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학생문학공모전 입상작 및 수상자

2017-09-25 오후 5:30:37

<초등 저학년부 (운문) 최우수>

 

 

우리 할머니

 

                                성암초 / 이승빈

 

우리 할머니 얼굴 보면

일기예보 같아요.

 

나를 보면서 표정이

달라져요

 

내가 슬프면

할머니 얼굴에 먹구름이 가득

 

내가 기분 좋으면

보름달처럼 환해져요.

 

내가 밝고 환하게

쑥쑥 자라면

 

우리 할머니 얼굴에는

별처럼 빛난

웃음꽃이 피어요.

 

 

<초등 저학년부 우수>

바람

 

                                   자인초  / 김채은

 

 

휘익휘익

산에서 부는 바람에

나무들이 춤을 추어요.

 

살랑살랑

들에서 부는 바람에

잎들이 춤을 추어요.

 

솔솔

봄바람에

꽃들이 춤을 추어요

 

 

바림은

바람은

무용 선생님인가 봐

 

 

 

 

<초등 저학년부 우수>

 

나쁜 형아 착한 형아

 

 

                                     장산초 / 윤수찬

 

우리 형아는

화를 많이 내고

때리기도 하고

놀리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형아는

내가 모르는게 있으면

잘 알려주고

잘 놀아줍니다

 

우리 형아는

나쁜 형아일까요?

착한 형아일까요?

 

 

 

<초등 저학년부 장려>

 

보름달

 

                                   하양초 / 백소연

 

 

보름달이 뜨는 밤

나무는 자고

부엉이는 일어나고,

 

 

보름달이 뜨는 밤

추석날,

정월대보름달이 뜨지요.

 

 

보름달은 왜 날 따라올까?

내가 좋은가?

아니야, 내가 보고 싶나봐!

 

 

 

<초등 저학년부 장려>

 


                               삼성현초 / 정다정

 

하얀 솜 같은 눈

길에도,

지붕위에도,

냇가에도

수북이 쌓였어.

 

눈은

차가운 마음을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차가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좋은 친구 같은 눈

 

그래서

차가운 겨울에 내리나보다.

 

 

 

<초등 저학년부 장려>

 

색깔 놀이

                                      하양초 / 윤보미

 

 

코스모스는 분홍색

민들레는 노랑색

나무는 연두색

 

하늘은 파란색

포도는 보라색

토마토는 빨강색

 

내 마음엔 무지개가 떴어요.

 

 

<초등 저학년부 (산문) 최우수>
 

                                                          땅따먹기

                                                                                                  장산초 김연수

 

수아랑 온유랑 나 그리고 동생과 놀기로 하였다. 우리집에서 땅따먹기를 했다. 땅따먹기는 처음이라 마음이 설레었다. 나는 처음에 땅 모양이 돼지처럼 되어서 웃겼다. 온유는 여우모양이 됐고 동생 민채는 나무모양이 되었다. 수아는 만화에 나오는 피카츄 귀 모양이 되었다. 나는 돼지 모양이어서 그림 그려 보았는데 너무 웃겨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땅따먹기는 엄마가 어렸을 적에 했던 놀이인데 엄마가 어렸을 때는 칠판을 안 내리고 흙바닥에서 했다고 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흙땅이 별로 없어서 많이 아쉽다. 땅따먹기는 땅에서 세 번 안에 다시 들어오면서 그린 그 안의 땅을 차지하는 놀이이다. 땅따먹기에서 유리한 점은 일단 직선으로 나간 후에 대각선으로 가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놀이가 다 끝나고 내가 엄마 칠판 좀 다시 걸어주세요.”라고 했다. 땅 따먹기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재밌고 신나는 놀이이다. 다음에 친구들과 모여 또 하고 싶다.

 

 

<초등 저학년부 (산문) 우수>

 

                                                   내 친구 피아노이야기

 

                                                                                   정평초등학교 / 김선우

 

우리 집에는 예쁜 피아노가 있다.

아는 친척이 쓰던 피아노를 처음 만난 날은 3년 전 7살 때이고 그 날부터 피아노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

올해로 피아노는 3살이고 이젠 정말 내 친동생 처럼 여겨진다.

우리 집 피아노는 따각따각 나무 소리가 나는 전자피아노다.

피아노를 칠 때 마다 따각거리는 나무소리가 나는데 가끔씩 나무소리가 시끄러울 때도 있지만 나무소리가 나니 뭔가 더 특별하게 느껴져서 좋다.

피아노는 나의 기분을 언제나 잘 알아주는 똑똑한 동생이다. 어떨 때는 나의 기분을 부모님보다 더 잘 알아줘서 정말 고맙다.

내가 기쁘고 즐거우면 피아노도 기쁘고 즐거운 소리를 들려주고 힘이 없고 속상할 때는 피아노도 내 기분을 잘 안다는 듯이 조용하고 힘이 없는 소리를 낸다.

가끔씩 내가 화가 날 땐 쿵쾅쿵쾅 거리는 아주 큰 소리를 낼 때도 있다.

피아노를 치면 속상하고 힘이 들고 짜증날 때 나의 기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피아노 소리가 힘이나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나는 피아노가 좋다.

그리고 내가 피아노로 동요를 치거나 소곡집을 치다보면 음악을 듣는 재미가 점점 커져서 힘들었던 일이 기억에서 사라진다.

피아노는 사물이지만 난 피아노가 꼭 나의 살아있는 동생처럼 느껴진다.

피아노를 쳐서 사람들의 기분을 음악소리로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앞으로 피아노 학원에서 피아노를 더 열심히 배울꺼다. 어려운 곡도 열심히 배워서 피아노도 나처럼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

피아노가 우리가족, 나의 동생, 언니, 친구 같아서 좋고 나의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알아줘서 너무 고맙다.

앞으로는 화가 나도 쿵쾅쿵쾅 거리며 치지 않고 피아노에게 언제나 친절하고 부드럽게 잘 대해 줄거다.

난 피아노가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

 

 

<초등 저학년부 (산문) 우수>

 

                                                        최고의 음악회

                                                                                                  와촌초 / 채상녕

 

내일은 민수가 기대하던 음악회를 하는 날이에요. 민수는 내일을 기다리며 엄마에게 말했어요. “엄마, 나 내일 잘할 수 있을까?” 엄마는 하하하 호호호 하고 웃어댔지요. “그럼. 넌 분명히 잘 해낼 거야.”엄마가 말했어요. 난 엄마를 믿고 내일을 상상하며 행복하게 잠에 빠져들었어요. 엄마는 민수를 깨우고, 씻고 나가자고 말했어요. 민수는 밤새 음악회를 기대했고 음악회에 갈 생각에 아침부터 기뻤어요. 근데 민수는 기대했던 만큼 기쁘지 않았어요. 민수는 갑자기 마음이 조마조마 했어요. 민수는 의자에 앉아있는 엄마를 보았어요. 그때, 엄마는 보았어요. 민수가 떨고 있는 걸. 그러자 엄마는 깜짝 놀랐어요. 민수는 맨 앞줄에 앉아서 꽹과리를 치는 거였거든요. 드디어 민수와 아이들이 연주를 시작했어요. 민수반 아이들은 환한 표정인데 민수 혼자만 얼어붙은 표정이었어요. 그걸 본 학부모, 선생님들은 깜짝 놀랐어요. 민수는 힘든 표정 이였는데 민수반 아이들은 매우 환한 표정이었어요. 연주가 다 끝나고 민수는 선생님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 선생님¨¨¨. 저 화장실에 좀 같다올게요.” 선생님이 빨리 같다오라고 말하셨어요. 화장실에 간 민수는 울고 있었어요. 민수는 화장실에서 눈물을 닦고 돌아왔어요. 다시 민수 반 아이들이 하는 차례에요. 민수의 얼굴이 또 얼어붙었어요. 그때 민수반 아이들이 민수를 응원하니까 민수의 얼어붙은 표정이 이제 환한 웃음 표정으로 바뀌면서 즐겁게 꽹과리를 쳤어요. 민수는 이렇게 말했어요. “오늘은 최고의 음악회다!” 라고 외치며, 민수는 신나게 음악회를 했답니다.

 

 

<초등 저학년부 (산문) 장려>

 

                                                        아름다운 마음

                                                                                                 자인초 / 김민주

 

 

선생님께서 아름다운 마음에 대한 훈화말씀을 들려 주셨다.

어느 부자집에는 금그릇, 은그릇, 질그릇이 있었는데, 주인이 여행을 떠나게 떠나면서 평소에 소중히 여기던 다이아몬드를여러분 같으면 어느 그릇에 숨겨두고 떠나겠느냐고 물으셨다. 금그릇이라고 대답한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나도 금그릇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 부자는 다이아몬드를 질그릇속에 넣어두기로 했다고 한다. 도둑이 들더라도 질그릇에는 귀중한

보물이 들었다는 사실을 모를 것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늘무시당했던 질그릇은 이제 가장 귀한 다이아몬드 그릇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사람도 여러 종류의 그릇처럼 외모가 멋지고 능력이 많은 금그릇 같은 사람, 보잘 것 없는 외모와 자랑할 것 없는 능력을 가진 질그릇 같은 사람들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겉모습에 있지 않고 그 속에 무엇을 채우느냐가 중요하다고 하셨다.

나는 훈화를 듣고 내 마음에 무엇을 채워야 될까를 고민했다. 욕심, 시기, 질투, 짜증을 을 채우면 더러운 그릇이 되겠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채워서 속사람을 아름답게 채워야하겠다.




<초등 저학년부 (산문) 장려>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읽고

 

                                                                                          성암초등학교 / 이나경

 

하이디는 이모가 돈을 벌기위해 멀리 떠나게 되어서 할아버지 집에 맡겨지게 되었다. 처음 할아버지 집에 도착했을 때는 무서운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다행이 따뜻하고 좋으신 분이였다. 하이디는 초원에서 뛰어놀고 염소몰이도 하고 하루하루 행복하게 지냈다.밝고 명랑하고 마음이 따뜻한 하이디는 주위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다.

다리가 불편해서 학교도 갈 수 없고 말동무가 되어줄 친구도 없는 클라라의 친구가 되어주기 위해 하이디가 그 집으로 가게 되었다. 클라라도 밝고 긍정적인 하이디 때문에 점점 행복해졌다. 클라라는 행복해졌지만 하이디는 몽유병과 향수병으로 점점 아파했다. 의사가 하이디를 데려가 침대에 눕힌 다음 따뜻한 이불을 덮어 주고 하이디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정하게 물었습니다.

"이젠 마음이 놓이지? 말해 보렴. 아까는 어딜 가려던 거였지?"

"어디에 가려고 한 게 아니에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제가 문 앞에 있는 거에요."

"그럼, 혹시 무슨 꿈을 꾸었니?"

", 매일 똑같은 꿈을 꾸어요. 꿈속에서 전 할아버지 옆에 있었어요. 전나무가 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고 하늘에는 별이 총총했어요. 오두막 밖으로 뛰어나갔더니 내가 보고 싶었던 풍경이 보였어요.

하지만 아침에 잠을 깨면 모두 사라지고 언제나 프랑크푸르트에 있어요!"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하이디가 얼마나 할아버지가 그리웠을까 만약 내가 엄마를 못 본다고 생각하니 나는 마음이 점점 슬퍼졌다.

결국 할아버지에게로 돌아온 하이디가 건강한 모습으로 예전처럼 지내고 하이디가 그리워 찾아온 클라라의 도움으로 다시 걸을 수 있게 되고 밝고 씩씩한 알프스소녀 하이디로 돌아왔다.

나도 하이디처럼 어려운 환경에서도 씩씩하고 밝게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겼으면 좋겠다.

 

 

<초등 저학년부 (산문) 장려>

 

                                                   나의 꿈은 작가입니다

                                                                                    경산중앙초등학교 / 홍한나

 

나는 8살 여자 아이입니다.나는 책읽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도서관에 자주 갑니다.그 곳에는 여러가지 책이 있습니다.신기한 책,재미있는 책,예쁜 책,놀라운 책 등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책들은 항상 재미있어요. 그래서 나도 재미있는 책을 만들고 싶어요.역사 이야기가 있는 책도 만들고 싶고,성경이야기가 있는 책도 만들고 싶고,놀라운 과학 이야기가 있는 책도 만들고 싶어요.

내가 만든 책을 친구들이 보면 어떨까요? 나처럼 재미있어할까? 나처럼 신기해할까? 생각만 해도 기뻐요.

우리 아빠 엄마 동생들에게 또 우리 친구들에게 책을 만들어주고 싶어요.나처럼 재미있게 읽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재미있는 책을 쓰고 예쁜 책을 만드는 작가가 될 거예요.

