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2 오후 5:09:38
- 60년대 하양 무학농장 개간 굶주린 지역민 구호
60년대 고 이임춘 신부와 함께 하양 무학농장을 개척하여 지역민들의 배고픔과 가난을 구제했던 양수산나(수산나 메리 영거) 여사가 지난 10일 노환으로 선종했다. 12일 오전 10시 대구대교구 대봉성당에서 조환길 대주교의 집전으로 장례미사를 봉헌하고 가톨릭 군위묘원에 모셨다.(향년 88세)

양수산나 여사는 1936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대학교 정치·경제·철학과를 졸업했다. 영국에서 우연한 기회로 한국 교회사 특강을 접하고, 박해와 순교로 이뤄진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에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한 외국인 신부를 통해 한국에서 선교사로 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대구대교구와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 초청을 받아 1959년 23세의 나이로 한국에 입국했다. 당시 효성여대 피아노과에 학생들이 연습할 피아노가 없다는 소식을 듣고 영국에서 중고 피아노 7대를 모아 배편으로 가져왔다.
입국 후 효성여대에서 영어 교수로 지내며 구두닦이 소년들에게 밥을 해먹이고 갈 곳 없는 여성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당시 의사와 약혼한 상태였던 여사는 대구의 가난한 아이들과 지내며 기쁨을 느끼고, 혼인 성소를 포기했다. 약혼자에게는 미안하다는 편지와 함께 봉투에 약혼반지를 넣어 우편으로 돌려보냈다.
1960년 12월 대구가톨릭근로소년원을 설립했고, 1962년에는 대구 삼덕동에 가톨릭여자기술원(현 가톨릭푸름터)을 설립했다. 여사는 인성교육을 비롯 미용·자수 등 다양한 기술교육으로 여성들의 자립을 도우며 대구지역 사회복지에 초석을 다졌다.
1964년 하양 본당 이임춘 신부를 도와 무학농장을 개척했다, 무학농장 개간사업으로 가난한 지역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고 한편으론 자활의지를 북돋우고 희망을 심었다. 후에 무학농장은 무학중고등학교를 설립·운영하는 자산이 됐다.
1971년 광주가톨릭대 신학대학에서 철학 교수로 지낸 후 1973년 프랑스 루르드의 아욱실리움 문화양성센터에서 문화양성지도자로 일했다. 2004년 한국으로 돌아온 여사는 여생을 한국에서 보내고 싶어 2010년 영주권을 취득했다. 이듬해에는 대구광역시 명예 시민증을 받았다. 2004년부터 가톨릭푸름터 고문으로 활동했다.
양수산나 여사는 “인간의 사랑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며 “귀족이나 정치인이나 거리 부랑인이나 모두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면 그들도 사랑을 내어줍니다. 누구든지 날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본 사람은 다른 사람을 향하게 되는 거죠. 사랑을 받으면 사랑을 알아들어요.”라며 전 생애를 사랑으로 사셨다.
장례미사 강론에서 조환길 대주교는 양수산나 여사의 삶을 기억하며 “사랑으로 참으로 기쁘게 사신 분, 본받고 배울 것이 많으신 분, 천국에서 뵙겠다.”고 추모했다.
최상룡 (ksinews@hanmail.net)