장하는 곳은 경상도속찬지리지(1469)이다. 풀이 많은 곳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초소라 한 것으로 보인다. 2007년 대구경주간 고속전철 공사 중 유적지가 발굴되어 영남문화재연구원이 발굴조사를 하였다.

 

▲ 초소동 발굴 주거지(영남문화재연구원)

 

▲ 초소동 발굴 백자 접시(영남문화재연구원)

 

그 결과 통일신라시대와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10여 호의 주거지와 각종 유물이 발굴되었다. 이로써 문서상으로만 전하던 초소동의 존재가 증명되었으며, 이곳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적어도 통일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이 초소촌에 살던 사람들이 북서쪽 현재 속초리 마을 터로 이주하면서 서서히 폐촌되었다.

 

속사곡리·속새

속사곡리(束沙谷里)속사골을 한자로 표기한 이름이다. 도천골에서 흘러내린 개울가 주변에 초소촌 사람들이 들판 쪽으로 옮겨 살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속사라는 이름은 골짜기에 속새풀이 많이 자라 붙여졌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마을 주변 산세가 소가 누워 풀을 뜯는 형국이라 하는데, 특히 소의 꼬리에 해당하는 자리가 지금의 마을 입구 당나무와 정자가 있는 쉼터라고 전해진다. 이러한 이야기로 미루어 보아, 속새풀이 무성하고 목축에 알맞은 지형적 특징이 마을 이름 형성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 속초동리 

 

속초동리

속초동리는 1653년 구사부곡이 경주부로부터 자인현에 다시 돌아오면서 속사곡리의 과 초소동의 를 따 합한 것이다. 마을 이름이 처음 보이는 자료는 호구총수이다. 이후 속초동리는 속초동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속초리 지명지도 

 

▲ 속초리 당나무 

 

 

삶의 터전과 흔적

 

속초리 입구에는 수령 300여 년 된 회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예로부터 마을을 지켜주던 당나무로 주민들은 이곳에서 당제를 지내곤 하였다. 지금은 당제를 지내지 않지만, 보호수로 지정되어 마을의 쉼터가 되어 여전히 마을을 지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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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리는 자인의 주산인 도천산 북쪽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도천산은 북쪽으로 3개의 능선이 뻗어나 두 개의 큰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다. 속초리는 동쪽 도천골에 있다. 그래서 산과 등성이, 골짜기에 관한 이름이 많았다.

 

▲ 도천산 

 

대표적인 산은 남쪽 도천산, 서남쪽 팔굽머리가 있다. 등성이로는 도천골 서쪽 지형이 자라처럼 생긴 자래등, 자래등 서쪽 지형이 디딜방아처럼 생긴 바아등, 바아등 서쪽 팔굽머리산 서쪽 지형이 붕어처럼 생긴 붕어등, 붕어등 서쪽 밀밑등, 밀밑등 서쪽 큰 말림갓이 있던 큰갓등, 큰갓등 동쪽 지형이 혀[]처럼 생긴 새등, 새등 동쪽 팔밭[화전]이 있던 팔밭등, 팔밭등 서쪽 길이 나 있던 질등, 지형이 황새처럼 생긴 황새등 등 많은 등성이가 있다.

 

▲ 도천골 

 

골짜기로는 도천산이 있는 도천골, 속초 남쪽의 성짓골, 속초 위쪽의 윗골시, 속초 서남쪽 옛날 중인사(中仁寺)라는 절이 있었다는 중령골[중림골] 등이 있다.

 

▲ 살피고개 

 

고개로는 속초 남쪽 자인면 냇마[읍천1]로 넘어가는 살빗곡이 있다. 이 고개는 지세가 험하여 조심히 살피면서 다녀야 한다고 해서 살피고개라고도 한다. 일설에는 한장군이 도천산에 있을 때 마을 사람들이 주위를 경계하던 고개라 하여 살피고개라 불렀다고도 한다.

 

저수지·들판

 

▲ 금강지 

 

속초리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는 금강지(金崗池)로 바뀐 부제(釜堤)이다. 이 저수지는 경상도속찬지리지(1469)에 등재되어 있어 적어도 고려 후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자인현읍지(1899)까지 부제로 부르다가 조선지지자료(1911)에서 금강지로 바뀌었다.