 

 

<초등 고학년부 (운문) 최우수>

 


                                     경산서부초 / 김선우

 

내가 걷고 있으면

내 발 밑엔

길이 있다

 

사시사철 밟히고도

불평하지도 않고

기꺼이 밟혀주는

 

내가 맨발이든 자동차든

신음 하나 내지 않고

기꺼이 밟혀주는

 

신경 끄고 지나가도

드러낼 생각도 않고

기꺼이 밟혀주는

 

그 길의

넓은 마음을

누가 알으랴

 

 

<초등 고학년부 (운문) 우수>

 

5.4.3.2.1


                                       자인초등학교 / 서영진

 

우리 선생님은 언제나

5.4.3.2.1을 외치신다

 

혼날 때 책상위로 5.4.3.2.1

전담 수업 가는데 5.4.3.2.1

 

선생님 퇴근하고

우리가 짐 싸는데 5.4.3.2.1

 

지금은 7

졸업까지 5개월 남았네

 

설마 선생님께서

이 말씀은 안하시겠지?

졸업까지 5.4.3.2.1 .....
 

 

<초등 고학년부 (운문) 우수>

 

팥빙수 같은 바닷가


                                   장산초 / 임유정

 

 

푸른 바다, 뽀얀 모래

사람들이 가져온 수박과 여러 음식들.

자세히 보니 팥빙수 같네.

푸른 바다는 시원한 소다.

아이 시원해.

뽀얀 모래는 달달한 콩가루.

이렇게만 먹어도 맛있어.

여기에다가 수박 그리고 배

팥빙수 같은 바닷가.

 

 

<초등 고학년부 (운문) 장려>

 

 

                              성암초등학교 / 김수정

 

꽃은 방향제이다.

방향제처럼 좋은 냄새로

내 기분을 좋게 하듯

꽃도 내 기분을 좋게 한다.

 

꽃은 봄이다.

봄의 풍경처럼 아름다움으로

나를 기분 좋게 하듯

꽃도 내 마음을 좋게 한다.

 

꽃은 부모님이다.

부모님처럼 아음으로

행복하게 해 주시듯이

꽃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


 

<초등 고학년부 (운문) 장려>

 

광복절이란

 

남성초 / 허준호

 

광복절이란

슬픔과 작별한 날이지

 

광복절이란

희망의 꽃을 피운 날이지

 

광복절이란

행복을 알게 해준 날이지

 

광복절이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조상님들에게 감사하는 날이지

 

광복절이란

우리의 나라를

새롭게 만든 날이지

 

 

<초등 고학년부 (운문) 장려>

 

세상의 별

 

                                    사동초등학교 / 김유민

 

밤하늘의 빛나는 별빛처럼

우리도 빛난다.

대낮의 빛나는 햇빛처럼

우리도 빛난다.

 

밤하늘의 별들 중

빛나지 않는 별은 없다.

우리 사람들 중

빛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대낮의 햇빛이

빛나지 않은 적은 없다.

우리 사람들 중

빛난 적 없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빛나면

옆에 있는 장애우도 빛난다.

장애우가 빛나면

옆에 있는 우리도 빛난다.

 

우리가 즐거우면

장애우도 즐거워야 한다.

장애우가 즐거우면

우리도 즐거웁게 된다.

 

함께 빛나는 별빛처럼

온 세상을 비추는 햇빛처럼

함께 그리고 더불어...

 

우리의 작은 실천,

장애우에겐 큰 도움.




<초등 고학년부 (산문) 최우수>

 

                                           기적을 기다리는 소나무와 할아버지

 

                                                                                           정평초등학교 / 문지현

 

 

안녕하세요? 할아버지의 첫째 보물 맏손녀 지현이에요. 매일 얼굴보며 생활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요양 차 산도 많고 공기 좋은 시골집에 지내시게되어 그동안 부끄러워서 전해지 못했던 제 마음을 표현하고자 이렇게 편지를 써요.

작년 9월 이유없이 갑자기 체중이 확 줄고 피곤해 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병원에 가서 이것저것 검사를 받는 도중 하루 빨리 큰 병원에 가보셔야 겠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가족들 모두 근심에 가득 차 있었죠. 곧바로 대학병원에 갔는데 내려진 진단은 췌장암. 갑자기 당한 상황이라 모두 어안이 벙벙한 채 슬픔과 절망에 서로 눈물만 흘리고, 저 또한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어떻게 되실까봐 무서워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저는 이게 현실이 아니라고 부정했어요.

TV에서나 나올법한 얘기의 주인공이 우리 할아버지라니 정말 말도 안 된다고 말이에요. 왜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평생 바르게만 살아오신 우리 할아버지한테 이런 몹쓸 병이 찾아왔는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을 원망했어요. 늘 같이 부대끼며 지내던 사랑하는 가족이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이별여행을 하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현실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지 말이에요. 그래서인지 매일 밤마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에게는 죽음이 꼭 존재하는데, 그 죽음을 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되도록 아주 먼 미래에 나타나면 더 좋을 텐데 그런 방법은 없을까? 하고 매일 생각했어요. 죽음으로 남은 가족에게 다가올 커다란 슬픔이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그냥 시간이 이대로 영원히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어요.

췌장암은 암중에서도 제일 무섭고 고치기 힘들다는 무서운 병이라 가족들 모두 뭐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첫 번째 항암치료 받는 날이 다가왔었죠. 독한 암세포를 이겨야 되니까 약 또한 얼마나 독할까? 그 독한 약을 할아버지께서 잘 버티실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하는 저희에게 할아버지께서너무 걱정하지 마라. 당장은 크기가 커서 수술이 불가하지만 그래도 전이가 안 되었으니 그나마 천만다행 아이가. 나도 처음 받는 항암치료라 솔직히 겁도 나는데, 치료도 잘 받고 운동하고 식이요법하고 같이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나. 끝까지 최선을 다 할테니까 옆에서 열심히 응원해도. 꼭 암세포 이겨서 완치 될 수 있게 우리 모두 희망을 갖자!”라고 오히려 슬퍼하고 있는 저희를 다독여 주시는 모습에 저는 문득 소나무가 생각났어요. 늘 같은 자리에서 무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도 항상 꼿꼿하게 비바람, 눈보라가 몰아쳐도 끄덕없이 사시사철 푸른 강인한 소나무 말이에요.

언제가 강원도 여행길에 돌아오는 차에서 아무것도 없을것 같은 우뚝 솓은 바위산에 단단하게 버티고 있는 나무를 가르키며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죠. “지현아! 저기 민둥산에 높다랗게 푸른 나무 보이제? 할아버지는 나무 중에 소나무가 제일 으뜸이고 참 멋진 나무라고 생각한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있는 강인한 생명력과 늘 한결같이 푸른 모습이 참 좋다.”라고 말이에요. 할아버지는 정말 강인하고 멋진 소나무를 꼭 닮았어요.

처음 항암치료 받으시고는 멀미하는 것처럼 어지럽고 속도 계속 울렁거리시고 피부에도 발진이 생겨 가려우셔서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고 고생이 많으셨죠. 가족들 모두 할아버지 간병 때문에 동분서주하며 바쁜데 저는 아무것도 해드릴 수 있는게 없는 것 같아서 너무 죄송했어요. 하지만 힘든 치료 중에도 애써 웃음 지으시며 되도록 밝은 모습을 보여주실려고 노력하시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슬픔과 걱정으로 우울해하는 모습보단 밝게 웃으며 즐겁게 생활하는 모습이 할아버지께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엄마의 말씀을 제 마음도 한결 편해지고 이제는 많이 웃을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죽음을 무조건 두려운 존재로 생각하지 말고, 조금 빨리 지구별에서 하늘나라로 소풍을 간 것이라고 말이에요. 비록 볼 수는 없지만 수호천사처럼 늘 옆에 계신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이 든든할 것 같아요.

생각이 사람을 바꾼다라는 TV광고처럼 부정적인 생각만 하면 부정적인 결과를,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수 있으니 밝은 에너지가 할아버지께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이에요.

지금도 할아버지의 몸도 마음이 제일 힘드실 텐데 오히려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고생시키는 것 같아 미안하다며 항상 가족을 먼저 생각하시는 모습이 참 존경스럽고 든든해요.

저도 이제는 슬픈 생각은 넣어두고 항상 좋은 마음으로 할아버지를 열심히 응원할꺼에요. 그러면 나쁜 췌장암 세포도 내가 상대를 잘못 골랐네하며 할아버지의 강인한 모습에 슬금슬금 도망갈 것 같아요.

계속되는 항암치료로 힘드시지만 지금처럼 늘 저희 곁에서 든든한 소나무가 되어 주세요. 저도 할아버지를 위해서 늘 기도하고 응원할께요.

사랑하는 할아버지, 항상 존경하고 바다보다 우주보다 더 많이 사랑해요.

 

세상에서 할아버지를 제일 많이 사랑하는

손녀 문지현 드림.

 

 

<초등 고학년부 (산문) 우수>

 

                                               7년의 기다림을 기억해

 

                                                                                           정평초등학교 / 서보경

 

어린 일개미는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싱싱하고 큰 먹이를 발견했다. 요사이 개미마을은 흉년이 계속되어 먹이를 찾아 멀고 험한 곳도 가리지 않고 헤매고 다녔지만 빈손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래서 좀 더 기름진 땅을 찾아 마을을 옮겨야 할 지 아니면 남아있을지 생각하던 참에 큰 먹이라니, 너무나도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린 개미가 찾아낸 먹이는 반짝거리는 두꺼운 갑옷을 입은 매미였다. 그걸 모르는 개미들은 무섭지 않았다. 그 중 가장 의젓하고 지혜로운 늙은 개미는 매미임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매미가 한여름을 위하여 7년 동안 날개와 목청을 다듬는다고 말했다. 다른 개미들은 그 말을 듣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노래라며 투덜댔다.

하지만 또 다른 개미들은 매미의 노랫소리가 여름의 풍경을 정신없이 바라볼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결국 개미들은 매미를 땅 위로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천장이 온통 콘크리트로 쳐져 개미들은 힘들었다. 도착한 곳은 콘크리트가 없는 나무 밑이었다. 이제 매미는 혼자 힘으로 올라가 빛나는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개미들은 먹이는 놓쳤지만 기쁨에 차서 매미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나는 책을 읽어가다가 이 장면에서 너무 감동적이어서 마음속으로 나도 모르게 개미들에게 큰 박수를 쳐주었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위한 것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데 이 장면을 읽고 나니 이제는 나도 나를 위한 것을 누군가 필요하다면 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지금은 다섯 살인 동생이 크면 언니로써 더 많이 양보하고 더 많이 이해해 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또 다른 인상적이고 재미있던 부분은 개미들이 매미를 여름의 주인공이러고 인정해 준 장면이다. 난 내가 늘 최고가 되고 싶어하는 마음이 숨겨져있기 때문에 인정을 잘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장면을 읽고 나서는 앞으로 인정을 잘하는 어린이가 되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책을 읽다가보니 징그러운 장면도 있었다. 어린개미가 찾아낸 큰 먹이, 매미가 그려져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한 문장 한 문장 읽고 이해하다보니 징그러운 느낌이 신기하게도 없어졌다.

처음 책 제목을 보았을 때 왜?,어떻게 7년 동안 잠을 잘까? 잠을 자는 친구는 누구일까? 궁금했는데 그 주인공이 매미란 것에 놀랐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 2주 남짓 살고 죽는다는 사실에 더욱 더 놀랐다. 이제는 여름을 대표하는 매미를 볼 때면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사는 환경을 돌아보면 모든 동식물들과 살아가고 있지만 앞으로 계속 콘크리트로 바닥을 덮고 자연을 보호하지 않으면 더불어 살 수 없 고 우리까지 살 수 없는 삭막하고 끔찍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너무 무서워졌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친구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 친구들도 분명 나처럼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일 매일 힘들때마다 7년 간의 기다림을 견디는 매미와 화려한 날개를 기억하며 내 꿈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보갱이 파이팅~

 

 

<초등 고학년부 (산문) 우수>

 

                                                   통일을 향해 가는 길

 

                                                                                        경산 서부초 / 이아인

 

요즘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연예인들만큼 친근한 탈북자들이 나오는 프로그램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사람들은 통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김정은 정권의 세습이 시작되고 더욱 심각해진 독재에 의한 숙청과 처형, 독극물을 이용한 암살과 같은 공포정치와 생존권마저 위협하는 빈곤, 인권 유린 문제, 전 세계를 초긴장 상태로 만드는 핵 실험 문제, 개성공단의 폐쇄는 경제적으로도 사회 정치적으로도 위기와 붕괴를 향해가고 있다. 북한의 실태는 국제사회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이런 북한정권의 심각한 현실이 우리로 하여금 망설이게 만들고, 우리의 마음에서 통일을 더 멀어지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도 북한의 핵실험에 대비하기위한 사드배치로 나라 안팎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 외교문제, 사드배치로 인한 지역주민들과의 충돌, 국방비용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돌이키기엔 더 많은 노력과 땀이 그리고 비용이 필요할 텐데…….’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55일 어린이날을 맞아 우리 가족은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을 다녀왔다. 4월 수학여행으로 천안 독립기념관을 다녀온 후 꼭 한 번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 운동가들과 일제의 침략에 거북선을 이용한 훌륭한 전술로 용맹하게 맞서 싸운 이 순신장군, 연평해전, 천안함 폭격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순직하신 군인들, 이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세계유일의 분단국가, 6.25전쟁은 휴전한 채로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다. 우리국민 모두가 알아야 할 역사의 아픔을 전시해 놓은 전쟁기념관에서 많은 사실들을 눈으로 살펴 볼 수 있었다.

