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25 오전 9:2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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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국 경산시립박물관장 |
원효가 분황사에 머물면서 토굴에서 해골바가지를 보고 깨달은 뒤 처음 시작한 글이 『화엄경소』다.
요석궁의 공주[아유다]와의 인연으로 설총을 낳고 스스로 파계하였다 하여 속복을 입고 자신을 <소성거사>, <복성거사>라 한 후 절을 떠나 거리에 나온 원효는 표주박을 두드리며 속인과 더불어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상생활 속에 침투하여 전달하는 신라불교로 교화하여 나갔다.
원효대사는 특히 사회적 지위가 낮고 공부할 기회가 없는 사람들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고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설법하였고, 부처님의 커다란 자비심이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단 한줄기라도 비쳐 들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므로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도 하고, 술집에 들어가 주정뱅이와 더불어 이야기도 하고, 문둥병 환자와 함께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했다.
그는 이 세상에 버림받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으로 작은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참다운 이치만 이 세상에 널리 펴져 있는 것으로 보고, 모든 사람의 마음을 깨우치는 대승불교의 진리를 펼쳐나갔다. 그는 이러한 진리를 쉽게 민중에 전달하기 위하여 큰길에 나와 표주박을 두드리며 《무애가》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대승불교란 결국 큰 길로 모든 사람과 함께하는 실천 불교의 진리다.
이러한 원효의 행동에 고지식한 당시의 신라 고승들은 손가락질하며 비웃었다.
하루는 신라 국왕이 나라의 안위를 위해 황룡사에서 백고좌법회(百高座法會)를 열도록 명하였다. 그 자리에 국왕과 문무백관, 전국의 고승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학식이 높은 승려가 강단에 올라 『백좌인왕경』을 설법토록 되어 있었다. 이 법회에 몇몇의 승려가 원효를 추천하였으나 원효는 계율을 벗어나 괴이한 춤을 추며 떠도는 사람이니까 강단을 오를 수 없고, 또 참석도 불가하다는 것이 그들의 중론이었다.
이후 왕비가 병이 나서 치료를 위해 당나라에 약을 구하러 갔다가 금해(錦海)용왕께서 『금강삼매경』을 황룡사에 보내 이를 설법토록 하였는데 난감하였다.
이 소식이 국왕에게까지 전해져 국왕이 친히 장안의 학식 높은 대승 대안대사를 불러 강론토록 하였으나 그는 고개를 저으며,
<우리나라에서 이 강론을 맡을 사람은 원효대사 한 사람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하였다.
왕명으로 전국 사찰에 통문을 보내 원효를 찾는 명령이 떨어졌고, 수 일이 지나 간신히 그를 찾아낸 곳이 그의 고향인 경산의 초개사(初開寺)였다.
처음 원효는 자신이 파계승이라 하여 사양하였으나, 왕명이라 어쩔 수 없이 서둘러 경주로 올라갔다.
전설에 의하면 원효가 황소를 타고 길을 떠날 때 황소 두 뿔 사이에 벼루를 끼워놓고, 『금강삼매경』을 강론하기 위하여 해설원고를 썼다고 했다.
원효는 황룡사 대강당에 왕과 문무백관, 전국의 사찰에서 모인 고승들 앞에 『금강삼매경』과 그가 쓴 해설원고를 들고 천천히 강당에 올라갔다.
이때 원효대사도 짧은 두루마기에 까만 모자를 쓴 광대같은 행색이 아니었고, 눈처럼 흰 가사를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의젓한 모습은 영락없이 참다운 이치를 이 나라에 펴기 위해 먼 서쪽 극락정토엣 보내온 부처님의 제자 모습이었다고 한다.
이때,
<원효대사가 강론을 시작했다. 낭낭한 목속리,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풀어서 설명하는 깊은 이치가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모두 하늘에서 들려오는 부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처럼, 한 마디도 빠트리지 않았다>하였다.
원효대사가 『금강삼매경』을 쉽게 풀이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 책 속에 원효대사가 늘 생각하던 문제가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토감(土龕) 속에서 얻어진 진리, 거리에 나와 춤추며 노래한 <무애가>, 강당에 모인 사람뿐만 아니라 원효대사의 가르침은 하늘과 땅사이에 널리 퍼져, 하늘을 나는 새도 땅위로 달리는 짐승도, 마음없는 풀이나 나무도 모두 함께 춤추며 기뻐하는 것만 같았다고 한다.
원효대사는 그 후 조용한 절로 옮겨 다니며 여러 가지 불교경전에 주석을 달아 후세 사람들이 공부하기에 편리하게 하는 일에 열중하였다.
그가 생전에 써서 남긴 책이 85여 부 170여 권에 달한다고 한다. 그는 세계적인 대저술가이며 한국이 낳은 위대한 불교 사상가임에 틀림없다.
<경산시립박물관 김종국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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