 

▲ 초산지 

 

또 속초리 동쪽 서당골 191번지에 있는 서당골못은 조선 후기에 축조되었다. 이외 도천골 안쪽 206번지 일대에 있는 초산지(草山池)222번지에 있는 저수지는 일제시대 이후 축조되었다. 특히 초산지는 초소동 위에 있는 초산(草山)에 축조되어 초산지라 명명되었다.

 

▲ 면장김병곤유공비 

 

초산지 못둑 무넘기에는 저수지를 축조할 때 공을 세운 면장 김병곤(재임 19321946)의 유공비가 서 있다.

 

면장김병곤유공비                                                            面長金炳坤有功碑
 

힘써 저수지가 축조되니                      勤勞堤築(근로제축)

가뭄에 백성을 구제하네.                                              濟民旱荒(제민한황)

몽리가 적지 않으니                                                         蒙利不少(몽리불소)

그 덕을 잊기 어렵네.                                                     其德難忘(기덕난망)

여러 사람 의견 서로 합하니                                        詢謀相合(순모상합)

이 또한 천은이라 하네.                                                 是亦曰天(시역왈천)

돌은 비록 작으나                                                              石雖一毛(석수일모)

공은 만년에 기록되네.                                                   功記萬年(공기만년)

 

▲ 눗보 

 

또 속초 서쪽 수원이 좋아서 이 보의 물을 대는 들판은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잘 지어 누워서도 먹을 수 있다고 하여 눗보 또는 와보(臥洑)라는 보도 있다.

 

▲ 눗보들 

 

이 눗보의 물을 대는 들판을 눗보들이라 한다. 이외에도 서쪽 양쪽으로 물이 흘러 섬처럼 보인다는 섬들’, 지대가 높은 곳에 있다고 하여 높은들’, 눗보들과 높은들 중간에 있다고 하여 중들’, 높은들 서쪽 청석이 많은 산 밑에 있다고 하여 청석들’, 마을 앞에 있다고 하여 앞들등의 들판이 속초리 주민들의 먹거리를 해결해 주었다.

 

속초리의 전설

 

속초리는 남쪽으로 도천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어, 예로부터 이 산과 얽힌 이야기가 많이 전해 내려온다.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자인 고을의 수호신으로 전해지는 한장군 이야기이다.

 

▲ 당모대기 

 

초산지에서 읍천으로 넘어가는 살피고갯길 중간에 당모대기라 불리는 곳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왜구가 침입했을 때 한장군이 도천산에서 왜적과 맞서 싸우자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돌을 한데 모아 장군에게 날랐다고 한다. 한장군은 그 돌을 힘껏 던져 왜적을 물리쳤는데, 던져진 돌들이 멀리 자인의 논과 들판까지 날아가 교촌리와 신도리 들에 가득 흩어졌다고 한다.

 

▲ 도천산 정상 

 

도천산 정상에는 장군바위도 있다. 한장군이 산 위에 앉아 왜적의 움직임을 살피다가 분을 이기지 못해 주먹으로 바위를 내리쳤는데, 그 자리가 우묵하게 패여 남아 있다고 전한다.

 

▲ 살피고개 

 

또 산 아래에는 살피고개라는 고개가 있다. 한장군이 왜구의 동태를 경계하며 수시로 넘나들던 길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며 사방을 살폈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고개 이름 속에 남아 있는 셈이다.

 

또 임진왜란 때 이여송이 이 산의 지도를 보고 위대한 장군이 태어날 형상이라 하여 붓으로 혈을 끊었는데, 그 힘이 이 산에 전달되어 이 산의 허리가 잘록해졌다고 한다. 혈이 끊어진 후 장군들이 이 산에 오르면 죽었고, 장군바위에서는 피가 솟구쳤다고 한다. 또 소나무를 베면 움이 터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움이 트고 개미는 사람을 물지 않는다는 전설 등이 전해 오고 있다.

 

▲ 속초리 들판 

 

한편 속초리는 북쪽으로 넓은 들판이 펼쳐져 예로부터 굶주림을 모르는 마을이라 불릴 만큼 농사가 잘되던 곳이었다. 토지가 비옥하고 물이 풍부하여 곡식이 해마다 넘쳐났다고 한다. 그래서 1637년 자인현이 경주부에서 독립할 때에도, 경주부에서는 곡창지대였던 구사부곡만은 쉽게 내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들판이 워낙 넓고 기름져 속초리에는 삼대에 걸쳐 천석꾼이 이어졌다는 말도 남아 있다. 한장군의 전설과 풍요로운 들판의 기억이 함께 살아 있는 마을, 그것이 바로 속초리이다.