한국전쟁은 1950년부터 3년에 걸쳐서 일어났는데 남한은 미국이 북한은 소련이 지원하게 되면서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지고 발전하게 되었다. 남한은 민주주의 정신을 기본으로, 북한은 공산주의를 이념으로 채택하였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많은 발전을 해왔다. 3.15부정선거 타도, 19604.19혁명, 19876월 민주항쟁, 민주정부 수립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 대통령의 부정행위로 인해 나라가 또 한 번 들썩였다. 대통령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않았지만, 국민은 스스로 주권을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을 나서며 부끄러운 우리의 현실에 어깨가 무겁고 다시 한 번 고개가 떨구어졌다. 2016년 놀라움과 충격의 연속이었던 뉴스를 접하고 포기하고 실망하기보다 국민 스스로로 하여금 역경 속에서도 선조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처럼 민주주의를 향해 한 사람 두 사람의 마음이 모이고, 작은 마음이 뜨거운 물결을 이루었다. 촛불집회가 있었던 광화문 그 곳에서 함께 우리를 지지하고 응원하였을 이 순신장군과 세종대왕을 보며 답답한 마음은 여전히 안타깝지만,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이어온 정신과 얼이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세월을 초월하여 뜨겁게 전해져 오는 것만 같았다.

그들이 지키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가슴이 다시 한 번 뜨거워졌다. 한반도, 통일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올바른 역사관을 통한 바람직한 통일관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이다.

수많은 세월을 비극으로 살아온 우리 겨레에게 당장의 통일이 가져오는 결과는 사탕 같은 달콤한 것이라 생각한다. 순간 달콤함으로 즐거움을 선물하는 사탕은 잠시는 행복하지만 먹고 나면 자꾸만 더 먹고 싶고 충치 예방을 위해 양치를 하여야 하는 것처럼 통일도 무엇보다 많은 대가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가짐도, 경제적인 문제나 정치 이념적 문제도 철저한 계획 하에 대비하고 준비하여야한다. 독일과 같은 나라들을 교훈삼아서 말이다. 통일에 대한 인식은 관심을 가지는 것에서 출발한다. 촛불이, 정의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한다.

일제의 침략과 6.25의 아픔 속에서 독립만 위해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키고 헌신하신 조상들의 얼과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 단 하나의 분단국가인 우리의 과제를 잘 해결하여야 할 것이다. 통일을 통하여 얻어지는 이익과 손실을 바로 알고 하나의 국가 한반도를 위하여 개인 한사람을 시작으로 많은 국민들의 인식 변화와 의식 개선을 통하여 슬기로운 자세로 극복하고자 노력한다면, 통일은 어렵지만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다. 통일을 넘어 찾아올 문제들도 잘 헤쳐나 갈수 있을 것이다

선조들의 희생을 통해 지금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이 행복을 후손들에게도 꼭 물려주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다. 일본과 같은 외세의 침략에도 강인한 독립의지를 불태웠던 우리 겨레의 정신, 금 모으기 운동을 펼쳤던 IMF경제위기와 2016년 촛불집회, 역경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힘을 모았던 우리의 국민의 저력을 자부심으로 발판 삼아 포기 하지 않는다면 통일 또한 이루어 질 것이다. 한반도가 하나 되어 전 세계가 감동 할 아름다운 통일의 촛불이 다시 한 번 타 오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초등 고학년부 (산문) 장려>

 

                                                        아까운 나의 용돈
 

                                                                                                   장산초 / 류다정

 

나는 운동을 정말 좋아한다. 체육 시간에도 가장 열심히 하고 특히 학교 마치고 축구를 열심히 한다. 축구를 지나치게 열심히 해서 내 몸에 영광의 상처도 꽤 있다.

한창 축구에 빠져 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는 축구에 관한 모든 것을 접해보고 싶었다. 멋진 축구와도 신고 싶었고 축구경기장에 가서 프로 선수들이 하는 경기도보고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 순간축구를 좋아하면 멋진 축구공부터 장만해야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즉시 난 컴퓨터를 켜고 축구공을 알아보았다. 절류도 가격도 나양했다. 내가 가진 돈으로 월하는 것을 사기 어려워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엄마는 같이 가격을 보고 골라보자고 하셨고 그 말이 난 너무 좋았다. 엄마와 함께 축구공을 줄러보다 엄마가 가격과 디자인이 적당한 것을 골라주셨다. 하지만 난 좀 더 비싸고 멋진 것을 사고 싶었다. 엄마와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서 신경전을 벌이다 나의 일주일 용돈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내가 원하는 축구공을 샀다.

며칠 후 축구공이 도착했다. 하지만 그땐 이미 나의 축구 사랑이 식은 뒤였다. 이런저런 핑계로 축구공을 쓰지 않고 있다가 딱 세 번째 차는 날 공에 큰 유리조각이 박혀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

아깝게 날아간 나의 일주일 용돈...

이 일이 있고난 후 난 당장 좋아하는 운동이라도 내 마음이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성급하게 운동용품을 사지 않고 있다.

 

 

<초등 고학년부 (산문) 장려>

 

                                                      자연을 살리자!!


                                                                                       삼성현초등학교 / 김서현

 

오늘 선생님께서 공모전 용지를 주며 이 공모전 한 번 나가 볼래?”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선 듯 라 대답하며 나는 잘 할 수 있을까? 주제는 무엇으로 하지?’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자연입니다. 우리 주위에 있지만 우리가 깊게 정말 자세하게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에 있는 책 중에 자연에 관한 책을 찾아보았습니다. 그중에 인물 책이 제일 괜찮은 것 같아서 자연에 관한 인물 중에 잘 알지 못하는 인물을 선택하여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왕가리 마타이 입니다. 그녀는 194041일 케냐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키쿠우족의 후손입니다. 그녀는 2004년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었고, 노벨상 역사상 아프리카 여성이 받은 것이 처음이고, 환경운동가로서 받은 것도 처음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국회의원인데, 국회의원이 되면 일자를 마련해 주기로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못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가리 마타이는 돈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일자리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인바이어러케어라는 회사를 세웠습니다. 케냐하면 어떤 장면이 떠올리나요? 혹시, 아프리카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메마른 사막을 떠올리지는 않나요? 케냐에 사막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케냐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아프리카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자연환경을 가졌답니다. 울창한 숲과 넓고 깊은 호수, 높은 산과 초록빛 풀이 펼쳐진 아름다운 평야를 가지고 있거든요, 물론,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 때문에 사막이 점점 넓어지고 있긴 하지만 말이에요. 이런 자연환경을 가진 곳이었기 때문에, 왕가리 마타이는 파괴된 케냐의 숲을 보고 나무를 심어 숲을 살려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케냐에는 숲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이렇듯 케냐는 아프리카에 있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곳에서는 나무묘목 심기활동을 했었는데 정부에서 물을 지원해 주지 않아 실패를 많이 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파괴되어 가는 숲과 차별받으며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린벨트운동을 하게 되었고, 케냐 사람들이 나무에 대한 친근감을 갖도록 더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잘려나가는 나무 수가 너무 많아 왕가리는 국회의원이 되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왕가리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왕가리가 국회의원이 되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이 이후로 그린벨트운동은 더 심해졌고, 숲을 지키는 모습에 정부가 반대하자 세계 여러 나라 곳곳에서 왕가리 마타이의 편을 들어 숲을 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억울하게 감옥에 끌려가게 되고, 다음에 재판을 통해 풀려나게 됩니다. 그런데 나오니 나라에서 카루라라는 나이로비에 남아 있는 마지막 숲을 파괴하려 하자 다시 왕가리 마타이는 그린벨트 운동을 시작합니다. 그러자 왕가리 마타이가 머리부상을 당하자 여러 세계 곳곳의 나라가 숲을 살려 내라라고 나라의 대통령에게 반박이 왔습니다. 그래서 다시 숲을 이뤄내게 되고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나무를 계속 심었고, 2011971년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녀는 끝까지 자연을 소중히 생각하였고,‘자신의 시신을 담을 관을 위해 나무가 베어져서는 안 된다, 화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왕가리의 별명은 마마미티라고 하는 대요. 그 뜻은 케냐말로 나무들의 어머니라는 뜻입니다. 그녀는 나무심기를 동력해 케냐와 아프리카에 3000만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러므로 왕가이 마타이가 나무들의 어머니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 자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일회용품을 많이 쓰지 말자고 깊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왕가리마타이가 이렇게 노력했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나무를 마구 마구 훼손하는 것이 왕가이 마타이를 괴롭힌 정부와 같은 것 밖에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다시 왕가리 마타이가 우리 지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자연을 살려낸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꿈은 선생님입니다. 제가 커서 왕가리 마타이 선생님을 아이들에게 알려 줄 것입니다. 왕가리 마타이가 아직까지 살아 있었다면 저도 그 뜻을 깊게 알고 45일 식목일 때 조그마한 묘목을 사 심었을 것입니다. 저는 왕가리 마타이가 있어 우리 숲이 보존하는 것이, 그리고 이 선생님이 없었더라면 사막이 많이 생겼을 것이고 모래 산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조금이라도 이 선생님에 대한 인지가 있었기 때문에 산이 아직 남아있지 없었더라면 우리주변의 산이 언제 사라진지 언제가 식목일인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왕가리 마타이가 어릴 때 곁에 있어준 자연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파괴했는데 우리에게 그렇게 큰 화를 한 번 안 내다니 자연이 진짜 화났을 때는 우리 사람들이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제 상상이지만요) 그래서 오늘 자연에 고마움을 한 번 알아보도록 한 거에요.

자연은 한번 훼손하면 다시는 못 돌려보내는 그런 환경인 것 같습니다. 왕가리 마타이 그녀의 손엔 늘 삽과 묘목이 들려있었습니다. 저는 그냥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녀가 30년 동안 3000만 그루를 심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적어도 1년에 300만 그루를 심어야 합니다. 주위 사람들과 같이 하여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하여도 300만 그루는 많습니다. 그러니 저도 그녀의 자연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것입니다. 왕가이 마타이를 키울 만큼 자연은 훌륭한 선생님님입니다. 그러나 자연과 친해지면 모든 것이 쉬울 것 같습니다. 인구역사상 최고의 선생님인 것 같습니다. 또한 왕가이 마타이를 보며 한 일을 잡으면 다시는 놓지 않습니다. 포기와 좌절이 머릿속에는 있었지만 그래도 밖으로는 내보이지 않고 포기하나 없는 하는 것이 참으로 배우고 싶습니다. 또한 이루어져도 그것을 더 좋게 만들려고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것을 보고 나와 우리친구들도 자신의 꿈들을 잡으면 놓지 않고 왕가이 마타이처럼 끝까지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초등 고학년부 (산문) 장려>
 

                                                어진이네 농장 일기를 읽고


                                                                                           대동초등학교 / 박나경

 

1학년 선생님께서 독서 토론에 쓸 책으로 어진이네 농장일기라는 책을 읽어 보라고 주셨다. 제목을 보니 농장에서 식물을 기르면서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 재미있어 보여 받자마자 읽어 보았다. 그 책에는 어진이라는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왔는데 어진이는 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처음에는 주말 농장에 가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일이는 어진이도 어쩔 수 없이 엄마 아빠를 따라 주말 농장에 갔다. 어진이네 가족들은 농장에 도착한 뒤 밭 이름을 정했다. 이름은 당연히 어진이네 밭이다. 어진이네 가족들은 먼저 흙을 부드럽게 했다. 그 다음으로는 심을 식물을 정했다. 다시 주말을 맞이해서 간 농장에서는 오이를 심었는데 오이는 긴 막대를 끈으로 감아 오이집을 만들어 줬는데 처음 보는 모습이라 신기했다. 어진이네 가족들은 밭을 보며 흐믓해 하고 있을 때 농장장 아저씨가 오셔서 잘못했다고 하셨다. 결국에 어진이네 밭에 모종 심는 법을 가르쳐 주셨던 경상도 아저씨랑 농장장 아저씨가 실랑이를 벌이셨다. 씨를 뿌린지 이주일이 지난 날 드디어 어진이네 밭에 싹이 났다. 그리고 어진이네 가족들은 밭에 고추, 가지, 토마토도 심었다. 5월이 되었을 때 어진이와 친구들은 주말 마다 농장을 가꾸는 일이 너무 힘들어 다 같이 도망칠 계획을 세웠다. 5월 둘째 주의 도망이 성공할지 궁금했다. 어진이의 동생이 엄마에게 일러바쳐 도망은 실패로 끝났다. 그 대신 들꽃 찾기 대회에 나갔다. 들꽃 찾기 대회에서는 풀이름을 맞히고 모르는 것은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대회였다. 내가 모르는 풀과 꽃의 이름도 자세하게 나와 있어서 책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5월 셋째 주 일요일에 어진이네 가족은 밭에 벌레를 잡기로 하였다. 곤충도감으로 어진이네 가족이 잡은 벌레들도 자세하게 알아보았다. 6월이 되자 어진이네 가족은 빈 밭을 일궈 고구마를 심기로 하였다. 어진이는 고구마를 심는 척하다가 친구들이랑 무덤가에서 축구를 하였다. 그러던 중 동네 할머니께서 어진이와 친구들을 내쫓으셨다. 친구 공을 빼앗긴 어진이와 친구들은 터덜터덜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숲에서 개구리가 나와 서로 잡겠다고 뛰어다니 던 중 밭에서 일하시던 아저씨께서 뱀이 있다고 조심하라 일러주셨다. 무서워진 아이들은 개구리 잡는 일을 포기하고 옷에 풀을 꽂고 인디언 놀이를 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니 나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월 셋째 주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농장에 가지 못했다. 6월 마지막 주에도 비가 많이 내렸는데 어진이와 어진이 아빠는 밭의 식물들이 걱정되어 밭에 가보기로 했다. 어진이네 밭에는 고추 몇 그루가 넘어져 있어서 아빠와 함께 세워 놓고 돌아왔다. 무더운 7월이 시작되었다. 7월 달에도 비가 많이 와서 셋째 주가 돼서야 농장으로 갈 수 있었다. 이 날 어진에네 가족들은 감자를 캤다. 감자를 캔 후 돼지고기와 부침개까지 만들어 배부르게 먹었다. 나는 어진이네 가족들의 모습을 보니 자신이 직접 기른 농작물을 먹는 맛이 어떤지 너무 궁금했다. 8월 셋째 주에는 밭에 채소를 다시 심기로 했다. 배추와 무를 새로 심었다. 9월에는 총각무와 시금치 씨를 뿌렸다. 두 번째 농사를 시작해야 할 시기라고 한다. 10월엔 배추를 묶어주고 무를 북돋고 11월 중순이 지났을 쯤에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서 어진이네 가족은 배추에 비닐을 덮어 주고 무는 땅 속에 묻었다. 그래야 식물들이 얼어 죽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추우면 장갑을 끼고 목도리도 두르고 다니는데 식물들도 나랑 비슷한 거 같아 친근하게 느껴졌다. 드디어 12월 첫째 주 일요일에 그동안 기른 배추를 가지고 김장을 하였다. 절여 놓은 배추를 맑은 물에 씻어 여러 양념을 넣어 김장 김치를 만들었다. 양념도 그동안 어진이네 밭에서 가꾼 고추, 마늘 등을 사용했다. 고생하셔 얻은 식물들을 이용해서 김장을 하니 더 맛있게 느껴졌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농장이 끝나고 겨울방학식 때 어진이는 선생님이 특별히 만들어 주시는 농부에 마음 상을 받았다. 선생님도 어진이가 농장에서 한 일들을 칭찬해 주고 싶으셨나 보다. 처음에는 어진이가 주말농장에 가는 것을 싫어했지만 점점 식물들을 키우는데 보람을 느끼고 열심히 키우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기회가 된다면 어진이처럼 가족들과 함께 나경이네 농장을 만들고 싶다. 매 주 농장에 가서 식물들을 가꾸는 일이 힘들고 어려울 거 같지만 재미도 있을 거 같고 식물들이 자라는 모습을 볼 때 마다 뿌듯하기도 할 거 같다. 어진이처럼 나도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일이든 꾸준하게 해 나가는 모습을 가져야겠다.

 

 

<중학생부 (운문) 최우수상>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무학중학교 / 서형우

 

 

살바도르 달리!

당신이 잠에서 깨었을 때

당신이 아침식사를 마쳤을 때

당신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고민할 때

 

살바도르 달리!

당신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당신이 갈라와 사랑을 나눌 때

당신이 점심식사를 마쳤을 때

 

살바도르 달리!

당신이 저녁을 거를 때

당신이 베개에 기대었을 때

당신이 생을 마감하기 직전이었을 때

 

당신이 궁금합니다.

당신이 정말 궁금합니다.

 

당신의 잠버릇은 무엇인가?

당신은 어떤 색다른 취미가 있는가?

당신의 모든 것이 궁금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제 초상화 한 점 그려 주시겠습니까?

 

 

<중학생부 (운문) 우수상>

 

바람이 부는 날이면

 

                                      무학중학교 / 황준수

 

 

붉은 지붕 2층집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2층집에서

 

바람이 부는 날

그런 날이면

정겨운 마을이

모두 눈에 들어오는

옥상에 흔들의자 한 개

태양아래에서 바람과 함께

시간이 바람과 함께 흘러간다

산책하시는 할머니도

나비를 잡는 고양이도

 

붉은 지붕 2층집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2층집에서

 

 

 

<중학생부 (운문) 우수상>

 

군함도의 진실


                                       삼성현중 / 김보민

 

배고파 주린 배는 설움이 되고

눅눅한 찌든 냄새는 고통이 되어

현실인 듯 꿈속 같은 아득한 정신은

머나먼 고향집 안마당으로 들어선다.

 

 

단발머리 못난 여동생의 미소와

가마솥 너머 구수한 어머니 냄새는 희미해지고

시커먼 석탄 옷을 입은 무거운 몸뚱이는

오늘도 철썩이는 파도로 채찍을 맞는다.

 

 

슬프고 어두운 현실은 과거에 묻히고

땀내 절은 통한의 섬 하시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드레스를 입고

오늘도 거짓얼굴로 맑게 웃고 있다.

 

 

<중학생부 (운문) 장려상>

 

 

                                 무학중학교 / 김주형

 

 

한 발짝 한 발짝 문 앞으로 다가간다

우뚝 서 있는 문 뒤에는 너가 기다리고 있겠지

하나의 기대감과 또 하나의 설렘은

니가 있어서

내 웃음은 열쇠다

사람마다 문을 먹는 열쇠가 모두 다르다

화나 있는 열쇠 두려운 열쇠 행복한 열쇠

수없이 많은 열쇠 중에도

나는 네가 있어서 열쇠가 참 아름답다

너는 가족이자

친구이자

내 열쇠이다

 

 

<중학생부 (운문) 장려상>

 

마음이라는 것은

 

                               자인여중 / 조현진

 

마음이라는 것은

소중히 다뤄야하는 것이다

 

밖에 잠시만 내놔도

금새 상하는 우유같이

 

밖에 잠시만 내놔도

빨리 썩어버리는 과일같이

 

밖에 잠시만 내놔도

금방 녹아버리는 얼음같이

 

마음도 그렇다

우유처럼 과일처럼 얼음처럼

 

우리의 마음도 그렇다

쉽게 상하고 썩고 녹아버린다

 

우리의 마음도 밖에 잠시만 내놔도

쉽게 상하고 썩고 녹아버린다

 

상하지 않도록 썩지 않도록 녹지 않도록

소중히 다뤄야한다

 

 

<중학생부 (운문) 장려상>

 

푸 른 바 다

 

                          자인여중 / 안나경

 

 

바다는 갈매기 노래로

우리들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산보다 더 푸르른 바다

바다는 푸르른 나의 꿈이다

 

 

하얗게 밀려온 파도는

바닷속 이야기를 전해 주는 우체부

 

 

바다는 푸른 나의 꿈이 헤엄치는

넓고 넓은 우리 엄마 마음이다

 

 

<중학생부 (산문) 최우수>

 

                                             꿈꾸는 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


                                                                                                삼성현중 / 이지안

 

 

어린 왕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서둘러 급행열차에 오르지만 정작 자신들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는 모르고 있어요. 그래서 늘 분주하게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 뿐이에요.”

어린 왕자가 덧붙여 말했다.

아무 소용없는 일인데 말이에요.”

더 이상 낭만이 남아 있지 않은 행성의 하늘을 바라본다. 별이 빼곡히 차 있던 그 밤은 이제 없다. 별밤이 사라졌다. 사람들에게 존재하던, 별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을 수 있는 낭만과 여유도 사라져버렸다. 나는 별도, 낭만도, 여유도 사라져 가는 세상에서 몽상가로 남아있다.

꿈꾸는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옛날 난쟁이 가족처럼 지옥을 살며 천국을 꿈꾸지 않는다. 이제 난쟁이도 지옥을 살며 지옥을 꿈꾼다. 난쟁이에게는 꿈을 꿀 기력도 없다. 우리의 목표는 평범해지는 것이다. 모두, 행복하지 않을지라도 오늘 하루를 무사히 버틸 수 있길 기도한다. 사람들은 행선지를 알지 못한 채 급행열차에 오르고, 어둠 속에서 거짓된 빛을 좇으며 발악한다. 꿈을 버리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 싫지만, 살아보려 발악하는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다. 그들은 스스로 빛과 꿈을 전부평범한 삶에 내던졌다. 나는 감히 그들의 선택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그 과정에 사회의 압박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그래서 더 자꾸만 마음이 간다.

어렸을 때는 세상이 환상과 낭만, 웃음과 여유로 가득 찬 곳인 줄로만 알았다. 그때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내가 슈퍼맨을 꿈꾸면 슈퍼맨이 되고, 공주가 되길 꿈꾸면 공주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무엇도 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나는 현실이 항상 YES만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실을 깨닫자, 근거 없는 확신과 아무 이유 없이도 행복을 외치던 어린 나는 알지 못하던 불안을 알게 되었다. 하늘처럼 넓었던 세상이 개미집처럼 작고 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세상이 좁고 작게 느껴진다 해도, 불안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우주의 먼지와도 같은 세상에서 한 자리 차지하지 못할까 두려움에 떨었다. 용기를 잃어가는 순간, 나는 어른이 됐다. 꿈을 잃어버리는 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면 나는 정말 어른이 되고 있었다. 낭만도 꿈도 잃은 어른들을 보며 나는 절대 꿈을 잃지 말아야지 했던 게 언제인가. 나는 내가 그토록 되고 싶지 않아 했던 어른이 돼가고 있었다.

내가 그 사실을 깨달은 건 16살 봄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반, 새로운 선생님과 새로운 수업을 했다. 수학 첫 시간, 선생님은 우리에게 수학 노트 첫 페이지에 자신의 꿈을 써오라 하셨다. 아직 미래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써 내려가며 어렴풋이 꿈을 그렸다. 새 학기의 시간은 쉴 새 없이 빠르게 흘러갔고, 나는 처음으로 다른 이의 입으로 타인의 꿈을 들었다. 첫 번째로 꿈을 발표한 사람은 전교 1등이었다. 전교 1등의 꿈은 가상현실과 관련된 것이었다. 크고 원대하고 휘황찬란했던, 정말 꿈만 같은 꿈 얘기가 끝나고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무엇보다 나는 마지막 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마지막 목표는 위인전에 등재되는 것이라던 전교 1등의 말, 그 말은 좁디좁은 내 세상에 큰 울림을 주었다. 나는 그날 내가 나도 모르는 새에 어른이 되고 있었음을 깨달았고, 내가 얼마나 작은 꿈을 꾸고 있었는지 알았다. 꿈의 크기와 상관없이 내가 얼마나 지레 겁먹고 내 미래를 꿈꿨던 건지 깨달았다. 나는 나의 행복을 너무 작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괜히 억울했다. ‘내가 왜 이렇게 억누르며 살아가고 있을까, 정말 인생을 즐기며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며 살아가면 안 될까?’여러 가지 질문이 내 머릿속을 괴롭혔다. 불안과 두려움을 넘어 억울함과 분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불안이 울분이 되고, 울분이 넘쳐 정당한 무언가를 바라게 되는 그 순간의 감정을 신뢰한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그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 모든 게 바뀌기 시작한다. 그날 나는 마음으로 사막의 우물을 찾았다.

그러나 때로는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아도, 현실이 달라지지 않을 때도 있다. 이 나라의 교육 제도와 이 사회의 고정관념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도 나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다. 그럴 때면 내 마음은 깊은 무력감에 잠식해버린다. 말하고 싶은데, 들어주는 이가 없으니 허공에 더는 들리지 않는 아우성만 외쳐댄다.

들어주는 이 하나 없는 이 세상에서 나는 몽상가로 살기로 했다. 별이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마음으로 바라보고, 낭만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그런 삶을 살기로 했다. 이건 정말 무모한 도전이다. 한낱 어린 마음의 치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마음을 믿기로 했다. 나는 더 이상 난쟁이는 꿈꿀 자격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 누구든 자유롭게 꿈꿀 수 있고, 인간으로서 대우받는 사회를 원한다. 돈 많은 이들도, 돈 없는 이들도 저마다의 이유로 꿈을 접어버리는 사회, 급진하는 사람 속에 남은 것은 자본주의의 씁쓸함뿐이다.

그동안 우리는 열심히도 달려왔다. 쉴 틈도 없이 앞만을 바라봤고, 어둠 속에 물들어 앞이 보이지 않아도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아직도 작고 약한 사람의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작고 약한 사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40년 전 광주에서 울부짖던 그 많은 영혼과 80년 전 성노예로 쓰이던 죄 없는 여성들, 남과 북으로 나뉘어 전쟁하던 시절 빨치산으로 몰려 학살당한 양민들, 저 착하디착하고 깨끗한 동심들을 좀 더 상하기 전에 보호하라던 전태일 열사,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을 뿐인 삼성 노동자들과 아직도 존재하는 달동네의 사람들. 그들은 지금도 존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원하는 걸 얻지 못했다. 진심 어린 사과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도, 노동권의 보장도, 진실 규명도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어진 게 없다. 그들은 비참한 현실을 살았다. 하지만 그들의 영향은 절대 미미하지 않았다. 그들은 누구보다 강했다.