 

 

밀양박씨 4재실

 

이러한 마을에 밀양박씨들이 대대로 살아오고 있다. 속초리에 밀양박씨가 들어와 살게 된 것은 400여 년 전인 16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그 이전에도 마을은 형성되어 있었으나, 어떤 성씨가 살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당시 구사부곡에 정(((() 씨 등이 거주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밀양박씨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기존 성씨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 정재공 박번과 박광득 묘소 

 

이 지역 밀양박씨의 뿌리는 청주에 살던 박운달(朴雲達, 1491~1554)16세기 초 대원리로 입향하면서 시작되었다. 박운달은 아들 박근손(朴謹遜, 15061566)을 두었고, 손자로는 총(((() 네 형제가 있었다. 이 가운데 장손 총은 후손이 없어 둘째 번이 가계를 이었으며, 번의 후손은 다문리에, 란의 후손은 압량 신월리에, 포의 후손은 속초리에 세거하였다. 따라서 속초리에 처음 정착한 밀양박씨는 박운달의 손자인 박포(朴苞, 15391609)라 할 수 있다.

 

원리세고에 수록된 박운달의 포금대(抱琴臺)라는 한시를 필자가 번역하여 인용한다. ‘포금대는 진량읍 내리리 금호강가 모아산에 있던 절벽을 가리킨다. 예부터 이곳에 하양과 자인의 선비들이 모여 풍류를 즐긴 곳이다.

 

 

굽은 절벽 여울 소리 거문고 가락되고,                    回崖激瀨韻成琴(회애격뢰운성금)

바람 이슬 스산한데 달빛은 예와 같네.                    風露凄凉月古今(풍로처량월고금)

옥거문고 홀로 안고 뜻을 품어 왔건만,                    獨抱瑤絃來有意(독포요현래유의)

천년 뒤엔 누가 다시 옥계 소릴 사랑할까.      千年誰愛玉溪音(천년수애옥계음)

 

▲ 송고 박포 묘소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온 속초리에는 같은 문중의 재실이 무려 네 곳이나 남아 있어, 마을의 깊은 역사와 문중 전통을 잘 보여주고 있다.

 

▲ 경사재 

 

경사재

경사재(敬思齋)는 속초리 입향조 박포의 아들 죽와(竹窩) 박계득(朴繼得, 15641614)의 묘사재이다. 밀양박씨 자인 입향조 박운달은 증조부이고, 박근손은 조부이다. 부친은 송고(松皐) 박포이고, 아들은 박이립(15891645)과 석천(石泉) 박특립(15921646)이다. 1917(정사년) 재실을 짓기로 문중에서 협의하여 1918(무오년) 봄에 완공하였다. 도천산 자락 대산 아래에 자연석 석축을 쌓고 동향으로 기둥이 다섯 개인 5량가로 팔작지붕에 기와를 올렸다.

 

▲ 경사재 현판 

 

12세손 박시영(朴時榮)이 쓴 경사재기(敬思齋記)가 있고,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 있다. 대문은 지붕을 얹은 협문으로 되어 있다. 재사를 지을 당시에는 초산지가 없었는데, 1930년대 바로 동쪽에 저수지가 생기면서 저수지 가에 위치하게 되었다.

 

▲ 숭조당 

 

숭조당

숭조당(崇祖堂)은 박계득의 아들 석천 박특립과 그 후손들을 모시는 묘사재이다. 2007년 신제리 섶밭등[신전등(薪田嶝)]이 경산3일반산업단지에 수용되자 그곳에 있던 문중 묘를 이장하여 납골당으로 만든 것이다. 이장하는 과정에서 그곳에 있던 박특립과 그의 손자 절충장군 박예철(朴禮哲)의 비석도 숭조당 앞으로 옮겨 놓았다.

 

▲ 효경문 현판 

 

대문은 효경문, 당호는 숭조당이다. 대문 앞에는 2007년 세운 밀양박씨규정공파석천문중숭조당이라는 비석을 세워놓았다. 숭조당은 5량가에 정면 4칸 측면 2, 팔작지붕에 청기와를 얹었다. 대문은 3칸의 솟을문으로 역시 청기와를 얹었다.