우리는 과거에 있었고, 현재에 존재하는 투쟁하는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염원을 인지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한다, 난쟁이도 학살도 참사도. 서둘러 급행열차에 오를지라도 우리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이 건조한 사회에서 꿈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잘살고 있다. 자신을 지워야 살 수 있는 사회에서 자신을 지우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나는 꿈을 잃으면, 내가 나 자신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웠다. 꿈꾸는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지만, 나는 오늘도 살아남기 위해 꿈꾼다. 오늘도 나는 보이지 않는 별을 바라본다.

 

 

 

<중학생부 (산문) 우수>

 

                                                  우울함과 친구 되기

 

                                                                                          삼성현중학교 / 서은형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의 아픔을 조금씩 안고 살아간다. 이 세상에 슬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사람들은 조금씩 크기가 다른 슬픔의 조각들을 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 슬픔의 조각들이 분해되지 않고 나의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버리면 마음은 다시 쌓아 올리기 힘든 만큼 무너져 내리고 마는 것이다.

나도 내가 왜 이런지 아무리 고민해도 몰랐다. 중학교 들어서면서 주변은 갑자기 나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였다. 나는 여전히 아이인데 중학생이 된 것 만으로 나를 어른처럼 대하고 많은 지식과 예의, 규칙 등을 요구하였다. 공부도 어려워지고 교칙도 엄격해지고 성숙한 행동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저 하는 일마다 의욕이라곤 없는 무기력한 몸뚱이로 하루일과를 꾸역꾸역 소화해 내는 것이 전부인, 무의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중3이 되고부터 지치기 시작했다. 조금 기분이 나아지는가 싶다가도 갑자기 한없이 외롭고 우울해지는 나의 모습에 오히려 내가 더 놀랄 정도였다.

이 세상에는 나 하나밖에 없고 나는 커다란 유성이 날아와 움푹 파인 구덩이에 혼자 갇혀진 느낌이었다. 텔레비전을 통해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아파서 힘든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너무 힘들어서 구덩이 밖 사람들을 도저히 보지 못했었다.

오랜 고민 끝에 나를 알아가는 것이 가장 빠른 해답임을 깨닫게 되었고 나를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었는데, 나는 나의 우울한 마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항상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이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속은 우울한데 계속 밝은 척을 하다 보니 결국 나의 마음이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나는 나 그대로를 바라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나의 우울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였고, 그러자 신기하게도 가슴을 답답하게 죄던 모든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를 옥죄고 사람들에게 박탈감과 상실감을 주는 것에는 아마 SNS가 큰 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SNS를 보면 이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우울한 시간도 있고, 행복한 시간도 있다. SNS속 사진들은 하루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만을 SNS에 올린 것뿐이며 사람들이 나만 빼고 세상의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여...’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일과가 마치고 집에 가면 계속 폰만 만지작거리고 SNS만 많이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SNS속 세상이 전부인 것 같았다.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고 사람들은 모두 그늘이라고는 한 뼘도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다.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모두들 자랑만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세상 누구나 슬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고, 주변인들이 모르는 큰 불행도 만난다. 그러나 그걸 SNS에 밝히지 않을 뿐이다. SNS속 사람들도 나와 같이 세상을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고 그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나는 더 이상 SNS를 하지 않았다. 남들의 과장된 행복을 마주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 대신 나 자신에게 집중했다. 친구와 단둘이 여행도 갔다 오고 맘껏 돌아다니며 수다도 떨었다. 내가 좋아하던 음악을 들으며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부족한 그대로 나의 생활과 생각을 일기로 남기기도 했고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나는 나 그대로의 나로 가장 나답고, 행복하다. 무작정 행복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보다는 우울한 기분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조금씩 친해지며 내 마음속의 우울함과 친구가 되어 보는 것이다. 밤하늘의 별들도 밤이 깊어질수록 빛을 내는 것처럼 내 마음 속의 어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 나는 가장 빛나고 나다워질 것이다.

 

 

<중학생부 (산문) 우수>

 

                                                            빵빵

 

                                                                                             무학중학교 / 강신욱

 

어느 도심 차의 경적 소리가 도시의 공기를 타고 퍼진다. 어떤 사람이 찻길 옆의 인도를 홀로 주변과의 교류를 완전히 단절한 채로 걸어가고 있다. 도심의 공기는 회색 빛깔의 독안개로 덮여있다. 사람은 그 안개에 그대로 노출된 채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긴다.

도시의 공장에서는 물건을 만들어 내고 있다. 물건뿐만이 아니다. 독안개도 함께 만들어진다. 독안개는 장대 같이 높이 솟은 공장의 굴뚝에서 조용히 퍼져 하늘의 공기와 동화되어 암살의 기회를 노린다.

독안개는 앞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찻길의 무수히 많은 차에서도 나오고 있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것처럼 차의 밑도 어둡다.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바로 옆쪽의 찻길에서 암살자가 자신들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계속 걸어간다. 암살자는 그들의 목구멍, 눈구멍, 그리고 피부의 구멍으로 조용히 잠입한다. 암살자들이 점점 사람의 몸속에 모인다. 그들은 사람의 온몸을 찔러댄다. 몇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고통은 영원히 계속된다. 고통에 시달리다가 결국 쓰러져 버릴 때 까지.

암살자는 목표를 정하지 않는다. 그냥 닥치는 대로 학살한다. 생물, 무생물을 가리지 않는다. 앞에 있는 모든 것에 칼질을 해댄다.

암살자는 홀로 걷고 있는 사람에게도 침투했다. 그 사람의 몸에 잔혹하게 칼질을 한다.

사람은 기침을 한다. 하지만 암살자에게는 어떤 방어 체계도 소용없다. 몸에 칼을 박고 버티기 때문이다. 기침은 점점 심해진다. 몸의 모든 방어 체계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기침, 재채기, 가래, 콧물 등등,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암살자를 방어하지 못한다. 사람의 몸은 계속 공격 받는다.

암살자는 계속 들어온다. 공격은 점점 거세진다. 사람은 고통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고통은 점점 더 심해진다. 그러다가 고통이 한계를 넘어선다. 몸 곳곳에는 심각한 상처들이 나 있다. 사람은 계속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 쓰러진다.

사람의 얼굴 위로는 암살자에게 공격받은 가로수의 시들어 버린 잎이 힘없이 떨어져 내린다.

지금도 암살자는 만들어지고 있다. 그들은 도시뿐만 아니라 촌락, 나라 전체 전 세계로까지 퍼져나갈 것이다.

 

 

<중학생부 (산문) 장려>

 

                                                우리 할머니는 촌에 멋쟁이

 

                                                                                                자인여중 / 오명성

 

그래, 그래 밥 많이 먹고 공부 열심히 하고 엄마, 아빠 말 잘 들어래이~”

항상 촌에 계신 할머니와 한 번씩 전화를 할 때마다 마무리로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나에게만큼은 멋쟁이 같으신 86살이라는 연세를 지닌 친할머니가 계신다. 하지만 요새 들어 왠지 모르겠지만 할머니랑 서먹해진 거 같아 슬프다. 나는 어느새 훌쩍 커서 1년 후면 고1이 된다. 때타지 않아 맑고 순수한 우유 같았던 유치원생이 그립다. 그때는 할머니랑 어색하지 않았다. 우리 집에 오시면 그 다음날 가시면 좋겠다라는 말을 할 만큼 친했었다. 그런데 한참 내가 학교에서의 문제가 많았고 그런 고민들을 다 해결하고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할머니는 86세라는 어느새 90을 바라보고 있는 연세가 되어 있으셨다. 고운 얼굴이 어느샌가 핼쑥해지시고 머리는 더 숱이 없어지실 정도로 나보다도 가느려 지셔서 내가 꼭 옆에 붙어서 지켜드려야만 되는 존재로 바뀌셨다. 분명 나의 어릴 적의 기억에 할머니는 나를 업어주시고, 우리 집 마당의 잡초도 다 뽑고 남을 만큼 힘이 많으셨다. 옆집 슈퍼에 계신 할머니랑 이야기를 하실 때 보면 우리 할머니가 슈퍼 할머니보다 나이가 많으신데도 불구하고 더 곱다고 느꼈었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이 돼서야 철이 더 없었을 때 할머니께 모질게 굴고 심한 말을 했던 게 많이 후회스럽고 죄송하다. 예전에 부모님께서 어머니의 고향인 중국에 가셨을 때 할머니께서 초2인 나와 중2인 언니를 돌봐주러 우리집에 오셔서 밥도 차려주시고 마당에 잡초도 뽑아주시고 빨래도 해주셨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무엇이 불만이었는지 중국에 있는 엄마한테 전화를 하여 할머니가 우리 집에 계신 것이 정말 불편하고 짜증이 난다고 집에 얼른 오라며 재촉했었다. 할머니가 바로 옆방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머니에게 상처를 주는 짓을 하였다. 그 일이 없었다면 지금의 회사를 다니는 언니보다도 나를 더 예뻐해 주시고 5살 때의 나와 할머니처럼 더 잘 지낼 수가 있지 않았을까라는 후회가 많이 든다. 분명 그 일이 있기 전까진 할머니는 나를 더 귀여워하시고 예뻐해 주셨는데 지금은 언니를 더 좋아하신다. 내가 할머니를 미워했던 것에 대해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거 같다.

이렇게 까지 후회를 하는데 는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할머니께서 작년에 교통사고를 당하셨는데 그 후 치매가 생기셨다. 처음에 할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다는 소식을 엄마한테 전해 듣고 그때는 매우 충격을 받고 눈물도 났다. 치매 증상이 있으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도 그런 거는 드라마에서나 보고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인지 실감하지 못했는데 잘못하다간 할머니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걱정과 후회가 커졌다. 치매에 걸리시기 전에 내가 더 전화도 자주하고 주말에 할머니, 할아버지랑 사랑방에서 같이 자고 더 옆에 있어 드릴 걸이라는 후회감이 밀려들었다.

무엇보다도 내게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불과 며칠 전 일이었다. 그날따라 집에 일찍 오고 싶어 딴 길로 안 새고 집으로 바로 왔다. 여기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할머니께서 배에 물이 차셔서 물을 빼고 왔다는 엄마의 말씀을 들었다. 엄마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고 아버지께서도 평소 때보다 안색이 안 좋으신 것 같았다. 나도 눈물이 나는 걸 애써 참고 밥을 꾸역꾸역 삼켰다. 물론 검사가 나와야 알겠지만 암일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밥을 먹고 누워있으니 할머니께서 병원을 갔다가 우리집 옆집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른다기에 가보니 할머니께서 나를 보셔서 조금 정신이 드시는지 할머니가 내 손을 꼭 잡아 주셨다. 항상 염색을 하셔서 흰머리가 잘 안보였던 머리에는 약간의 갈색 끼만 도는 흰머리만 남아 있었다. 그런 할머니를 보니 너무 가슴이 찡해서 눈물이 흐를 뻔했는데 할머니 앞에서는 울면 안 될 것 같아 눈물을 말리고 집으로 먼저 걸어 왔다.

항상 할머니라든가 어머니라는 존재는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나오는 것 같다. 어머니, 아버지도 많이 심란하실 것 같아 나까지 펑펑 울면 더 마음이 아프실 것이라 생각하고 울지 않았는데 그 타이밍에 친구가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냐고, 울었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설명을 해주니 자기도 할머니가 요양원에 계셔서 3, 4년은 못 봤는데 이해가 간다고 하였다. 할머니한테 전화도 자주하고 사랑한다고 많이 해드리고 자주 찾아가라며 말해주었다. 친구의 공감 어린 말을 듣고 나는 더 복받쳐서 많이 울었다.

이렇게 많이 울었으니 할머니께는 웃는 모습만 보여드릴 것이다. 그리고 사랑한다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내뱉기가 너무 어렵지만 더 늦기 전에 할머니께 사랑한다고 표현을 많이 하고 카네이션도 달아 드리고 싶다. 남에게는 우리 할머니께서 어떻게 보일지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옛날에도 멋지셨고 지금도 나에게만큼은 이렇게 아픔을 꿋꿋이 이겨나가고 있는 모습이 너무 멋있기 때문에 나에게 우리 할머니는 멋쟁이시다

 

<중학생부 (산문) 장려>

 

                                                         행복한 꿈

                                                                                        삼성현중학교 / 천우림

 

쌀쌀하지만 벚꽃이 하나 둘씩 피어나는 3월이었다. 아직 1학기 초라서 그런지 이유 없는 어색함이 교실 안을 빈틈없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3학년이 되니 왠지 모르는 긴장감과 가슴 위에 철근을 올려놓은 것처럼 답답함이 느껴졌다. 2학년 때까지는 그렇게까지 긴장되고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가 없었지만 지금은 좀 독해져야하고 경쟁해야한다는 생각이 컸다.

며칠 후 수학선생님께서 어려운 숙제를 내주셨다. 문제를 푸는 것도 아니고 풀이를 적거나 증명하는 것도 아닌 내 꿈에 대해서 공책 한쪽을 빡빡하게 채워오는 숙제였다. 공책을 펼치자마자 앞이 막막했다. 어릴 적에는 만화를 보고 제빵사도 되고 싶었고 마술사랑 가수도 되고 싶다는 정말 순수하고 행복한 꿈도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비웃겠지만 늘 내 옆에서 지켜봐주고 도와주는 수호천사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도 잘 모르겠고 행복을 느끼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왜 나는 행복을 느끼지 못할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일까 물질적인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결국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던 공무원과 그에 대한 설명만 적고 공책을 덮어버렸다. 제발 발표시간에 나는 안 걸리길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발표시간이 왔다. 순간 다른 친구들 이름이 호명되자 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딱딱하게 굳었던 허리가 스르륵 힘이 풀렸다. 우리 학년에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친구가 발표를 하는데 꿈이 너무나도 명확하고 빈틈없이 내용을 이어나갔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말이 있지만 너무 부러웠다. 내 꿈에 대해 발표하는 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신감과 꿈에 대한 명확성, 그런 내용을 이어나갈 수 있는 수준 높은 생각들 모든 게 다 부러웠다.

나는 언제쯤 저런 꿈이 생길까 나도 나중에 잘 살 수 있을까차마 입 밖으로는 나오는 않는 말만 머릿속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한숨을 푹 쉬고 몇 분후 수업종이 쳤다. 너무 서러웠다.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꿈꾸고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는 중학생이어야 하는데 마음껏 꿈꾸지도 못하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치열한 경쟁만을 추구하는 현실이 돼버렸다. 나는 이런 현실이 싫고 행복한 세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방학 때는 누구나 놀고 싶고 쉬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하지만 우리 학원 선생님께서는 늘 말씀 하신다.

지금 다른 친구들 논다고 해서 학원 많이 빠지지 말고 흔들리지 마라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방학 때는 당연히 놀고 싶은 마음이 큰데 놀지도 못하고 2학기가 되면 3학년은 중간고사랑 기말고사뿐만 아니라 고입시험까지 시험의 연속인데 지금 안 놀면 대체 언제 놀고 쉬라는 건지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너희들은 인생의 10분의 1도 안 왔어, 지금 열심히 해놓으면 나중에 대학이 바뀔 수도 있고 직업이 바뀔 수도 있어

그래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았다.

지금 하는 거에 열심히 하고 할 때 하고 놀 때 놀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후로 학원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보충도 열심히 나갔다.

요즘 뉴스에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많이 언급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오면 버스나 택시도 무인화 될 것이고 모든 매체가 연결이 되는 상상을 초월 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그럼 나는 나중에 뭐가 될까 뭘 해야 행복할까?

나는 누군가를 상담해주거나 조언해주는 것을 좋아하고 그에 대한 뿌듯함도 느낀다. 사회복지사 또는 심리상담가 같은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물론 이런 직업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할지 몰라도 나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직업을 가지고 싶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과 세상의 모든 게 다 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폴레옹의 명언 중 모든 이에게 유명한 명언이 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불가능이란 없다. 나도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할 수 있고 언젠가 성공해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그때는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우울하고 아쉽겠지만 나중에는 그게 모두 경험이고 추억이자 다음에 더 잘할 수 있는 튼튼한 뼈대가 될 것이다.

학원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우림이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저는 나중에 커서 심리상담가가 되고 싶어요.”

정말 오랜만에 이런 행복한 꿈이 생긴 거 같다. 주위에 친구들 중에서도 이런 고민을 하는 친구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꿈이라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노력 했으면 좋겠다. 어두운 현실을 밝혀주는 사람은 우리다. 우리가 나중에 이 세상을 또 바꾸고 뒤집을 것이다. 물론 행복은 쉽게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언젠간 행복은 찾아올 것이다.

나는 믿는다. 우리는 어두운 현실을 하나 둘씩 밝혀 줄 주인공이고 지금은 행복한 꿈을 꾸는 중학생이니깐......


 

<중학생부 (산문) 장려>

 

                                                   나에게 가족이란

 

                                                                                            무학중학교 / 김송원

 

나는 태어날 때부터 많은 아픔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 소화기관의 문제와 양쪽 손가락에도 문제가 있었다.

나는 태어난 지 3일째 되던 날에 양쪽 손에 중간손가락이 굽어서 손바닥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것을 발견하고 엄마와 아빠는 주변에 큰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내 손가락을 수술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돌아다녔다. 하지만 어떤 의사가 일주일 된 아기를 수술시키려 하겠는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손가락을 그 상태로 지내다가 약 돌때쯤이었다고 한다.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할 때, 내가 넘어지면 손가락이 아파서 그런지 머리를 박으며 넘어지곤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더 이상은 안 된다며 엄마는 수소문 끝에 동산병원에 아이수술 전문의 한명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난 지금 잘 살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족에게 정말 고맙다. 다른 의사들은 5,6학년 때 하라고 지금은 어렵다고 하지만 나의 수술을 흔쾌히 해주었던 그 의사선생님이 고맙다. 이 수술을 돌 때 하는 게 맞는 것은 얼마 전에 밝혀졌다. 하지만 엄마는 어떻게 알았을까? 이게 자식의 아픔을 어떻게든 해결해줄려는 우리의 부모님들의 모습이고 나는 아름다운 가족의 모습인 것 같다.

위 수술을 하기 전 내가 태어난 지 4개월쯤 되었다. 난 평소와 다르게 음식만 먹으면 토를 하고 배가 아프기 시작 했다. 이러한 증세로 병원에 가니 병원에서는 항상 배에 가스가 찼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절대로 그 약을 먹이지 않고 병원에 가서 x-ray CT 촬영을 해달라고 한 결과 충격적인 결과가 있었다. 나의 쓸개가 터져서 간까지 세균이 전염되고 있었다. 그 수술을 끝내고 나서 엄마와 아빠 그리고 형, 누나 모두 많이 걱정을 했다고 한다. 그 후에 의사들이 이것을 보통 발견 못하다가 7살 때쯤에 간암으로 죽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발견했냐고 잘했다고 했다고 한다. 난 두 개의 큰 수술이 끝난 후에 아빠와 함께 여행을 많이 다녔다. 약 일곱 살 때였다. 난 아빠랑 여행을 출발하기 전 교회에 먼저 들르고 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지는 바로 황악산이었다. 산행을 잘 마치고 정상에서 점심을 먹은 후 하산하는 길에 아빠가 여긴 위험하니 조심해라고 말한 후 뒤돌아보는 순간 나는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꿈인 줄 알았다. 사고가 이렇게 일어나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아빠는 당황하지 않고 안전하게 둘러 내려와 다른 시민분의 도움과 함께 나를 구하였다. 나는 아빠는 대단한 사람이란 것을 새삼 느꼈고,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도 느꼈다.

그 후 설악산 정상에서도 비오는 날 미끄러져 몇 백 미터 절벽에서 떨어질 뻔 했지만 아빠의 빠른 대처로 난 살게 되었다. 난 이런 무서웠던 어린 시절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알았다. 지금 조금 불만족스러운 가족이라도 모든 사람들이 감사하면서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 가는 행복한 사회가 되기를 기원하고 우리 가정은 좋은 미래를 기원한다.

 

 

<고등학생부 (운문) 최우수>

 

꿈으로 가는 길


                                                                경산여자상업고등학교 / 최하은



처음 시작은 발목이었습니다.

계속 가니 어느 순간에 허리까지 올라 왔더군요

계속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 되었습니다

내 앞에 길 없이 이어진 늪지대 이곳을 계속 걸을지 다른 길을 갈지고민이 됩니다

다른 길을 간다면 편하게 갈 수 있지만 즐겁지 않습니다

이곳을 간다면 힘들지만나름 즐겁게 갈 수도 있습니다

내 앞에 이어진 끝없는 늪지대늪지대 물이 어깨까지 올라온다고 해도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어깨도 모자라서 머리끝까지올라오지는 않을까과연 계속가면 길이 있을까

늪지대 넘어는 내가 바라는 길이 있을까 걱정이 되고 무섭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 늪지대한 번 걸어보고 싶습니다정말 가도 괜찮을까요?

 

 

<고등학생부 (운문) 우수>

 

나에게 전하는 말

                 
                                                     하양여자고등학교 / 박소영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아무도 내게 손 내밀어 주지 않았어.

그래서 더 힘들었지.

남들 웃고 있을 때

나는 울고

남들 신나게 놀고 있을 때

나는 멍하니 앉아 있었어.

나는 왜 아프지 하면서 말이야.

남들과는 조금 다른 몸이 뭐가 잘못이라고 따돌리는지

아픈 게 죄도 아닌데 말이야

항상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 맞춰

나 자신을 감추고,

세상 사람들의 비위에 맞춰

나 자신을 바꾸고,

세상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하면서

내 자신이 아닌 것처럼 살아왔는데

이제부턴 나답게 살려고 마음먹었어.

내 얼굴은 항상 여기에 머물고 있어

 

 

 

<고등학생부 (운문) 우수>

 

그네

?
                                                   하양여고 / 손승연

?

 

?까마득한 하늘을 마주했을 때도

?너는 늘 그 자리에 있었지.

?

?고사리 같던 내 손은 벌써 주름졌고

?아이같이 떠오르던 내 마음은

?어느새 투박해졌지만

?너는 늘 위로했지.

?삐걱, 삐걱, 삐이-걱 거리면서.

?

?다시 그 길을 건널 수 있을지

?올라갈 수 있을지 고민할 때

?너는 늘 두둥실 떠오르게 했지.

?삐걱, 삐걱, 삐이-걱 띄우면서.

?

?까마득한 하늘을 마주한 오늘.

?여전히 너는 나에게 그 높이에 있어주는구나.

 

 

<고등학생부 (운문) 장려>

 

SKY

 

                                                  하양여자고등학교 / 채지현

 

서연고라는 이름을 가진

하늘을 보고 걸어가는

많은 이들 속에서

오늘도 나는 힘겨운 발걸음으로

그들의 뒤를 쫒아간다.

 

누군가 나에게 하늘이 아닌 우주를 보라고

너는 하나의 소중한 꽃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다.

 

하늘을 보는 것도 벅차

우주를 볼 시간이 없다고

하늘을 보지 않는다면

소중한 꽃도 그렇게 외면당하고 말거라고

 

그는 나에게 말하겠지

모든 꽃이 하늘만 볼 수는 없다고

어떤 꽃은 바다를 보고

어떤 꽃은 땅을 보고

또 어떤 꽃은 다른 꽃을 보기에

이 세상이 존재하는 거라고

 

그렇게 생겨나는 또 하나의 꽃봉오리.

 

 

<고등학생부 (운문) 장려>

 

네가 떠난 고향

 

                                                        경산여자상업고등학교 / 김소영

 

난 네가 떠난 이곳에서

난 너를 찾아 헤매고 있어

너와의 추억을 되돌아보며

떠나간 너를 기다려

 

너와 함께 놀던 마을을 걸으며

벤치에 앉아 즐겁게 놀던

그 시절의 우리를 떠올리곤

또 다시 네가 그리워져

떠나간 너를 기다려

 

너와 함께 갔던 남천에서

함께 보았던 밤하늘이

나를 보며 미소를 지으면

또 다시 네가 그리워져

떠나간 너를 기다려

 

네가 떠난 고향에 남은 너의 흔적

그 흔적들을 보며

내 마음속에 뿌연 안개가

난 그 안개 속을 뚫고

너를 찾아 여행을 떠나려 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너를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너를 찾아 여행을 떠나려 해

 

 

 

 

<고등학생부 (운문) 장려>

 

내일을 향해

 

                                                         경산여자상업고등학교 / 이수연

 

태평양 같은 바다

그 한가운데

외롭게 말을 하는 소년

 

소년은 나에게

나지막이 다가와

속삭이네

 

외로웠던 그 소년은

수면 위를 향해

높이 날아오르네

 

그녀는 소년을

엄마의 마음처럼

살포시 감싸 안네

 

외딴 섬처럼 혼자인 소년

그녀로 인해

외로움조차 잊게 하네

 

소년은 내일을 향해

내일에 닿을 때까지

소리를 전하려고 하네

 

그 누구보다 소년은

밝게 빛날 수 있도록

내일을 준비하며 기다리네

 

 

 

<고등학생부 (산문) 최우수>

 

                                                               사진

 

                                                                                          사동고등학교 / 김수지

 

 

학생입니다.”

빗물이 묻은 교통카드를 손에 쥔 채 늘 앉는 자리에 앉았다. 금요일 11, 집으로 향하는 막차는 한적함에 쓸쓸하며, 피곤과 무력함이 밀려온다. 지갑에 교통카드를 넣으며 사진에게 눈길을 주었다. 제법 오는 비에 지갑까지 빗물이 스몄는지 사진 귀퉁이가 힘을 잃고 나를 바라본다. 사진 속에는 그리움 짙은 가을의 수목원을 배경으로 한 채 아빠와 내가 환하게 웃고 있다.