 

▲ 석천정 

 

석천정

석천정(石泉亭)은 석천 박특립의 묘사재로 속초리 마을 가운데 있다. 1978년 밀양박씨 석천문중 박병곤(朴炳坤), 박헌영(朴憲榮) 등이 건립했다. 당호도 박특립의 호를 따 석천정(石泉亭)’이라 하였다. 1978년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동환(18981984)이 쓴 석천정기(石泉亭記)와 몇 개의 게판문이 걸려 있다.

 

▲ 석천정 현판 

 

석천 박특립은 선조 때 왕실에 필요한 음식 재료를 담당하던 호조 내자시(內資寺)에서 종8품의 봉사를 역임하였다. 1637년 병자호란이 끝난 후 고향 속초리에 은거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시와 서를 업으로 삼고 효우를 존숭하고 근검하게 생활하여 한 집안의 모범이 되었다. 그의 묘는 신제리 섶밭등에 있었는데, 경산제3일반산업단지에 수용되면서 비석과 유해를 숭조당으로 이장했다. 이에 석천정에서는 향사를 올리지 않고 있다.

 

▲ 경모재 

 

▲ 경모재 현판 

 

경모재

경모재(景慕齋)는 박운달의 손자 박번과 그의 후손 어모장군 박응득(朴應得)을 추향하는 재실로 1980년 건립했다.

 

▲ 박응득 묘소 

 

박응득은 만력(萬曆) 무오년(1618)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인조(仁祖) 대에 어모장군(禦侮將軍) 및 훈련원(訓鍊院) 주부(主簿)를 지냈다. 기둥에는 중국 북송 시인 소식(蘇軾)의 시 일부를 인용하여 창작한 주련(柱聯)이 걸려 있다.

 

▲ 경모재 주련 

 

복이 있으니 비로소 책을 읽을 수 있고                          有福方讀書(유복방독서)

일이 없으니 이곳에 조용히 앉아 쉰다네                        無事此靜坐(무사차정좌)

책이 있으니 위진의 풍류를 읊을 수 있고                      有書笛晉魏(유서적진위)

일이 없으니 복희씨 태평성대를 말한다네                      無事話羲皇(무사화희황)

 

 

에필로그

 

속초리는 도천산 자락 아래 넓은 들과 오래된 저수지를 품고,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지켜온 마을이다. 초소촌에서 시작된 작은 마을은 속사곡리와 속초동리를 거치며 오늘에 이르렀고, 장군바위와 살피고개, 당모대기에 얽힌 한장군 전설은 지금도 마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다.

 

특히 속초리에는 한 문중의 재실이 네 곳이나 남아 있다. 경사재와 숭조당, 석천정과 경모재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조상을 공경하고 학문과 덕행을 이어가려 했던 선조들의 정신이 담긴 공간이다. “복이 있으니 비로소 책을 읽을 수 있고, 일이 없으니 이곳에 조용히 앉아 쉰다네라는 경모재 주련의 글귀처럼, 속초리는 풍요로운 삶 속에서도 학문과 풍류, 효우와 근검의 가치를 소중히 이어온 마을이었다.

 

오늘날 삶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지만, 도천산 능선과 들판, 그리고 오래된 재실들은 여전히 속초리의 시간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과거의 전설과 현재의 삶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곳, 그 속에서 우리는 오래된 마을이 지닌 깊은 품격과 사람들의 따뜻한 삶의 흔적을 다시 만나게 된다.

 

: 이홍우(자인의 역사저자)

사진 : 이홍우/양재완 작가

 

<사진 자료>

 

▲ 속초리 마을 전경 
 
▲ 마을 안길 
 
▲ 마을 전경 
 
▲ 속초리 마을회관
 
▲ 경사재 
 
▲ 숭조당
 
▲ 숭조당 효경문
 
▲ 석천정
 
▲ 경모재 
 
▲ 면장 김병곤 유공비 
 
▲ 박포 묘소 
 
▲ 금강지 
 
▲ 초산지
 
▲ 눗보들
 
▲ 앞들
 
▲ 중들
 
▲ 윗골 
 
▲ 속초리 당나무 

 

경산인터넷뉴스 (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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