한참을 사진만 바라보다 이윽고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창가에는 할 말 많은 물방울들이 대롱대롱 맺혀 흘러내리기를 반복한다. 흐르는 빗물을 따라 내 시선을 옮기다 창가 중턱쯤에 버티고 서서 꿈쩍하지 않는 물방울이 보인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그 물방울을 주시하던 중 덜컹거리는 버스 때문에 물방울을 놓치고 말았다. 비포장도로를 지나는 것을 보니 아직 집은 멀었나보다. 한참을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맞기고 창가에 귀를 기울이며 눈을 감았다.

 

수민아, 다 왔다. 내리자.”

 

아빠 차를 타고 덜컹거리는 길을 따라 집에서 2시간 쯤 달리면 이곳이 나온다. 늘 푸르고 마음이 따듯해지는 곳, 사계 수목원이다. 어린 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입구를 지나 네 개의 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화사하게 꾸며진 문들 중 가장 따뜻해 보이는 으로 아빠와 나는 발을 디뎠다.

 

여기 정말 오랜만이지? 아빠가 바빠서 한동안 못 데리고 왔네. 너 어릴 때 기억은 나니?”

 

당연하죠. 제가 되게 어렸을 때 여기 데리고 왔었잖아요. 집에 사진도 많아요.”

 

몇 년 만이지? 6년만 일거다. 뭐한다고 그렇게 바쁘게 살았는지...”

 

대화에 어색함이 역력히 묻어난다. 아빠와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어색한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는 엄마보다 아빠를 더 따를 정도로 아빠를 좋아했고, 일 년 내내 야근하는 엄마를 대신해서 나와 이곳저곳 놀러 다니기도 했다. 누구보다 아빠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음은 집에 천 장 넘게 쌓인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다. 비록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은 거의 없지만 카메라를 들고 있었을 아빠를 바라보는 사진 속 어린 눈망울에 사랑이 담뿍 묻어났다.

 

수민아, 요즘 엄마는 기분이 어때?”

 

걱정이 많아 보이기는 하지만 잘 웃기도 해요.”

 

그렇구나. 집에 일찍 못 들어가니까 엄마를 자주 보지 못해서 속상하네. 수민이랑 정아도 그렇고.”

 

집에... 일찍 오면 안돼요?”

 

아빠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일이 많아서 그럴 수가 없네. 미안. 이야, 벌써 여름까지 다 지났네. , 이제 다음 가을 보러 갈까?”

 

눈가가 휘어지도록 웃는 아빠를 보며, 내 가슴 한 구석이 같이 휘어지는 듯 했다. 아빠와 멀어지게 된 것은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부터이다. 동생이 태어나면서 엄마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아빠는 혼자서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에 큰 부담을 느낀 것이 틀림없다. 그 때부터 아빠는 일찍 들어오는 날이 아주 드물었다. 아빠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아질수록 아빠 얼굴에 주름은 하나씩 더 생겨갔고, 환하게 웃던 얼굴도 이내 지친 표정으로 변해갔다. 그래, 비록 나는 14살이지만 아빠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아빠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새벽 1시든 2시든, 아빠가 집에 올 때까지 자지 않고 기다렸다가 아빠에게 인사해주는 것이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어둑어둑한 집에 들어왔을 때, 웃으며 다녀오셨어요?” 하고 인사해주는 것. 아빠는 이 시간까지 안자고 뭐했냐고 혼내다가도 이내 으이구.”하며 피식 웃어버리곤 한다.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가. 여기도 저번이랑 느낌이 또 다르네.”

 

아빠, 우리 겨울가기 전에 사진 찍고 가면 안돼요?”

 

사진? 갑자기 사진은 왜?”

 

아빠랑 저랑 둘이서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잖아요. 아빠가 맨날 카메라 들고 있어서.”

 

아빠는 한참을 뜸들이다 대답했다.

 

그래, 한 장 쯤 찍어두는 것도 좋지.”

 

아빠, 여기 봐요.”

 

찰칵, 하는 소리에 살며시 눈을 떴다. 빗물은 여전히 창문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빗물을 따라 하기라도 하는 듯, 무의식중에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그 눈물을 닦아내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이 꿈마저, 이 기억마저 추억이기에 그대로 그 자리에 마르도록 남겨두었다.

그렇게 사진을 찍은 아빠는 거짓말처럼 겨울을 맞지 못하고 떠나버렸다. 정말 거짓말처럼, 아빠는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그랬다. 1년 전 대장암 말기를 진단받고 가망이 없는 것을 안 아빠는 엄마와 우리 가족에게 그 사실을 숨기며 홀로 병을 견뎌오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아팠을까. 혼자 아파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매번,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아프면서 가는 날까지 일하다 하늘로 가버린 아빠가 너무 불쌍해서, 지금도 아빠 생각만 하면 가슴이 소나기를 맞은 듯 욱신거린다.

 

40분이나 지났음에도 그치지 않고 제법 오는 비에 우산을 펴 들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아빠가 아른거린다. 어디선가 아빠가 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피곤하지만 힘차게 발을 디디며 동생과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향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둑한 거실에 티비를 켜 놓고 졸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다녀왔습니다, 엄마.” 조용히 속삭이듯 인사하고는 엄마를 깨우지 않기 위해 고양이처럼 조심히 움직이다 현관에 불이 들어왔다. 아차, 하고 고개를 돌리다 현관 선반 한 가운데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그 곳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 그리고 그 옆에 선 아빠가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웃음을 짓고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까 말라버린 볼이 또 다시 뜨거워지는 듯 했다. 손바닥만 한 액자를 쥐어들고 아빠 얼굴에 묻은 먼지를 스윽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울음을 삼킨 목소리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다녀왔습니다, 엄마... 그리고 아빠.”

 

오늘따라 유난히 눈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 잡히며 눈이 휘어지도록 웃어주던 아빠, 우리 아빠가 보고 싶다.

 

 

<고등학생부 (산문) 우수>

 

                                                         달의 아이

 

                                                                               경산여자상업고등학교 / 박지민

 

그 날은 달도 뜨지 않은 밤이었다. 거센 빗줄기에 쾅, 하늘이 번쩍였다. 꼭 그런 날이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리고 겁이 많아서 무서운 밤이면, 돌아가신 아버지를 흉내 내곤 했다. 나도 어른이 돼서, 이 밤이 무섭지 않게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비 오는 날이면 붓을 적시던 가난한 광부였다. 당신을 광부로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4살 쯤 될 무렵 '달의 조각'이라며 쥐어주셨던 돌조각 때문이었다. 당시의 나는 그것이 정말 달인 줄 알았다.

"민현아, 그림, 제대로 배워 볼 생각은 없니?"

눈물이 찔끔 나는 것이, 저를 이렇게 가난한 집에 두고 사라진 아버지가 처음으로 미워지는 것이었다. 끝내 선생님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림은 내 삶의 전부가 되어가고 있는데,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가난한 과부 집 장남이었으니. 그렇지만 자꾸만 욕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니, "그림이 그리고 싶어요."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아니, 되돌리고 싶었다. 아무 말도 하지 말걸. 막상 부딪혀보니 상상과 다를 것이 없었던 전개의 현실은 더욱 쓰고 아픈 것이었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입대를 했고, 제대 후엔 집과 멀지 않은 대학교의 심리학과에 입학했다. 그 날 이후로 붓을 잡은 적이 없었다. 온갖 색채로 물들었던 머릿속이 그저 무엇인가에 잠식되듯,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옅어지는 것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 취직한 곳은 작은 상담소였다. 이제는 검버섯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어머니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그러 하듯, 일만 하는 기계처럼 사람들을 마주했다.

그 날은 왠지 특별한 날이었다. 그 아이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런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가난이었다. 학원은 고사하고 변변한 대학교는 갈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집안이 힘들다고 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꽤 오랫동안 손길이 닿지 않았던 조그마한 상자를 한 번 후, 불자 먼지가 사방으로 휘날린다. 뚜껑을 열면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돌조각이 빛깔하나 바래지 않고 들어 있는 것이었다. 손에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꽉 잡아 쥐면, 한창 꿈을 꾸던 그 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지금쯤 잠이 드셨을 어머니의 방 앞에 가만히 서서 조용히 읊조렸다. "저는 그림이 그리고 싶어요."

다음날 퇴근길에는 읍내의 작은 화방에 들렀다. 속이 뜨겁게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저가 못 다 이루었던 어린 시절의 꿈에 대한 열망이었다. 왠지 내일은 꼭 비가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최근 들어서였다. 나름대로 잘 견뎌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들이 언젠가 부터는 부담이 되기 시작했고 그저 내려놓고 싶었다. 어머니의 한숨도, 이 부질없는 시간들도. , 붓을 내려놓는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근근이 살아오면서 많이도 투박해진 손이었다. ‘이 손으로 평생 붓을 잡고 싶다.’ 눈가가 붉어진다. 이윽고 산발적인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그렇게나 작아보였던 집이 어느 때보다도 커보였다. 당신이 앉아계시던 안방 맨 바닥에는 온기가 채 식지 못하고 남아있는 듯 했다. 조각조각 흩어진 온기를 따라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화장대 위에 남겨진 작은 상자는 지금쯤 다시 먼지가 쌓였을 제 것과 비슷한 크기였다. 조심히 뚜껑을 열면 그 속엔 저의 그것과 똑같은 돌조각이 들어있는 것이었다.

그래, 생각해보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꿈은 내 마음 한 곳에 늘 있었던 것 같다. 그저 그런 핑계들로 모른 척, 잊은 척해왔던 것이다. 날이 흐리다고 달이 뜨지 않는 것은 아닌데. 그제야 알게 되었다. 아버지 당신이 내게 쥐어주었던 그것은 달의 조각, 내 꿈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한 손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당신들의 꿈을, 다른 한 손에는 나의 꿈을 꼭 쥐고 처마 아래로 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을 집어삼킬 듯 그 어느 때보다도 밝게 떠오른 달은 오늘 따라 더욱 가까워진 것만 같다. 다음 날에는 누군가가 뒤늦게 어머니의 임종을 슬퍼하는 듯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내렸다.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쥔 붓이 손에 착 감기는 듯 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 시절의 꿈을 간직한, 달의 아이였다.

 

<고등학생부 (산문) 우수>

 

                                                  감옥 속의 나에게

 

                                                                                 경산여자상업고등학교 / 김진리

 

올해 고등학생이 된 나는 마냥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생활은 나를 어둡고 깜깜하고 좁은 감옥으로 나를 끌고 갔다. 첫 중간고사를 앞둔 나는 선생님께서 이 시험을 잘 쳐야한다는 말에 그 순간 나는 수갑을 차고 내 안의 어두운 감옥 속으로 한발 두발 걸어가기 시작했다. 매 순간 성적 생각에다가 아직 적응도 하지 못한 학교에서 취업 생각, 나는 이미 미래의 나를 위해서 지금 이 순간을 불안해하고 다급해 하고 다른 친구와 나를 비교하며 조급해 하였다. 그런 나를 느낄 때 마다 나는 내 자신이 한심하고 답답했다. 그렇게 너를 힘들게 만들고 우울하게 만들어야겠냐고 좀 웃고 즐길 순 없냐고 나에게 물었었다. 시험이 끝나고도 나는 성적이 잘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할 틈 없이 나는 다음 기말 고사를 걱정했다.

이렇게 나는 이때 것 한 번도 걱정해 본적이 없던 성적을 고등학교 들어 이것이 나를 힘들게 하고 외롭게 했다. 나는 아직도 마음을 떨어 놓는 친구가 없고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친구마저도 외면하고 피하며 스스로 우울하고 외롭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중학교 친구가 생각이 났다. 나는 그 친구를 정말 좋아하고 그 친구랑은 평생 친구로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끝내 그 친구와 어색한 사이가 되어 헤어지고 지금 나는 그 친구가 너무 보고 싶다. 그때 그 친구랑 한 모든 대화가 그 친구랑 함께한 중학교 생활이 너무 재밌었고 그 시절의 내 모습은 너무 맑고 환하게 웃고 있어서 그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런 회상을 하면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왠지 나는 내가 스스로 감옥에 가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내 마음엔 빛 한 줄기 없는 좁은 깜깜한 방에 혼자 갇혀 있는 그런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 나를 덮은 것처럼 답답하였다. 나는 이제 고1인데 내가 벌써 이런 생각을 하니 나는 앞으로가 너무 무섭다. 평생 외로운 감옥에 갇힐 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결국 내가 이런 걸 이겨내고 넘어서야 나는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삶으로 한발 두발 걸어 갈 수 있기에 넘어지는 내가 너무 싫고 누군가가 나는 끌어 줬으면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러면서 나는 학생들이 어린나이에 서로를 밟고 올라서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다치고 아파해야 한다는 게 너무 싫다. 어쩌면 내 또래 언니 동생들은 모두 저 마다 나를 고문 시키는 감옥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감옥에서 탈출하지 못해서 포기를 하거나 혹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이 고통도 이 불안함도 다 잊고 웃으면서 어두운 감옥 속에서 환하고 빛나는 밖으로 나가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진리야 힘들고 내 자신에게 의기소침해서 포기 하고 싶어도 참고 이 3년만 참자 그리고 넌 할 수 있어 이겨 내고 결국은 너의 목표에 도달 할 수 있을 거야 우리 조금만 참고 열심히 하자!! 넌 꼭 해낼 수 있을 거야 나를 믿어보는 거야 우리 꼭 행복해 지자!”

 

 

<고등학생부 (산문) 장려>
 

                                                        나는 작가다

 

                                                                               경산여자상업고등학교 / 이정화

 

책을 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럼 당신은 백수가 아니냐고 물으실까? 천만에! 나는 학생이기 때문에 백수는 아니다. 참으로 고마운지고. 아뢰어, 거창하게 나를 작가라 소개한 부분에 대해 취소하고픈 생각은 없다. 사람에게 자신감이 없다는 것은 자아(自我)가 없다는 것과 같다. 자아가 없다는 것은 혼이 없다는 것이다. 혼이 없는 인간에게 삶은 무가치하다. 라고, 말은 이리도 호기롭게 외친다만, 현실에서의 나는 대개 과도하게 자신감이 뒤떨어지는 모습을 보여 왔다.

예컨데 글을 써서 인정을 받았다든지, 그런 일로 상장을 받고 기념품을 받고 하면 그것을 폐기하거나 서랍 깊숙이 숨겨 버린다. 가족에게 들키는 것이 싫었다. ‘무섭다가 더 확실한 표현일 것이다. 혹시나 남들이 비웃을까봐 두려웠고 아니라면 과도한 부담감을 안겨줄까 겁이 났다. 그런 주제에 중학생 때는 반대로 과한 자신감을 내비치곤 했는데, 사춘기에 나는 검은색 립스틱을 바르고선 퇴폐문학이니, 로큰롤이니, 여하튼 서양의 기괴한 문화에 심취했었다. 학교에서는 수업시간에 교과서 대신 쇼펜하우어를 읽었다. 그러니 당연히 성적은 전교에서 뒤에서 30등 안에 드는 기염을 토해냈다.

요즘 세상에서 개개인에게 개성이란 폼에 살고 죽는 것과 같아서, 가끔은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형태로까지 나타내곤 한다. 당시의 나는 사춘기에 으레 오곤 하는 초인 사상에 심취했었다. 죄와 벌의 주인공이 이리 주장하지 않았던가. 세상에는 범인과 비범인이 있으며 범인은 비범인에게 허락되지 않은 일들을 저지를 수 있다고. 어쩌면 나는 비범인이 아닐까. 나폴레옹과 고대의 위인들이 그러했듯 내게는 좀 더 많은 것이 허용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나는 일전에 비범인인 척 음악을 시작하겠답시고 전자기타를 샀다. 지금 그 놈은 먼지구덩이가 제 집인 줄 착각하고 있으리라. 또 그림을 시작하겠다며 그래픽 태블릿을 사서는 10번도 채 쓰지 않고 팔아치워 버렸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제빵사가 되겠다며 오븐을 샀으나 마지막으로 코드를 꼽아봤던 적이 1년이 넘었다.

어제는 뜬금없이 조소가 하고 싶다며 조소용 점토를 2kg 주문했다. 포장은 뜯지도 않았다. 세상엔 무언가를 시작하려면 구색부터 갖추어야 하는 일이 참 많다. 나와 맞지 않은 녀석이라는 걸 깨달은 후엔 도로 물리기가 힘들다. 인정한다. 요는 내 변명이다. 나는 단순히 구색만 갖추길 좋아하는 부류일 뿐이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질리지 않고 계속하는 일이 있는데, 다들 눈치를 채셨다시피 그것은 글을 쓰는 일이란 것이다. 소설을 쓴다. 그것에 필요한 건 연필과 종이, 뭣하면 휴대폰만 있어도 문제가 없다. 하나 모름지기 작품이란, 뼈대를 만들고 살을 붙여 굽고, 다시 그것을 조각하고 깎아내, 사포질을 한 후엔 닦아내어 그 위에 도색을 하는 과정을 걸쳐 탄생하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늘 글을 쓰지만 완결다운 완결을 지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분량은 충분해도 자신감이 없다. 도입부가 이상하다. 마무리가 애매해. 너무 평면적인 인물이다. 결국 도저히 사람들에게 내놓을 만한 글이 아니란 결론이 도출된다. 한참을 고치고 지우고 바꾸다가 삭제버튼을 누른다. 아무도 이 가련한 글감에게 이름조차 붙여주지 않는다.

아이러니함은 제 작품에 불만을 느끼면서 그것을 지적당하는 것에 자신이 거부당하는 것과도 같은 크기의 슬픔을 맛보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내가 그렇다. 내게 있어 글이란 것은 나의 자아와도 같기 때문이다. 이전에 나는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것에서 배척 한 번 당했다고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작은 상자 안에 몸을 구겨 넣고 점잔을 빼고 있다. 옹졸한 입으로 "재능은 모두가 가지지 못했으니 재능이고, 노력 또한 재능이야." 하며 궤변을 펼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당시 친하게 지내던 A가 내게 이런 말을 건네주었다.

"그렇게 무작정 네 글을 쓰레기라고 하찮게 여기는 건, 네 글을 보는 아주 단 한 명의 사람조차도 쓰레기가 되는 거야. 그건 결국 너를 욕보이는 거고."

내 글을 읽어주는 그 단 한 명이 바로 그 녀석이었고, 아주 큰 결례를 범했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설득을 하는 일이다. 작가의 마음은 유리처럼 섬세한 피막을 입고 있음이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좀 더 달래고 얼러 부드럽게 전하기 위해 가꾸고, 또 가꾼다. 글을 아무리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린다 한들, 그것을 저 혼자만 알고 있다면 그것은 본래 의미를 잃고 만다. 물론 요즘 세상은 너도 나도 예술이니 창작이니,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것이 힘들긴 하다. 하여 제 작품에 만큼은 과도하게 엄격해 진다. 안타깝게도 요는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계속해서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뒤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글은 나와 당신을 연결해주는 . 당신이 무너지면 나도 침몰하고 만다. 그러니, 무엇이든 좋으니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라. 기꺼이 나도 용기를 내어 나의 이야기로 보답할 테니.

 

<고등학생부 (산문) 장려>
 

                                                   소중한 것은 가까이 있다

 

                                                                                경산여자상업고등학교 / 오진아

 

우리는 사회를 살아가면서 시간이라는 답답한 틀에 속박되어 일정한 패턴을 가진 채로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친구들이나 가족 등 주변사람들과 추억도 만들지 못하며 마음껏 얘기를 하며 보내는 시간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그러면서 그 사람들의 소중함과 필요함을 잊어버리게 된다. 우리는 가족, 친구 등 사람 뿐만 아니라 자연 모든 것에 감사함과 소중함을 알아야 된다.

그럼 지금부터 그 소중함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우리는 엄마, 아빠로부터 태어나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매일 매일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건강한 몸을 가져 편하게 학교를 가서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내 모습에도 매일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살아가야 한다. 또 환경이 나빠 잘 살지 못하고 조금 부족해 남들과 다르더라도 아끼며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된다. 학생들은 선생님들이 있기에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지식을 터득하며 자라고 선생님들은 학생을 가르치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게 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은 다 운명을 가지고 소중한 존재로 태어났다.

우리는 가끔 심한 말과 상처를 주는 말로 관계가 끊어지는 경우도 있다. 서로 뒤돌아보고 몇 발자국 가서야 이제 그 사람의 소중함을 깨우치게 된다. 연인이나 친구 같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싸우고, 서로 등졌을 때 그제야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 바로 우리다. 우리가 평소 상처를 주는 말 대신 밥은 먹었어? 오늘 하루 어땠어? 오늘 별 일 없었어?” 등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며 이야기를 한다면 소중함을 깨우치게 될 것이다.

익숙함이란 참 무섭다. 설렘을 밀어내고 익숙함이 자리하면 관심까지 서서히 도망간다. 소중함까지도. 우리 삶에 소중함이 있기에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와 의미가 생기는 것을……. 별 거 아닌 것들에 서로 상처를 받고 짜증을 내기 보다는 서로 사랑하며 아끼는 마음가짐을 가져야한다. 빈자리는 우리를 쓸쓸하게 만들기 때문에 우리 인생은 한 번 더 참고, 한 번 더 기다리며, 한 번 더 찾아가고, 한 번 더 웃고 시도하는 것이 나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며 빛나게 만든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함께 울고 웃고, 괴로워 할 수 있기에 내 인생은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자신이 인생에서 성공을 원한다면 많은 것들과 친해져야하고 관계를 쌓아야 한다. 인내심은 친절한 상담자처럼 경험은 늘 곁에서 지켜주며 바라바 주고 무엇이든지 다 아는 든든한 부모님처럼 사랑은 당신의 소중한 친구처럼 친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호승의 시에서 꽃의 향기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듯 바람이 나와 함께 잠들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다 라는 구절이 있다. 계절만큼 정직한 것은 없을 것이다. 언제나 거짓이나 속임 없이 때가 되면 변화를 하고 그 변화로 나를 포함해서 설렘을 느끼게 된다.

이 시의 한 구절처럼 신경을 쓰지 않아도 때가되면 옷을 갈아입듯이 계절은 그렇게도 조용히 새로운 옷을 입으려고 한다. 어느새 주변을 돌아보면 계절은 변화를 갖춰 새로운 분위기와 배경을 만들고 즐겨보라고 한다. 가까이에 있기에 모르고 지나칠 소중함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 이 모든 것이 가난한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다.

더 사랑해야지. 더 크게 울고 웃고 괴로워해야지. 이 귀한 삶의 시간들이 그냥 소홀히 지나쳐가지 않도록이라는 생각을 가져야한다. 내 인생에 소중한 것이 없다면 살아가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를 소중히 대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공기가 있어 숨을 쉴 수 있고 땅이 있어 생명이 자라고 물이 있어 메마르지 않지만 너무나 당연하기에 우리는 소중함을 잊고 산다. 익숙함에 감쳐진 소중함을 잃지 말자. 내게 주어진 것에 기뻐하며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내 자신에게 기뻐하자

 

<고등학생부 (산문) 장려>


                                                     걱정 말아요. 그대

 

                                                                                   경산여자상업고등학교/이지현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몇 년을 살까? 그리고 살아가면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과학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지금 현대사회를 백 세 시대라고 표현한다. 태어나서 100년이라는 시간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그 중에서 우리가 죽을 때까지 기억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또한, 우리는 몇 명의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까? 많은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걱정을 많이 한다. 나 또한 거의 18년을 살아오면서 많지는 않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왔고 인간관계, 특히 친구 관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인간관계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순간은 작년 20163~ 5월이 아니었을까 싶다.

고등학교 입학식 날 나는 혼자 다른 지역의 학교로 입학을 하게 되었다. 숫기도 없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나는 많은 생각에 사로잡혔다.‘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여기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등의 걱정들을……. 생각이 많은 성격을 지닌 터라 그 당시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까지 하면서 정신적으로 나 자신을 혹사시켰던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학교 수업에 뒤처지게 되었고 특정 과목 시간에는 수업에 집중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나는 입학한 지 한 달 반 만에 지금의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다시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내가 재학 중인 학과는 1년이 아닌 3년 내내 같은 반을 써야 하는 학과이다. 그래서 처음 왔을 때는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 사귄 친구가 3년 내내 같은 반 쓰는 친구이니 잘 어울려야겠다고……. 그러나 4월 중반 그 시기는 여느 학교와 마찬가지로 중간고사 시기였고, 그로 인해 친구를 사귈 시간이 없었을 뿐더러 벌써 무리를 지어있는 친구들 사이로는 내가 잘 어울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학교에서도 처음 왔을 때는 처음 보는 과목을 배우다 보니 더욱더 신경이 쓰이고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남모르게 눈물을 흘려야 했을 때도 있었다.

전학을 오고 나서도 한 달 정도는 전학 오기 전의 학교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학교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을 치고 야영을 다녀오니 한 달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친구를 사귀기 위해 그렇게 큰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시간이 지나니 지금 우리 반 친구들과는 물론이고 옆 반 친구들과도 친해지게 되었다. 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마음고생을 하고 나를 그렇게나 혹사시켰던 것일까? 요즘은 전학을 오기 전 학교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많은 친구를 사귀고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때 내가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돼 있을까 상상도 한다. 그때 전학을 온 것이 정말 나에게 있어서는 운명을 바꾸어놓는 첫 번째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전학을 오고 나서 정말 많은 친구는 아니더라도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 같다.

내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항상 꽃 보듯이 돌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꽃처럼 시들어버릴지도 모른다. 항상 벌들이 모여드는 꽃은 벌의 소중함을 모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항상 주위에 사람이 넘쳐나는 사람은 사람의 소중함을 모른다. 자신에게서 사람들이 떠날 때 그때 사람의 빈자리와 소중함을 같이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왜 내 주변에는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없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를 진정으로 생각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나타날 것이며 주변에 사람이 많다고 해서 전부 나를 걱정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몇 없을 터이니.

나는 그냥 주변의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 많은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생각은 나에게 독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나는 앞으로 나의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나고 싶고 사귀고 싶다. 그렇기 위해서는 나 먼저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인간관계로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잘 될 거라고 전해주고 싶다. 자신을 정말로 생각하고 진짜 대해주는 사람이 곧 나타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경산인터넷뉴스 (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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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greubre (2023-05-11 오전 1:57:37)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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